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갤러리현대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은 날 '나무 그림' 어때요?
갤러리현대는 개관 55주년을 맞아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1부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뿌리에 해당하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박생광 등 2세대 서양화가를 비롯하여 서양화가 24명의 작품이 4월 8일에서 5월 15일까지 갤러리 본관에서 전시된다.
2부는 실험미술과 현대의 확장이라는 주제로 백남준, 곽인식 등 해외 활동 디아스포라 작가 등 12명의 작품 180여 점은 5월 22일부터 6월 29일까지 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무료 전시이다.
갤러리현대는 박명자 회장이 1970년 인사동에 '현대화랑'으로 시작했다. 한국 최초의 현대 미술 전문 상업 갤러리라고 할 수 있다.
갤러리현대에서 전시된 작품 중 가장 높은 가격을 받은 작품은 김환기의 1971년작 '우주(Universe 5-IV-71#200)'로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 원에 낙찰되어 갤러리현대에서 국내 최초로 전시된 바가 있다.
미술관은 예술작품을 보존, 연구, 교육, 전시를 하는데 반해 갤러리는 전시와 판매가 주된 목적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이중섭 작품이 55주년 기념 포스터이다.
김환기 작품을 지나니 나의 눈길을 사로잡고 걸음을 멈추게 한 장욱진 작가의 작품 두 점이 있었다.
'나무'와 '가로수'이다. 장욱진 화백은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가족, 나무, 아이, 새 등 단순화된 형태와 동화적인 화풍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생각이 작품에 잘 드러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이다.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에 가면 그의 따스한 감성이 깃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간결하고 심플한 '나무'는 많은 표정을 가지고 있다. 자세히 보노라면 '나무'는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내 얼굴 같기도 하고, 내 마음 같기도 하다. 듣고 있노라면 하염없이 이야기를 전해줄 것 같은 깊이도 담겨 있다.
네 그루의 커다란 '가로수' 길에 엄마와 아이, 개, 소가 함께 걷고 있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하늘빛도 곱고 두리뭉실한 나무는 투박하게 정겹다. 플라타너스나 미루나무, 메타세쿼이아 같은 키 큰 나무는 그 동네의 상징이며 이정표였다.
이런 나무 그림을 보면 소환하게 되는 어린 시절 보고픔과 그리움이 내게 있다.
일곱 살 때 나는 충남 당진에 있는 외갓집에서 일 년 살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셋방에서 5 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동생이 태어나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어렵게 사는 큰 딸이 맘에 걸렸는지 막내가 태어날 즈음 나를 시골로 오게 했다. 그때는 너무 어려 그런 생각을 못했지만 좀 커서 '왜 하필 나였지?' 하며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오빠나 남동생이 할머니 댁에 가봤자 할머니를 성가시게 할 일을 만들고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야무졌던 내가 당첨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골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외할아버지는 동트기 무섭게 일어나셔서 내가 일어나길 기다리다가 " ○○야! 얼른 일어나. 할아버지 밭에 나간다."하고 나를 부르신다. 나는 부스스 일어나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가며 이것저것 묻고 답하며 쫑알쫑알 말벗이 되어 주었다. 적적한 시골집에 아이 소리가 들리니 대화 없는 두 노인의 말 수도 늘었다. 간식 귀한 시골이었지만 늘 먹을 것을 챙겨 주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잘해주셨지만 엄마를 대신할 순 없었다. 나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할머니, 엄마 언제 와? 엄마 보고 싶어."
할머니는 "아기가 좀 커야지." 하셨다.
"아기는 언제 커?"
"응. 좀 있으면 금방 커." 우린 똑같은 질문과 대답을 매번 주고받았다.
어느 날은, 마당으로 들어오는데 흙속에 반쯤 잠긴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았다. 파보니 꽤나 무거운 반지였다. 그걸 들고 할아버지께 가서 "할아버지 이거 주웠어요." 했다. 할아버지는 얼굴이 환해지며 "내가 이걸 잃어버리고 몇 날을 속을 끓였는데 어디서 주웠어?" 내 등을 토닥이며 무척 좋아하셨다. 그날 저녁상에서 할아버지는 "○○야. 오늘은 밥값을 했으니 많이 먹어라.' 하시며 맛있는 고기반찬을 내게 다 올려주셨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밥값을 한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으쓱했다. 할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시니 나도 좋았다.
또 어느 날은, 근처에 사는 미순이 언니와 할머니 집 바깥마당에서 돌멩이를 주워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가 저 멀리서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공기를 내던지고 "엄마!"를 수도 없이 부르며 언덕배기에 있는 엄마를 향해 달렸다. 엄마는 아기를 포대기로 업고 양손에는 이것저것 짐을 들고 미루나무가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올라오고 있었다. 엄마를 끌어안고 폴짝폴짝 뛰었다. 기쁨도 잠시, 엄마는 옷과 장난감을 남기고 나와 하룻밤을 잔 후 아기와 떠났다. 오빠와 남동생을 이웃집에 하루 맡기고 온 거라 가야 한다며~
그 후로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동구 밖을 내려다보며 미루나무를 보는 일이 길어졌다. 버스가 오갈 때마다 혹시나 엄마가 내릴까 해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봤다. 바람 많은 날은 미루나무 이파리가 손을 흔들며 햇살에 부딪혔다. 반가운 엄마를 보았을 때 그 곁에 있었던 미루나무가 나는 좋았다. 우리 엄마를 알고 있는 미루나무였다. 엄마가 다시 온다면 미루나무가 먼저 알려줄 것 같았다. 키 큰 미루나무는 말쑥한 신사 같았다. 마을 어느 곳에 있어도, 멀리서도 잘 보였다.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으면 이제 그만 들어가라고, 어두워졌다고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던 날은 엄마가 오던 날과 똑같은 장면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가 또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미순언니를 불러 공기놀이를 했고 미루나무를 바라보고 앉았던 방향도 맞추고, 그날을 기억해 똑같이 재연해 보기도 했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 긴 보고픔과 기다림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끝이 났다. 새 봄이 되기 전 나는 가족의 품에 안겼다.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고된 삶을 살았던 엄마는 한 7~8년 전부터 좀 이상해졌다. 내가 누구인지 헷갈려하시더니 점점 내가 딸인지,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치매는 추억을 앗아갔고 가족과의 기억을 송두리째 묻어버렸다. 나는 일곱 살 적 엄마가 나를 찾아온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미루나무를 바라보며 엄마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그런 얘기도 해 주고 싶었다. 아주 작은 추억도 나눌 수 없는 치매 엄마를 보는 것이 마음 아팠다.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엄마였지만 자식들이 가면 반가워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딸인지, 아들인지는 기억 못 하지만 남처럼 경계하지 않고 함박웃음이 계속되었다. 왜 벌써 가냐며 곁에 딱 붙어 앉아 손을 꼭 잡은 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피붙이의 끈끈한 모정이 치매를 이기는 순간이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해 무엇이든 심고 가꾸던 엄마. 엄마가 새 봄이 되기 전 하늘 품에 안기셨다. 엄마가 좋아하던 꽃과 나무가 화려해지는 봄이 되니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그 어릴 때 내가 동구밖 미루나무를 보며 엄마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처럼 엄마도 적적한 방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자식들을 기다리고 계셨겠지?' 생각하면 마음이 저린다.
박수근- 노상
도상봉 - 삼청공원
황영수 - 장미
김환기 - 산
김종학 - 무제
김상유 - 무진시경
여러분은 어떤 그림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