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더현대 서울 ALT.1
예민하고 뾰족해진 나의 날카로운 감각기관들을 뭉개고 싶은 날은 인상주의 그림 어떠신가요?
여의도에 있는 더현대 백화점에 가면 세련되고 우아한 공간이 주는 후광에 나도 뭔가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든다. 더현대 백화점은 건물 외관의 붉은색 철골 구조부터가 남달라 시선을 끈다. 한국 전통 건축의 단청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하는데 기존 백화점과는 달라 근처에 두고도 찾지 못할 정도로 반전 있는 외모였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멋진 백화점이 있다니." 게다가 물건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정원 같고, 백화점 전체가 미술관 같은 널찍하고 고급스러운 공간이다. 사람 적은 평일엔 나들이 온 것처럼 들뜨기도 한다. 3층 높이의 인공폭포, 빛과 음악으로 채워진 '사운드포레스트'라는 정원도 있다. 갤러리는 6층에 있는데 중앙이 뻥 뚫린 아트리움 구조라 이를 따라 나선형처럼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로 이동하다 보면 아래층이 훤히 내려다 보여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자연 채광으로 시야가 탁 트여 개방감도 일품이다.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작품이라니 특색 있는 공간의 아름다움은 '말해 뭐 해'다.
추운 겨울이나 비 오는 날, 미세먼지 심한 날은 백화점 안에 있는 ALT.1에서 전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한 식물과 분수, 대형 조형물과 세련된 디자인의 휴식 공간은 춥지도 덥지도 않은 도심 속 힐링이다. 식사와 커피까지 한 공간에서 해결되니 날씨 탓을 안 해도 되는 우아한 일정이 된다.
미술관 이름은 ALT.1 , 그 뜻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안 온다. 나의 좁은 상식으로 ALT는 컴퓨터 자판에 있는 Alt키인데 찾아봐도 그 이상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 alternative는 '대안적인'이란 사전적 의미가 있는데 새로움을 추구하는 최고의(유일한) 미술관이라는 뜻에서 ALT.1이라고 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ALT.1은 백화점에 오는 연령층이 다양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중적인 화가의 작품을 주로 전시하였다. 그동안 전시되었던 유코 히구치 전, 서양미술 800년 전도 기대 이상이어서 모네를 생각하며 다시 찾았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모네 작품은 <수련> 딱 한 작품이다. 미국 우스터 미술관이 소장한 수련 한 작품과 유럽과 미국 인상파 39명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모네가 그린 수련은 250여 개가 된다. 모네는 처음에 아르장퇴유에 살았는데 파리 근교 지베르니로 이주해서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그의 정원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시시각각,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수련의 모습을 그리기 좋아했다.
"나는 내가 본 것만을 그릴 수 있다." -클로드 모네-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모네에 의해 시작되어 150주년을 맞이했다. 1874년 모네는 '앙데팡당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 '해돋이'를 전시하였는데 제목이 너무 밋밋하다는 소리를 듣자 모네는 해돋이 앞에 인상을 붙여 <Impression, Sunrise> <인상, 해돋이>가 탄생했다.
당시 미술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작품이 너무 대충 그려진 것 같다며 "인상만 남겼다."며 비판적인 말로 인상주의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모네와 동료 화가들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것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새로운 화풍을 '인상주의'로 이름 짓고 하나의 미술 사조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인상주의는 유럽 미술의 수백 년간 전통을 깬 새로운 시도의 예술이었다. 사진이 발명되면서 사실적인 회화 표현이 의미를 잃어갈 즈음 인상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아들이 대학생일 때 파리와 이탈리아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다. 내가 썼던 책 <명화와 함께 보는 서양미술사 이야기>에 나오는 그림과 조각품들의 원화를 보고 싶어 미술관을 넣어서 여행 계획을 짜달라고 했다. 여름방학 동안 아들과 유럽여행을 간다고 하니 주변 선생님들은
"아들 참 착하네요. 요즘 누가 엄마하고 여행을 가요?" 나는 이해가 안 갔지만 막상 여행을 가보니 엄마와 딸이 함께 온 가족은 여럿 보았고, 어쩌다 아빠와 딸도 한 팀 보았는데 엄마와 아들 팀은 긴 열흘동안 우리 밖에 없었다. 아들들은 모두 여자 친구 또는 아내와 함께 여행 중이었다. 엄마가 여행 비용을 다 대 주어도 희망하지 않는 것이 '모자(母子) 지간' 여행'이란걸 알게 되었다.
모나리자의 미소와 밀로의 비너스가 있는 루브르 미술관도 보고 로댕기념관, 오르세 미술관에서 밀레와 고흐, 르노와르, 마네도 만났다. 세느강과 에펠탑, 튈르리 정원에서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로댕기념관에서 조각품들도 보며 행복했다.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도 어렵게 예약해 책 속에 있던 <비너스의 탄생>과 <라오콘과 두 아들> 조각품을 보며 흥분했다. 바티칸 시스티나 천정화 <천지창조>는 목이 아파오는 것도 잊고 계속 천정 속에 살아 숨 쉬는 천재의 손길을 감탄하며 구석구석 섬세하게 파헤쳤다.
자유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새내기 대학생 아들이 본인의 취향보다는 엄마의 입맛에 맞게 코스를 짜서 여행 가이드를 해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꽃보다 할배' 이서진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맡아 준 아들이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왜 아들과 엄마가 여행을 하지 않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울그락푸르락 요동치는 시끄러운 감정 덩어리를 끌어안고 사는 갱년기의 엄마와 사춘기의 끝자락에서 다 큰 척 하지만 아직 마음은 덜 자란 아들이 하루 종일 함께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로 참고 배려한다고 했지만 하루도 아닌 열흘의 시간이 계속 좋을 수만은 없었다.
무더운 8월, 하루 종일 걸어 다니는 뚜벅이 여행을 하다 보니 지치고 무릎이 시큰거렸다. 그래도 내색할 수 없었다. 불편하다는 것을 말하면 몸도 안 좋으면서 미술관은 왜 여기저기 다 다니냐고 할 판이다. 오래 걸으면 신발 때문에 발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저렴하고 여유로운 단화를 사 신었다. 한결 다니기가 수월했다.
쇼핑 좋아하는 나는 몇 군데 상점을 돌고 나면 아들 눈치가 보였다. 처음에 같이 들어와 대충 내 진도에 맞게 구경하더니 이젠 들어오지도 않고 밖에서 핸드폰에 눈을 파묻고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상점 들락거리는 것이 이해 안 되는 아들의 인내심과 볼 것 많고 구경할 것 많아 신난 엄마의 과도한 흥분은 결이 맞지 않았다.
궁금한 것이 많은 호기심 천국인 나는 수시로 "지금 어디 가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언제쯤 도착하는지" 질문이 계속됐다. 처음에 상냥했던 아들의 대답은 점점 단답형이나 "네", "아니요"로 짧아지더니 들은 체를 안 하거나 고개만 끄덕였다. 날씨도 덥고 오래 걸어 지치고 식당도 알아봐야 하고 다음 코스 노선도 찾아봐야 해서 머릿속이 복잡한 아들이었다.
급기야 "엄만 뭐가 그렇게 궁금해? 계속 묻고 또 묻고. 그냥 가면 되지." 아들의 볼멘소리에 난 크게 소리 지르고 싶었다. "어딜 가면 지금 어디를 가는 거다. 한 시간쯤 걸린다. 지하철 탈거다. 이렇게 얘길 해 주고 출발하면 좋잖아. 그럼 안 물어보잖아."
"그리고 말이야. 너 어렸을 때는 엄마, 이게 뭐야? 엄마, 저건 뭐야? 엄마, 이건 왜 이래? 하고 하루 종일 묻고 또 물어도 귀찮다는 생각 전~혀 안 했어. 귀엽기만 해서 똑같은 대답을 수도 없이 해 줬는데, 말 좀 미리미리 해 주면 안 되는 거니?"
하지만 무뚝뚝한 아들을 향한 속 시원한 스트라이크는 입 밖으로 내 보내지 못하고 상처받은 마음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 위태로운 조화와 균형이 깨지면 갈등이 시작될 것을 알기에~.
하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적당히 참아가며 부족한 듯 누린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베네치아에서 일이 터졌다.
신경이 예민해졌을 때 체력이 받쳐주면 크게 마음 상할 일은 생기지 않는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몸마저 지치면 그때는 제어가 안 된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아들은 하찮은 것에 어깃장을 놓았다. '시원한 곳에서 좀 쉬면 낫겠지.' 하며 아이스크림 가게로 들어갔다. 하지만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는 그 하찮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과거를 향해 계속 달렸다. 아들은 평소 내게 품었던 불만을 쏟아내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엄마는 내가 지금 어떤 곳에서 지내는지 아느냐" "나는 볕도 안 드는 좁은 방에서 힘들게 지내고 있다" 울며 불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예민해진 말들을 던지면 나는 더 날카로운 말들로 맞받았다.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용돈을 많이 쓰니까 알바를 많이 해야 해서 힘든 거 아니냐" "너는 지금 알바 하는 게스트하우스가 편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사람이 안 차면 빈방에서 자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지 않았냐. " "엄마는 직장 생활하면서 힘든 게 없는 줄 아느냐. 남의 돈 벌기가 쉬운 줄 아느냐."
극도로 예민해진 두 사람의 팽팽한 입씨름은 주변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들이 신경 쓰여 절대 할 수 없는 참았던 말들을 눈물범벅이 되어 먼 타국에다 실컷 쏟아내었다. 그들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들을 거라는 쪼잔한 용기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면 모네의 대형 <수련> 연작 여덟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높이가 2m에 가깝고 총길이는 100m에 달한다. 타원형으로 된 대형 수련 그림이 있는 명상의 방에 들어서면 연못 속에 들어온 느낌이 난다. 동쪽 방에는 아침 태양을 따듯하게 받고 있는 연못 그림이, 서쪽 방에는 해가 질 때의 노을이 드리워진 연못 모습이 그려져 있다. 빛의 화가 모네는 "내 수련에 인공 빛을 쓰지 마라."라고 부탁해 두리뭉실한 수련은 자연 빛 속에서 차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보고 있노라면 날카롭고 예민했던 감정들이 순하게 녹아들어 평화롭고 맥박이 느긋해 짐을 깨닫는다. 되찾은 마음의 평온으로 상처받은 일상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우스터미술관은 설립 초기부터 인상주의를 수용하고 프랑스, 미국의 인상주의 작품을 소장했다. 전시된 수련 작품은 1910년 파리의 유명한 화상이었던 뒤랑뤼엘에게 구입하여 연작 중에서 미술관이 처음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 의미가 있다. 인상주의 화가에는 모네 외에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메리 카사트, 차일드 하삼, 막스 슬레포크트 등 다른 화가들 작품도 함께 전시되었다.
그림을 보면서 아픔을 토해 내세요. 그래도 괜찮아요. 내 마음을 저미고 있는 그 가시가 뽑힐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