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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언어의 차이

서로 어우러질 수 없는 진짜 이유

by 통역하는 캡틴J

영어와 한국어는 어순이 달라 치환하기 힘들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맥락에 그 답이 있다. 이 얘기를 하자면 역사알못인 나조차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15세기 초 조선이 건국한 이래로 불교가 가고 유교가 본격적으로 국가 이념이 되었던, 숭유억불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애(仁愛)‧예악(禮樂)‧신의(信義)‧효제(孝悌)‧충서(忠恕)‧공경(恭敬)의 유교 사상이 깊게 자리 잡으며 이것이 그대로 언어에도 반영되었다. 진지/밥, 연세/나이, 댁/집의 다양한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어는 관계와 상황에 따라 다른 단어와 말투를 사용한다.


미국은 역사에 기록된 바와 같이 뉴잉글랜드 인들에 의해 분리주의 성향의 청교도가 북아메리카에 정착하며 일찍이 평등사상이 자리 잡았다. 개인이 가진 위치와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며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모든 관계는 평등하고 내 배경과 여건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사다리에서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여지가 높다. 미국은 현대 사회에 진입하며 점점 더 많은 이민자가 유입되고 이러한 가치관은 더욱더 뿌리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하나의 문화가 고맥락인지 저맥락인지를 가리키는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1. 사회지향성(social orientation): 나를 둘러싼 주변에 것들에 얼마나 관여되어 있는가.

2. 책무(commitment):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것에 대해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가.

3. 책임(responsibility): 고맥락 사회에서 윗사람(그것이 한 가장이든 상사이든)은 아랫사람에 대한 책임을 가진다.

4. 직면(confrontation): 어떠한 상황에 직면할 때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고맥락 사회에서는 보통 남과의 충돌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되도록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리스크를 지기보다는 차라리 감정을 숨기는 것을 택하는 것과 같다.

5. 소통(communication): 고맥락 문화권의 사회적 계층과 그 구조로 인해 각자는 자신이 사회 어느 그룹에 속해있는지 잘 알고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을 상세히 드러내지 않고도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구성원 간의 소통은 간결하다. 저맥락 문화권에서는 좀 더 상세한 소통이 필요하다.

6. 새로운 상황(new situations): 저맥락 문화권의 개개인은 새로운 상황에서 독창적으로 대응한다. 고맥락 문화의 경우 개개인은 익숙한 상황에서는 독창적으로 대응하지만 정상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다소 분투한다.


영어는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가 정해져 있다. 그리고 그 요소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문장에 주어 동사 목적어가 꼭 필요한 이유이다. 개인은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고 각자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 기본적인 가치관이기에 상대방과 많은 정보를 주고받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맥락을 좀 더 제공해야 상대방이 이를 이해할 수 있고 디테일을 제공할수록 상대방과 가까워진다.


반면 한국어를 살펴보자. 한국에서는 개인이 최소 하나 이상의 집단에 속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령자, 십 대, 여자, 남자, 임산부, 아이의 엄마, 사무직, 생산직 등... 그 집단에 대한 기본적인 사회적 특징을 기반으로 우리는 이미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고 본다. 즉, 나는 상대방의 역할이나 특징 등을 조금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때로는 고맥락 언어 특성상 문장 요소가 누락되어도 빈칸 채우기처럼 상대를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고맥락 사회 구성원은 반드시 어딘가에 속해있고 상대방이 이를 아는 상황에서는 서로 크게 디테일을 제공하지 않아도 원활히 소통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언어의 맥락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소통의 격차를 아래 예시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종종 인사치레로 하는 말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은 한국인에게 했을 때는 "그래"라는 답변으로 대화가 종료되지만 외국인에게 하면 "언제?"라는 답변이 돌아온다는 흔한 사례가 있다.


카페에서 의자가 부족해 어느 테이블에 보이는 빈 의자를 가져올 때 “이 의자를 가져가도 될까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의자를 사용 중이신가요?”라고 말할 때도 있다. 가져가고 싶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상사가 일을 시킬 때 “자네가 지금 맡은 일이 없어 보이니 업무를 할당하겠다” 대신 “자네 지금 하는 업무 있나?”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일을 시키고 싶다는 뜻이다.


어느 다국적 기업에서 프로젝트 진행 관련된 논의를 할 때 못한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한국인이를 단순한 어려움 토로로 받아들이는 외국인과의 협업은 지속적인 조율이 필요한 일이리라.


혹시라도 앞으로 살아가며 외국인과 일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이 있다면 위 설명한 내용과도 연결된 아래 책을 강력 추천한다. 번역본 제목은 <컬처 맵>이다.


출처: 교보문고




사실 우리나라에 유교 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 잡긴 했지만 시대가 변하며 이제 우리나라도 서양의 개인주의가 번져가는 느낌이 든다. SNS나 뉴스 상에서 서로 말꼬리를 잡으며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자주 보다 보면 어쩌면 이제는 우리나라에 개인주의와 개성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퍼졌어도 여전히 언어는 과거의 유교 사상에서 시작되었던 그때의 상태로만 남아있어 소통의 어려움이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든다. 원래 고맥락 언어였던 한국어도 이제는 저맥락 사회의 가치관이 널리 퍼지고 있는 지금, 그 맥락의 수준에 맞게 많은 정보를 우리의 언어에 담아 소통한다면 적어도 맥락과 소통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불화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고찰해 본다.


출처: Lincoln, S. (2010). The far side: Contrasting American and South Korean cultural contexts. Asian Social Science, 6(12), 97-105. https://doi.org/10.5539/ass.v6n12p97


https://www.tctcc.taipei/ko/C/ideology/ideology/1%7C9/32.ht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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