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은 국간사
군인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직업이고 간호사 또한 누구나 아는 인지도 높은 직업이다. 그런데 간호장교라는 직군에 대해 설명할 때는 차라리 군인이자 간호사인 사람이라고 설명하는 게 더 용이함을 느낀다. 이렇듯 이 직업에는 이도저도 아님과 동시에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이중성이 깔려 있다. 아마 이 이중성이 좀 더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보고자 하는 나의 욕구를 꽃피운 씨앗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선 간호장교가 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학사장교: 일반 간호대학에 입학해 졸업한 후 소정의 훈련 과정을 거치면 임관한다.
2. 국군간호사관학교(이하 국간사): 고3 입시 시즌에 1차~3차의 시험까지 모두 합격하면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입학을 하게 된다. 이후 4년간 교육과정을 거쳐 간호사 국가고시를 합격해야 최종 임관할 수 있다.
위 두 가지를 보면 1번은 짧고 2번은 길고 지난한 과정인데,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1의 경우 중위 이상으로 가려면 장기복무에 선발되어야 하고 간호장교 중 국간사 출신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
2의 경우인 국간사가 길고 지난한 이유는 우선 입학 자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1차 시험인 사관학교 공통시험을 치르고 2차인 체력검정과 면접을 통과해야 하며 수능성적까지 합산해서 합격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이를 통과했다고 끝인 것도 아니다. 무시무시한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마쳐야 입학을 하게 된다. 이 4주 기간 중 실제로 중도에 나가는 이들이 정말 많다. 인간답지 못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여린 여자 아이들에게 포크 숟가락으로 컵라면을 직각 식사로 먹게 한다거나 얼차려를 시키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모진 생활을 시킨다면 차라리 지금 발을 떼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들게 하기에 충분했을 수 있다.
그렇게 입학하고 나면 위에 2, 3, 4학년 선배들의 군기 잡기 뿐만 아니라 두꺼운 책 한 권을 빼곡히 채운 각종 규정을 모두 지키며 4년간 생활해야 한다. 술 담배는 당연히 금지이고 사회에서 정상으로 통용되는 행동들도 여기선 금지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 와중에 일반 간호대학의 정규 학점을 모두 이수하며 군사학 학점, 항공간호, 해양간호, 재난간호 등 특수간호를 병원 실습과 별도로 추가 이수한다. 모든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4주 이하이다. 졸업반인 4학년부터는 간호사 국가고시에 매진하고 여기에서 국가 자격증을 따야 최종 임관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4년이라는 기간 중에서도 중도 자퇴를 선택하는 사람은 많다.)
소위로 임관 후에는 각 군병원으로 무작위 배정되고 중위부터는 본인의 주특기(중환자, 응급실 등 특수간호)를 선택해서 진로를 결정하거나 파병, 영어반, 사단 발령, 미군 병원, 대학원 지원 등 다양한 경로를 추가로 선택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2번의 과정은 너무나 험난해서, 미리 알았다면 절대 발을 들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후회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1. 여자로서 군대를 다녀와본 것.
2. 군인도 할 수 있으며 간호사도 할 수 있게 된 것.
3. “총과 수류탄을 경험해 본 자, 뭐든 할 수 있으리“ 라는 근자감을 갖게 된 것
지금도 일상생활에서 종종 의류대, 완전군장, 피엑스 등 내 과거를 드러내는 언어가 튀어나오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나를 급히 쉬쉬 시킨다. 하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내가 군대 나온 여자라는 것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거쳐간 다양한 회사에서 종종 남자 직원들이 군대 얘기를 할 때 나도 껴서 같이 얘기할 수 있었다. 그 직원들은 나를 정말 신기해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처럼 생겼고 체형은 마른 편이다. 사고는 꽉 막히지 않았고 오히려 유연하며 수용적이면서 변화를 좋아하고 지나치게 자유로운 편이다(이것이 나의 전역에 기여했을 수도). 어떤 이들은 내가 본인들과 특별히 달리 생겨먹지 않은 것에 대해서 대놓고 신기해하기도 했다. 내 이력서는 어디 가도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성 면접에서 요청하는, 삶에서 겪은 다양한 사례는 숱하게 많았기에 진심을 담아 예시로 설명하기 어렵지 않았다.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한 것도 큰 이점이 되었다. 학교 졸업 전까지는 군인의 면모를 좀 더 성장시킨다는 점에 집중한다면 임관 후에는 간호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살게 된다. 비록 대부분의 환자가 병사나 장교, 부사관이라는 차이도 있겠지만 순화된 버전의 의사인 군의관과 함께 근무한다는 점은 영락없이 내가 간호사라는 점을 일깨워 주는데 기여한다.
환자의 중증도는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가장 큰 군병원인 국군수도병원과 국군외상센터에서 근무한다면 총상 환자나 교통사고, 뇌종양 등 중증 환자들도 꽤나 많은 편일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병원에 발령받았을지라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심각한 내과/외과 환자를 처치하며 혈액 채취의 달인이 될 수도 있다. 전방 병원에 갈 경우 장교로서 받는 동계 훈련도 빼놓을 수는 없다.
사실 전역하기 직전까지도 나는 나의 정체성에서 오는 혼란을 해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짜 이 이중성의 가치를 알게 된 건 전역 후 그 출신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이를 향한 우호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덕분에 오히려 이도저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러한 이중성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는 일타쌍피의 두 가지 직업을 경험하게 해 준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앞으로 국간사를 준비하는 모든 학생들과, 현재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 되었길 바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에 소속되어 복무 중인 모든 간호장교께 건투를 빌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