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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틀 Oct 22. 2021

퇴사는 운명

직장인 모두는 퇴사라는 경험을 한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만약, 그때 팀이 지방으로 이사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회사를 더 다녔을까? 만약, 그때 내가 원하는 곳으로 전배를 보내주었더라면 나는 회사를 더 다녔을까?


대답은 "Yes".


그래서 퇴사 선택을 후회하는 가?


대답은 "No".


회사라는 곳에 딱히 오랫동안 있고 싶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년 퇴임할 때까지 다니고 싶지도 않았다. 길어야 5년~7년을 예상하고 퇴사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퇴사 준비라고 해봐야 별건 없었고, 돈 모으고, 쌓고, 남편 사업 지켜보다가 때때로 돕는 정도.


그러다 퇴사 시기를 앞당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코로나 유행이 첫 번째였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아이들 육아는 어머님이, 교육은 학교와 사교육이 담당했다. 코로나로 온라인 학습이 많아지자 학습의 많은 부분이 가정으로 넘어왔다. 지금은 그나마 줌 수업으로 선생님이 챙겨주는 부분이 많아졌지만 초반엔 EBS를 듣고선 나머지는 부모님이 아이 학습을 챙겨야 했다. 선생님께 전화받는 게 일상이었다.


거기에 회사 일이 아주 많이 꼬여서 풀리지 않았다. 뭐 상사의 질책 정도야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짠밥은 되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들어놓고 일을 해결하라는 압박과 지시는 견디기 힘들었다. 살짝 우울증이 올 기미가 보였다. 코로나로 인한 육아의 압박, 회사 일의 힘겨움, 우선 휴직이라는 노선을 택했다. 육아 휴직이 남아 있었다.


휴직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퇴사에 대한 고민을 했다. 좀 쉬니 나아지는 것 같아서 한 1~2년 더 다녀야겠다 마음을 먹던 차에,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앞서 이야기했던 대로 팀이 지방으로 이사를 한다고. 같이 가겠다고 하면 그대로 복직해도 되지만, 같이 가지 않을 경우는 전배를 해야 한다고 했다.


지방으로 가면 주말부부를 해야 했다. 아이들이 아직 어렸고, 지방까지 매일 출퇴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전배를 택했다. 전배를 할 경우 팀을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가겠다고 했다. 한 회사에 오래 있었더니 갈만한 곳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육아와 회사일을 병행해야 하니 업무 강도가 높지 않은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오라는 곳이 있었다.


팀장에게 이야기했더니 안된단다. 아니 왜? 전배 가라면서요?


자기가 이미 알아봐서 이야기를 다 해 놓았다고. 거기로 가야 한단다. 이유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다른 사업부였는데 임원 결재를 받아야 하는데 승인이 안 날 거라고.


팀장이 가라고 하는 곳은 가고 싶지 않았다. 업무강도도 높을 것 같았고(예측), 담당 업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40대 후반 직장인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 그 길을 막았다는 건 내 직장운이 막혔다는 느낌이었다.


결국 2년간 돈이 없어도 살만한가를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했다. 2년간 더 다니며 돈을 모을 생각이었으니 기회비용까지 하면 4년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래저래 생활은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본격적으로 남편과 사업을 일구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휴직하면서 사업을 본격적으로 같이 했는데,  같이 해보니 시너지 효과가 났던 것도 퇴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 이야기를 하니 팀장이 지금에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하냐고 되물었다. 그럼 퇴사를 미리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결정은 한순간일 뿐, 퇴사 결심은 오랜 시간 묵혀온 것이었으니까.


팀장이 일주일만 더 생각해보라고 했다. 일주일을 더 생각해봤자 결론은 마찬가지일 거라고 했다. 그래도 일주일을 더 생각해보라고, 오랫동안 회사 다니지 않았느냐고. (아마, 이것 때문에 내가 그의 말을 따르리라 짐작했던 것 같다.)


일주일 뒤에, 나는 다시 퇴사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팀장은 퇴사 후 무엇을 하고 싶느냐고 물었다.


"글쓰기요."


매우 당황하는 느낌이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그래머와 글쓰기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니까.


전부터 했었느냐고 물었다.


"책도 한 권 출간했고, 칼럼도 종종 쓰고, 모임도 하고 있어요. 글쓰기 강의도 하고요."


글쓰기에 관한 모든 활동을 줄줄 읊었다.


"책을 출간했었다고? 왜 몰랐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음에야 회사에서 내 출간을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IT 직무에 관한 책도 아닌데, 굳이 회사에 알려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팀장은 알겠다고, 하는 일 모두 잘 되라는 덕담을 남기고, 아마 승인은 좀 시일이 걸릴 거라고 했다. 휴직 후 바로 퇴사를 하는 것이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인사팀에 알아보라고 했다.


인사팀에 전화를 돌리고, 복직과 동시에 남은 휴가를 모두 소진하고 퇴사 프로세스를 밟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퇴사는 운명이었다. 그리고, 직장인 모두는 퇴사를 한다. 월급 사장도 퇴사한다. 퇴사하지 않는 사람은 회사를 만든 오너뿐이다. 오너는 퇴사하지 않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는 표현을 한다. 어쨌든 내가 하던 일을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조직에서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퇴사라는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사람마다 그 시기가 다를 뿐. 나는 그 운명의 시기를 예상보다 좀 빨리 맞았다. 하긴, 삶이 예측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있던가.


"Yes"와 "No"로 열심히 프로그램 프로세스를 따라갔지만, 결국 종착지는 퇴사였다.


운명을 벗어나는 법, 운명을 바꾸는 법에 꽤나 관심이 많은 편이었는데, 결국 운명 안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보면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이고, 다만 받아들이는 마음만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존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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