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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원 Aug 12. 2021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야

'갑자기'가 주는 인생의 즐거움에 대하여


친구가 점심을 먹자고 메시지를 보냈다.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우리들이었기에 점심 혹은 저녁 메뉴는 매우 크고 중요한 이슈이자 만남의 목적이 되곤 했다. 특히 그 친구와 나는 곱창 메이트로, 결정하기 힘든 날엔 주저 없이 곱창을 먹으러 갔다. 하지만 코시국이 되면서 배달이나 포장이 가능한 음식에 한해 정해야 했다.


만나기 전엔 항상 먹고 싶은 음식과 가고 싶은 장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지만 막상 만났을 땐 그 음식이나 식당에서 먹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열심히 '계획'을 세웠지만 당일 '갑자기' 바뀐 마음에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나는 영어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 나의 진로희망에는 번역가가 빠지지 않고 적혀 있었다. 고 3이 되어 대학 입학 원서를 써야 했을 때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영어 관련 학과를 지원하려 했지만 생각보다 높은 커트라인에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영어학과가 아니라면 어디가 됐든 관심이 없었기에 아버지께서 추천해주신 경제학과에 지원하기로 했다. 당시 부산에 살았지만 언니들이 이미 서울에 살고 있어서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알아보다가 눈에 들어온 학교가 있었다. 캠퍼스가 예쁘다는 그 학교의 경제학과 커트라인을 알아보니 내 점수와 딱 맞았다. 


커트라인보다 높은 점수일 때 안정적으로 원서를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당시 나는 매우 아슬아슬한 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학교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과 선생님을 비롯해 주위의 모든 이들이 반대했지만 나는 결국 입학원서를 썼다. 


그 결과, 정말 운이 좋게도 합격하게 되었고 휴학 포함 6년을 행복하게 다닐 수 있었다. 사실 경제학은 어려웠지만 내가 원하던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고 원하던 복수전공도 함께 했기에 후회 없는 학교 생활을 했다.


 


의외의 선택은 내 인생에서 종종 나타나곤 했다. 


30살 무렵 평소처럼 눈을 뜬 어느 날 아침, 내가 눈꺼풀의 힘이 아닌 이마와 눈썹의 힘을 사용해 눈을 뜬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다. 그래서 이마를 잡고 눈을 다시 떠봤더니 눈이 아주 작게 떠졌다.

바로 그날이었다. 내가 쌍꺼풀 수술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


사실 수능이 끝났을 무렵, 친구들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며 나도 하고 싶었다. 학생이었으므로 당연히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어머니와 나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계획이 불발되었다.


그렇게 대학교에 입학했고 여전히 수술할 돈은 없었으며, 돈이 있었어도 학기 중에 수술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해 돈을 벌었지만 성격상 직장에 다니면서 수술할 용기는 없었기에 무쌍으로(?) 20대를 보냈다.


이런 내가 30대가 되어 갑자기 수술을 결정하게 된 것은 나조차 놀랄 정도로 의외의 선택이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한 가지 일을 가늘고 길게 하겠다는 나의 결심이 무색하게, 점성술사의 말을 듣고 캔들 공방과 한국어 강사, 그리고 영어강사까지 쓰리잡을 하던 때도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주위 사람들은 대단하다거나 멋지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나는 평소엔 대단한 쫄보다. 작은 것 하나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걱정 많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다. 

그렇지만 가끔 촉이 발휘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가 바로 갑자기 결정하고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런 즉흥적인 선택이 모두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한 선택이기에 나의 촉을 믿고 후회하지 않으려 한다. 비록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도 다른 이들을 원망하지 않고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를 누군가는 이를 정신승리라 할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소심하고 계획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주위에 있다면 가끔은 계획을 잠시 잊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 의외의 선택을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그리고 결과를 알 수 없기에, 거기에서 오는 의외의 즐거움을 느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 그래서 그날, 우린 뭘 먹었냐고?

족발도 떡볶이도 아니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그리고 식사를 끝낸 후,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야."


그래서 재미있는 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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