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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의 이사에도 살아남은 책들

by 통역하는 캡틴J

우선 내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통번역 책이 아니다.

통번역을 "위한" 책이다. 혼자 통번역대학원을 준비하며, 또는 이후 통대를 다니면서 알게 된, 다섯 번 이사 다녀도 절대 버리지 않고 품고 다니는 책 세 권을 소개한다.


1. 영어 순해

영어 순해는 독해깨나 하는 사람이 보면 좋다. 자기가 얼마나 못하는지 절실히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소에 흔히 접하던 영어 문장에서 완전히 탈피한 지극히 영어스러운 문장을 나열하고 그 문장을 다시 흔한 구조로 풀어주는 게 장점이다. 이 책은 여러 번 볼수록 좋다. 기본적인 독해를 잘하고 나면 이 책을 통해 고수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 문장을 보고 무슨 뜻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거나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이고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1) This play reads better than it acts.

2) This pen is weird, it won't write.

3) He overworked himself sick.

4) She argued him out of the decision.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2. 이케가야 유지 뇌과학 시리즈: 해마, 기억력 학습법, 뇌는 왜 내 편이 아닌가

통대 준비할 때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기억력이었다. 왜냐면 1~2분가량 지문을 읽어주면 그 내용을 외웠다가 반대 언어로 요약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좀 전에 했던 말도 기억이 안 나는데 A4 한 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듣고 외워서 바로 요약하라니... 여기서 시작되어 발견한 책이 이 뇌과학 시리즈이다. 이 책은 주로 뇌가 어떻게 정보를 처리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려주면서 내 뇌를 나에게 이해시키는데 탁월한 책이다. 다음은 “해마”의 목차 일부이다.


- 사는 일에 익숙해져서는 안 된다

- 머리가 좋고 나쁨은 호감도에 달려 있다

- 사람은 자극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

-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능력

- 우리 뇌는 결코 지치지 않는다

- 공부를 쉽게 할 수 있는 비결

- 뇌의 완고함을 경계하라

- 잠을 자야만 생각이 정리된다

- 완고함 때문에 머리가 나빠진다


대략의 소제목만 보아도 정말 흥미롭지 않은가...!

특히 저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능력"은 통역 2차 시험공부에 도움이 되었다. 1-2분가량의 지문 내용을 기억할 때 내 이전 경험과 지문을 최대한 연결시키고 지문의 핵심 내용을 뽑아서 이를 줄기처럼 엮어서 들을 때 기억이 잘 되었다.




3. 번역의 탄생

이 책은 번역을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보석 같은 책이다. 우선 번역을 하기 위해 한국어의 특성과 영어의 특성, 그리고 두 언어의 차이점을 알아야 하는데 그 점에서 아직까지 이 책 보다 좋은 책은 보지 못했다. 마치 영어순해 책의 교양책 버전 같다. 이 책의 결을 보여주는 예시문을 이곳에 적어두려 한다.



원래 한국어는 특히 추상 명사가 주어나 목적어 자리에 오는 걸 꺼립니다. 전통 한국어는 “무분별한 개발은 자연 파괴를 낳는다.”라는 표현보다는 “무분별하게 개발하면 자연이 파괴된다.”라는 표현을 선호했습니다. “보호를 요청했다”라는 표현보다는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라는 표현을 좋아했습니다. 아마 여러분 귀에는 명사를 주어로 삼은 앞의 문장이 뒤의 문장보다 힘차고 세련되게 들릴 것입니다. 제 귀에도 그렇게 들립니다. 왜 그렇게 달라졌을까요? 번역문에 우리가 많이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한국어와는 달리 주어 자리에 추상 명사가 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명사의 행동 범위가 한국어보다 훨씬 넓다고 할까요. 가령 “The doctor’s careful examination brought about the patient’s speedy recovery.” 같은 문장을 많은 한국인 번역자는 “의사의 꼼꼼한 진찰은 환자의 빠른 쾌유를 가져왔다.”라고 옮길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누군가가 번역을 했다면 아마 “의사가 꼼꼼히 돌봐준 덕분에 환자가 빨리 나았다.”라고 옮겼을 겁니다. 저는 두 번역 다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개인적으로는 특히 어려운 책일수록 나중 번역문처럼 전통 한국어 문체로 번역하려고 애쓰는 편이지만 처음 번역문도 이제는 한국어의 일반적 문체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출처: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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