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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탁 트인 미술관 여행 어때요?

#06 젊은달Y파크

by 향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는 맛있는 거 먹으러 떠나요. 맛있는 거 먹고 기분 좋아지면 붉은색이 가득하고 공간이 탁 트인 젊은 달 미술관을 들러 보세요




'시절인연'이라는 노래가 있다.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 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인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랠 듣고 "와!, 무슨 노래지?~~" 하고 찾아보니 이찬원의 '시절인연'이었다. 노랫말과 딱 들어맞는 제목에 노래가 좋아져 자주 흥얼거리게 되었다.


'시절인연'이란 어떤 인연이든 오고 가는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학창 시절 죽고 못살던 친구들도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모르고, 연애할 때 너무 좋아 매일 만나던 사람도 잊은 지 오래다. 그때 딱 그만큼만의 시절인연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의 시절이 되었을 때 '서로 베풀고 양보하고 더 잘했다면 그 인연은 평생을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의 노력이 부족했겠지'하다가도 모든 인연을 다 이끌고 가기에는 인생 살기가 너무 버겁다. 가끔은 덜어내고, 가끔은 다시 채우고 그러면서 서로 맘 다치지 않고 웃을 일 많을 인연들을 만나 남은 인생이 더 윤기 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요즘 자주 만나는 나의 인연 중 하나는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친구들)라는 모임 친구이다. 나, 금옥이, 경옥이 이렇게 셋이다. 우리는 퇴임 전 근처학교에 근무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라 서로 학교업무와 일정에 대해 의논할 일이 많아 친해졌다.


인연을 만들어 준 연결고리는 근처학교라는 것 말고도 나이도 같고, 살아오면서 말하기 힘든 같은 아픔을 하나씩 갖고 있다는 공통분모가 한몫했다. 퇴임도 거의 비슷하게 해서 직장 동료에서 이제 우린 여행 친구가 되었다. 40여 년 넘는 동안 힘든 학교생활을 견뎌낸 우리들이었기에 퇴임 후에는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기로 했다. 힘든 순간마다 서로를 위로하며 얼마 안 남은 직장생활을 잘 마무리하자고, 그 이후엔 맘껏 행복하자고 '볼매결의'를 다졌었다. 결의대로 퇴임 이후부터 우린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여행을 다녔다.


우린 서로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았다. 고기를 안 좋아하는 나와 금옥이, 고기파 경옥이. 추위를 타는 나와 금옥이, 더위를 못 견디는 경옥이. 체질도 다르고 식성도 달랐다. 하지만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주는 각기 다른 성격으로 여행은 매번 빛났다. 금옥이와 나는 MBTI의 F가 강한 반면, 경옥이는 최강의 T이다. 우리가 슬렁슬렁 무계획적이면 경옥이가 검색과 꽉 찬 계획으로 빈틈없이 채워줬다. 때론 계획대로 따르기보다 마음 내키는 대로를 추가해 일정을 늘이거나 줄이거나 삭제해도 맘 상해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는 친구들이어서 좋았다. 물 흐르듯 상황에 맞게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었기에 2년 넘게 '마음 가는 대로 흐르는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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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그곳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


'영월 서부시장에 가면, 나의 소울 푸드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여행작가 지망생 금옥이가 쓴 글을 읽었다.

-중략- 전병에 들어가는 재료는 단출하다. 묽디묽은 메밀 반죽, 데친 무와 김치를 잘게 썰어 양념한 전병 소가 전부이다. 전병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영월 척박한 땅에서 거칠게 자란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다. 정직한 맛이다. 메밀 부침개도 맛있다. 메밀 반죽을 소당에 한 국자 두르고 얇게 편다. 그 위에 절인 배추를 반쪽씩 찢어 넓은 소당 크기로 얇게 편 반죽 위에 올린다. 다시 반죽을 반 국자 떠서, 한 바퀴 두른 후 고르게 펴고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힌다. 백지장 보다 얇은 야들야들한 메밀 부침개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진다. 메밀 한 가지 재료로 어떻게 이런 완벽한 맛을 내는지 마술에 가깝다. 올챙이국수도 어디서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맹탕인 것 같은 심심한 맛인데 혀끝에 남는 끝맛은 고소하고 깨끗하다. 담담한 맛 이 한 가지 맛으로 맛의 끝판왕 자리에 오른다. 노랗고 귀엽게 생긴 것이 매끄러워 후룩후룩 넘어간다. -중략- 메밀전병과 메밀 부침개가 먹고 싶을 때마다 영월 서부시장에 간다. 연*집 전병을 먹으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세상에 나가 싸울 용기를 얻는다. 괜히 힘이 난다. 3시간 장거리 운전이 오히려 신난다. 자주 자꾸 생각이 나는 연*집 전병은 나의 소울 푸드이다. -일부 발췌-


"전병이 그렇게 맛있단 말이야. 당장 먹으러 가자." 금옥이의 글을 읽자마자 나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그곳의 음식을 맛보고 싶어졌다. 금옥이와 경옥이가 영월 갈 때마다 여러 번 먹었다는 그 전병과 메밀부침.



맛깔스러운 글 덕분에 메밀 전병 맛집을 찾아 급 영월 여행을 떠났다. 볼매여행에서 맛집 투어는 큰 즐거움이다. 한 번은 금옥이가 좋아하는 연*집에서 또 한 번은 경옥이가 자주 간다는 미*집에서 메밀 전병과 부침, 올챙이국수를 맛보았다. 금옥이의 글처럼 반죽을 얇게 펴서 전병을 만드는 상인들의 손놀림은 장인 수준이었다. 금옥이의 소울푸드인 *집 원조 주방장이신 할머니가 요즘은 안 계시고 딸이 만들고 있었다. 미식가가 아닌 나는 글에서처럼 소울푸드가 될 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음식을 만난 기쁨은 컸다. 전병을 먹기 위해 3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영월로 가는 금옥이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전병집이 가득한 다정다감한 서부시장을 만난 것은 새로움이었다. 전병집을 나와 영월의 볼거리 '젊은달Y파크'를 찾았다. '볼매'의 또 다른 즐거움은 모두 미술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젊은달와이파크'는 기존의 탄광과 술샘박물관을 탈바꿈시켜 현대적인 대규모 복합 예술 공간이다.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 조형물, 공방, 박물관, 카페 등이 어우러져 이색적인 문화와 예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젊은 달은 영월의 우리말 표기이다. 자연과 함께하는 대지미술이 많아 미술관이라는 이름보다 파크라는 이름을 쓴 것 같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붉은 나무 숲을 만난다. '젊은달와이파크'에서 인기 있는 작품은 입구에 설치된 대형 설치미술 ‘붉은 대나무’이다. 붉은색이 주는 압도적인 아우라는 시선을 끌기 좋은 사진 명소가 되었다.


‘붉은 파빌리온’이라는 작품을 통과해야 카페와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젊은달와이파크'를 기획한 사람은 조각가 부부인 최옥영·박신정이다. 강릉 '하슬라아트월드'를 설립한 예술가로, 영월군의 제안으로 방치된 술샘박물관과 주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젊은달와이파크'의 실내 전시장에는 조각가 최옥영의 공간 기획으로 붉은색을 주요 컬러로 사용, 10여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전시를 하고 있었다.




녹색의 자연과 어우러진 붉은색의 보색대비는 신선하고 강렬하다. 공간이 주는 쉼을 통해 지쳤던 열정이 다시 꿈틀거린다.


맛있는 것을 먹고 넓은 공간에서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생성됩니다. 이러한 호르몬은 기분을 안정시키고 즐거움과 동기를 부여합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하던 일을 덮어버리고 일단 소울푸드를 찾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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