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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보다 어려운 건 인간관계였다

모니터 너머 벌어지는 작은 전쟁

by 통역하는 캡틴J

어느 집단이든 그 안에서의 인간사가 있다. 통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통대에서의 나의 인간관계는 여전히 좁았고 그렇기에 나는 소문의 끝자락에 있었다. 그렇지만 통대에서의 인간사는 스터디를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스터디”라는 활동은 통대에서 조금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흔히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문제풀이를 하고 면접을 연습하는 스터디 형태와 전혀 다르고 통대를 위한 스터디는 그야말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보통 통대생들은 대통령실 홈페이지나 정부부처의 자료실 같은 곳에서 양질의 연설문을 골라 이를 워드에 옮긴다. 연설문에서 고유명사나 전문용어를 GLOSSARY라는 소제목 아래 목록화한다. 이상적으로는 내가 이 자료를 스터디 파트너에게 제공하기 전에 먼저 공부해 보고 통역도 해보면서 생소하거나 통역이 잘 안 나왔던 부분은 따로 정리를 해두어야 상대방에게도 이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많게는 하루에 네다섯 명씩 매일 수차례 다른 스터디 파트너를 만나며 내가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주고 상대가 통역을 하면 경청하면서 부족한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일상이 반복된다.


이렇게 보면 스터디 자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겪는 불편감은 주로 스터디 준비의 결이 나와 다른 파트너와 함께할 때 발생했다. 애초에 스터디 파트너를 구할 때 소개팅처럼 나와 맞는 사람이 누군지 하나씩 따져가며 정하는 게 아니라 나와 스케줄이 가장 잘 맞는, 그러니까 때와 장소에 따라 정하기 때문이다.


스터디를 해나가면서 용어정리를 건성으로 하거나 관련 개념을 설명해주지 않고 알아서 1:1 단어 쌍만 참고하라는 식으로 스터디를 진행하는 사람, 남이 정성스럽게 만든 스터디 자료를 돌려가며 써먹는 사람, 시간 약속을 지나치게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의 통역에 별 문제가 없다는 식의 피드백을 주던 사람도 있다. 내 통역을 꼼꼼하게 듣지 않았거나, 통역 오류나 결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실력이거나, 평가의 기준이 너무 낮거나 하는 등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 케이스라면 이 스터디가 지속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스터디라는 것도 결국 사람 대 사람 사이에 진행되는 활동이기 때문에 시작과 종료가 인간관계를 시작하고 끝맺음하는 것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터디를 시작하는 것은 쉽지만 스터디를 끝내자는 말을 할 때는 특히 서로가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끝내자고 소통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사정을 이해해 주면 그만이지만 의도와 다르게 서로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다. 또 나와 스터디를 그만둔 동기가 다른 스터디 파트너와 새롭게 스터디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들었을 때 박탈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학기를 온라인으로 시작해 온라인으로 끝냈던 기수로 우리는 기억되겠지만 모두의 작은 모니터 너머 통대만의 복잡한 인간관계가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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