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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외로울 때 '들꽃 그림' 어떤가요?

#1 달빛미술관

by 향기나
마음이 외롭고 초라해진 날, 사람의 향기가 그리운 날은 들꽃 그림 어떤가요?


4월, 남쪽에서 꽃들의 개화 소식이 들려오고 사람들이 꽃구경을 시작하면 내 마음도 봄처럼 들뜬다. 서산의 유기방 가옥은 수선화가 꽃동산을 이루어 봄이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나도 설레는 마음으로 그 부름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마진식 작가의 개인 미술관인 달빛미술관은 유기방 가옥 가기 직전에 있었다. 재작년 봄, 수선화 보러 가던 길에 미술관 이름이 예뻐서 차를 세웠다. '달빛미술관이라니. 운치 있는 걸.' 하지만 하필 월요일이었고 휴관이라 아쉽게도 바깥 모습만 보고 나왔다. 들꽃을 좋아하는 나는 작가의 그림이 궁금해 올봄, 수선화가 필 무렵 다시 미술관을 찾았다.


그 사이 정원에 홀로 있던 말은 식구를 늘려 한 가족이 되어 혼자 있을 때보다 정답고 화목해 보였다. 정원의 모든 조형물들은 미술의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손재주가 좋은 작가님 작품이다. 흑마와 백마는 휘날리는 갈기와 쳐든 목에서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듯한 역동적인 모습을 보였다.

창문도 액자처럼 그림을 담고 있는 미술관, 초승달이 지붕 위에 올려져 마치 노란 달빛이 비치는 듯한 입구로 들어서니 90가지 서로 다른 모양의 부엉이가 입구에서 반긴다.

전시 주제는 '들꽃'이다.


들꽃 그림을 주로 그리는 마진식 작가는 그의 저서 '77가지 야생화 그리기'에서 들꽃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나는 들꽃을 그린다. 나에게 들꽃은 삶의 동력이자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들꽃과 사랑에 빠졌다.
그 시작은 내 마흔 즈음, 우연히 만난 봄맞이꽃이 나를 들꽃의 심연으로 초대했다. 양지바른 논밭두렁에 오목이 자리 잡는 봄맞이꽃 그 하얗고 청초한 꽃잎의 자태가 나를 매료시킨 것이다.


나는 들꽃 같은 은은한 사람이 좋다. 장미의 화려함이나 백합의 진한 향기보다 들꽃의 수수한 향기와 소박함이 좋다. 단순한 듯 느긋한 아름다움은 '진심'으로 감싸져 진득하니 가볍지 않아 좋다. '너무 고와 빨리 지는 것보다 담백하여 오래가는 것이 낫다.'는 채근담의 문장이 들꽃을 닮았다.


들꽃은 조용히 견딘다. 누군가에게 짓밟혀도, 상처가 나도 성내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낸다. 조급함과 들쑥날쑥 마음의 소용돌이가 없는 그 차분한 인내심과 무던함이 좋다.


들꽃은 홀로 피었다 홀로 진다. 외롭다고 떠들어대거나 징징거리지 않는다. 심심하다고 아무나 만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홀로 있어도 아름다운 꽃이다. 혼자 있음에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유로운 사람이 들꽃 같은 사람이다.


들꽃은 반딧불이다. 내가 빛나는 별이 아니란 걸 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헛된 꿈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내가 최고라고 과대포장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기웃거리지 않는다. 치장하지도 않는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한다.


들꽃은 강인하다. 모진 바람, 뜨거운 햇살, 살을 에는 추위, 비바람과 폭풍우에도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는다. 강한 생명력은 세상의 모든 엄마를 닮았다. 연약한 듯 꼿꼿한 의지는 언 땅속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분신인 씨앗들을 보듬으며 새봄을 차분히 기다린다.


박태기 능수벚꽃
수국 꼬리조팝





어린 시절 시골 외가에 가면 할머니는 일꾼들에게 수(壽), 복(福) 자가 새겨진 그릇에 고봉으로 밥을 올려 내놓았다. 할머니는 간식조차 변변치 않은 시골 사람들은 밥심으로 일을 한다면서 밥을 산더미처럼 계속 올렸다. 그릇 안에 채워진 밥보다 그 위로 올라간 밥이 더 많아질 때까지. 갓 지어낸 따끈따끈한 할머니의 고봉밥에서는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밥은 입으로 먹는 음식이며 가슴으로 삼키는 위로였다. 사람들은 그 높이 솟은 밥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뚝딱 해치우고 숭늉을 부어 휘휘 밥사발을 돌려 그릇을 헹군 후 후루룩 마시고 다시 일터로 향했다. 꽃향기가 나는 밥을 먹은 사람들은 그 인심에 대한 보답으로 설거지하기 좋게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사람의 향기는 또 다른 향기로 전염되었다.


'인향만리'


마진식 작가의 꽃밥 두그릇을 보니 꽃향기보다 진한 사람의 향기가 그리워지는 봄이다.




오늘 외롭고 초라한 기분이 들었나요? 혼자 피어 있을 때 더 당당하고 아름답다는 작가님의 캘리그라피 글귀를 보고 힘을 내 보세요
당신은 들꽃처럼 강인하고 향기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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