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의 균형
오늘이 바로 내가 팬카페에 가입한 지 딱 50일이 되는 날이다.
50일. 덕후라고 하기엔 굉장히 짧은 시간이지만 이 짧은 기간 동안 굵게 활동한 한 사람으로 30대의 덕질에 관해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누구나 연예인을 좋아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이라면 학창 시절, 당시 유명한 가수의 이름을 붙여 'OO부인', 'OO내꺼'와 같은 직관적인 느낌의 닉네임을 사용해 보셨으리라 생각한다. 유명한 아이돌의 팬이었던 10대 때에는 연예인의 열애설만 나도 눈물이 나고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만큼 그를 향한 내 사랑은(?) 진심이었고 하루 종일 연예인 생각만 했다. 아마 10대였기에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했고 응원할 수 있었으리라. 나의 연예인은 그렇게 내 삶에 들어와 있었다.
30대가 된 지금은 덕질하는 나와 현실을 살아가는 내가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에 삶과 덕질의 균형이 꽤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일하는 시간에는 일에만 집중하고 일이 끝난 후 덕생에 복귀한다. 이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을 계속해 온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연습을 하게 된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한 10년쯤 전, 한 절에서 가진 스님과의 차담에 있었다.
균형에 대하여
"화가 난 적 많으시죠? 일하다가도 운전하다가도 때론 길을 걷다가도 화나는 일이 생기실 겁니다. 가끔 절에 오시는 분들이 이런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여쭤보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게서 유체이탈을 해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나와 내가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시라고 말이죠. 그러면 내가 왜 화가 났는지, 이 화나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로 상황이 좋아지거나 화가 삭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런 연습을 계속한다면 화로 인해 발생하는 충동적인 행동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스님의 말씀을 균형을 유지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감정의 기복이 있을 때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기복을 줄이라는 뜻으로 말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나 생각이 날 때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려고 노력했다.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내가 객관적으로 본 바로는 '덕후인 나'는 '내 연예인'의 수많은 팬들 중 한 명이며 그는 나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를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저 내가 즐길 만큼의 덕질을 하며 좋아하고 응원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은 현생과 덕생의 시간 분배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앞서 한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처음엔 카페도 자주 들락거리고 SNS도 많이 하며 덕생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첫 한 달 동안은 카페에 올린 글에 어떤 댓글이 달렸는지, SNS에 새로운 소식은 뭐가 있는지, 우리 슈스(?)는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등 아이돌에 빠진 여고생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아니, 오히려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리하려는 연습을 하면서 50일이 된 지금은 다행히 그 균형을 어느 정도 이루게 된 것 같다.
이렇게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은 꾸준함을 위해서이다. 균형이 무너진다면 큰 기대로 인해 작은 일에 실망하고, 이는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다. 하지만 균형을 유지한다면 작은 흔들림 속에서도 꾸준히 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 나의 현생과 덕생 그 모두를 위해,
나는 오늘도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