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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원 Aug 10. 2021

핸드폰 액정에 새똥 떨어질 확률

넌 특별한 아이니까


코로나 시국 직전, 호주 여행을 갔었다. 대학생 때 워킹홀리데이로 갔던 호주 멜버른에 10년이 지나 다시 방문하게 된 것이다. 


들뜬 첫날, 센트럴에 위치한 도서관에서 한참  사진을 찍다가 건물 밖에서 사진을 확인하려는 그 순간, 핸드폰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빗방울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그림에는 색깔을 넣었지만 실제론 투명한 색이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머리 위 나무엔 새들이 앉아 있었다.


아주 투명하고 맑은 새똥이었다.



10년 전 나였다면 혀부터 차며 신경질을 냈을 것 같다.

'왜 항상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20대 때의 나는 예민했었고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작은 일에도 날카롭게 반응했고 꼭 안 좋은 일은 나에게만 생기는 거 같아 화가 났다. 이런 성격의 원인을 환경이나 외부적 요인에서 찾거나 주위를 탓하고 싶진 않다. 그저, 당시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다.


안 좋은 일은 내게만 생긴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입학 후 학교에서 체육복을 받던 날, 친구가 내 체육복을 보고 말했다. 


"어? 네 건 학교 마크가 왜 이렇게 커?"

"응?"


솔직히 친구가 말하기 전까진 전혀 몰랐던 마크의 크기는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알아보니 남학생 체육복의 마크 크기가 여학생 마크보다 컸는데 내 체육복은 여성용이었지만 남성용 마크가 달려있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이라면 신경도 안 썼을 것 같지만 사춘기였던 나는 마크 크기 하나에도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래서 결국 체육선생님께 찾아가 조심스레 말씀드리며 바꿔달라고 요청했지만 선생님께서는 바꿔줄 수 없다는 대답을 아주 순화해서 말씀하셨다.


"그건 다 네가 특별해서 그래. 넌 특별한 아이니까!"


이 말을 들은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바꿔주지 않는 선생님을 원망하며 체육복 입을 때마다 짜증을 냈다. 그 이후로도 바람이 불 때 비닐이나 쓰레기가 자석에 끌린 듯 내게 날아온다던지 다 같이 걷다가도 혼자 껌이나 똥을 밟는 것과 같은 일이 자주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일이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혼자 피해자가 된 듯 또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작은 일에도 벌벌 떠는 사람이 되었다.


 


20대가 되어 나는 이런 내가 싫어졌다. 여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5권, 10권.. 권수가 점점 늘어가자 자기 계발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 비슷하다는 걸 깨달았다. 


꿈, 믿음, 사랑

: 되고 싶은 모습을 꿈꾸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나를 사랑하기 


이게 바로 내가 느끼고 정리한 내용이다. 그리고 틈틈이 템플스테이를 가며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욕심을 비우는 연습을 했다. 이런 노력에도 20대의 나는 여전히 불안했고 예민했지만 생각이 아주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나는 정말 특별한 사람이었구나.



아는 것과 스스로 깨닫는 것은 별개다. 알고 있어도 내가 깨닫지 못한다면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도 않고 아무런 변화도 없다.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깨달았을 때, 행동이 변하고 생각이 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인생 전체를 바꾸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새똥이 떨어진 핸드폰을 보고 내가 어떻게 했냐고 묻는 당신께 이렇게 답하려 한다.


누구보다 크게 웃었다고.

핸드폰에 새똥이 떨어질 확률, 특히 한국도 아닌 호주에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난 것을 수학적으로 분석할 순 없지만 아주 희박한 확률이라고.

이건 다 내가 특별해서 그런 거라고 웃으며 답하고 싶다.


그리고 당신도 그렇다고. 

지금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당신이 특별해서 그런 거라고. 

그리고 그 일이 훗날 당신에게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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