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란 무엇일까
미국인 학생 부부의 집에 식사 초대를 받아 그들의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선물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디저트로 먹을 수 있는 빵을 사기로 정했다. 근처 유명한 빵집에 가서 신중히 고르고 있는데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마늘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집에서는 그게 시그니처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 그곳에서 마늘빵과 샌드위치 등 유명한 메뉴를 사서 먹어본 적이 있었다. 원래 마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집의 마늘빵은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그 빵을 집어 드려는 순간, 또 다른 기억이 번뜩 떠올랐다.
그 미국인 학생 부부와 나는 유독 친해서 같이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러 간 적이 많았는데 그때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국 음식은 너무 달아요. 마늘빵까지 달아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마늘빵은 원래 달잖아요."
"아니죠, 원래 달면 안 되는 거죠."
"아, 진짜요? 마늘빵이라는 게 '원래'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먹어본 건 대체로 단데 미국은 안 그런가 봐요."
이런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해보니, 아주 어릴 때 먹어 본 마늘빵은 단 맛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지 않았고 달달한 마늘빵만을 찾아 먹었던 것 같다. 그 말은 그저 내가 달달한 마늘빵만 먹고 다니고 찾아다녔던 것이지 모든 마늘빵이 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날 이후, '원래'라는 말을 쓰기가 조심스러워졌다. 오로지 나의 경험과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기준으로 '원래'를 붙여 말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집은 김장할 때 항상 굴이나 갈치를 넣었기에 '원래' 모든 김치엔 굴 또는 갈치가 들어가는 줄 알았고 콩국수엔 소금을 넣어 '원래' 짜게 먹는 건 줄 알았다.
음식으로만 표현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도 '원래'라는 말을 써가며 나만의 기준으로 정의를 내리는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어릴 땐 더욱 심했으리라.
대학 진학으로 서울에 올라오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여러 환경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내가 아는 '원래'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아가 한국어 과외를 시작해 세계 각국의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 깨달음은 점점 커져갔다.
그래서 지금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내 기준과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말을 바로 부정하거나 판단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되도록이면 '아, 진짜?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한 후 그 친구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려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바로 반박하고 싶고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며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도 꽤 많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절대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사람들마다 기준이 다르다는 점, 그렇기에 여러 만남과 대화를 통해 의견을 나눠봐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래야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으니까, 서로의 기준을 조율해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디저트로 뭘 사갔냐고?
마늘빵을 놓고 옆에 있는 또 다른 시그니처 빵을 샀다.
시나몬과 달콤한 시럽으로 덮인 빵.
미국 사람들은 '원래' 시나몬을 좋아하니까.
그렇다. 난 아직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