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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너무 사랑해서 그만...

by 통역하는 캡틴J

그렇다.

나는 커피를 사랑했다.


단순히 아침에 잠을 깨는 용도로 마시는 한 잔보다는 조금 더 커피를 좋아했다.


커피에 대한 사랑은 10년도 더 전에 대학생 시절 스타벅스에서 시작되었다. 외출 자체가 귀했던 코찔찔이 시절에 친구에게 무려 옵션을 다섯 가지나 추가한 스타벅스 커스텀 라떼를 부탁했다가 욕 아닌 욕을 먹었더랬다!


스타벅스는 당시에 내 놀이터였다. 탄 맛이 짙게 느껴졌던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바닐라 라떼, 그리고 다양하게 옵션을 추가하며 수십 가지의 조합을 만들 수 있던 나의 최애 카페였다.


시간이 흐르며 내가 이렇게 즐겼던 다양한 커피를 집에서 재현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스프레이형 휘핑도 사보고 바닐라 시럽도 직접 구매하면서 집에서 이것저것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사실 단 한 번도 밖에서 느꼈던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나의 외부 카페 탐방도 계속되었다. 이 시기의 나는 더 이상 프랜차이즈에 다니지 않고 거주지 반경 몇 킬로 내의 개인 카페를 찾았었다. 기억을 잘 더듬어보면 당시 집에서 차 타고 3분 거리에 있던 180 커피로스터스는 내가 로스터리 카페만 찾아가게 된 시작점이었던 거 같다. 또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유명한 로스터리가 내 집 근처에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다양한 비프랜차이즈 카페를 다니며 내가 카페를 고를 때의 기준을 몇 가지 세우게 되었다.


1. 카페 이름에 로스터리가 붙은 건 커피 맛이 평균 이상은 할 거 같다.

2. 메뉴가 너무 많지 않아야 한다.

3. 자기 매장의 시그니쳐 음료가 한두 가지 있다.

4. 플랫화이트를 파는 매장은 눈여겨볼 것.

5. 인테리어가 모던함.

6. 커피와 페어링 할 디저트 두세 가지를 판매.




그동안 내 홈카페는 조금씩 구색을 갖추어나가고 있었다. 카페컵과 다양한 시럽 그리고 한 대의 캡슐머신과 스티머. 캡슐커피에 들어가는 캡슐도 나름 개인 카페나 로스터리에서 판매하는 커스텀 캡슐을 주로 사용했다.


여기서 나는 커피를 더 잘 알기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로 결심했다. 커피를 취미에서 좀 더 직업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다. 이 시험을 통해 이론뿐만 아니라 실무적으로도 커피를 잘 내리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집 근처 시험장 허가를 받은 바리스타 자격증 학원에 등록하고 이론을 배우고 필기시험을 치르며 아라비카 원두와 로부스타 원두가 있다는 것, 커피 맛에 영향을 주는 요인 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물론 시험은 학원에서 주는 문제집을 반복해서 풀고 통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실기였다.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 두 종목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것저것 할 게 너무 많았다. 머신을 켜서 예열하고 물 흘려보내고 컵 올려서 데워놓고 흘리지 않으면서 수동으로 원두 도징하고 템핑하고 포터필터 체결하고 내리고... 이 중 한 두 가지는 까먹기 일쑤였다. 스티밍은 더 어려웠다. 생각보다 거품을 크리미 하게 만드는 것, 그리고 그걸 에스프레소 위에 붓는 것도 어려웠다. 그래도 그 기간에 학원에서 맛있는 커피도 많이 마시며 물로 스티밍을 연습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들으며 다른 분들과 재밌게 연습했다.

결과적으로 실기까지 합격을 했고 커피에 대한 내 사랑을 조금이라도 증명했다는 듯이 기뻤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만족감을 느낄 수 없었다. 집에서도 밖에서 마시는 정도의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나는 고르고 골라 몇 년 전부터 눈독 들이던 브레빌 커피 머신을 구매했다. 기기는 중고로 구매했고 대신 이것저것 액세서리를 풍족하게 구매했다. 바텀리스 포터필더와 디스트리뷰터, 침칠봉과 포터필터 거치대 등 점점 홈카페존을 채워나갔다.


그런데 맙소사...


“브레빌 길들이기”는 바리스타 실기를 준비하는 거보다 10배는 어려웠다. 브레빌에 내장된 그라인더의 단계는 약 16단계였고 이것을 한 번에 한 단계씩 조정하며 바텀리스 포터필터로 소위 물총 현상이 나오지 않고 깔끔하게 한줄기로 떨어지게 하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다니... 더구나 도징 하는 커피의 양도 얼마큼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때 홈바리스타 클럽 카페를 알게 되었다. 가입자 16만 명의 명실상부한 홈카페마니아들의 성지였다. 여기에 온갖 질문과 답변이 다 올라오는데 그걸 찾아보며 커피에 진심인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고, 여기에 내가 모르던 홈카페머신의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블렌드와 싱글 오리진의 차이부터 커피머신에 적합한 생수(아이리스 8.0)까지 커피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 방대해서 이것은 학문의 영역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이 카페의 도움을 받아 100번 넘게 커피를 내려보며 브레빌 세팅값을 잡아갔고 그 덕분에 나는 지금 다양한 원두를 맛보며 더 이상 외부 카페는 가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원두를 내릴지가 고민이 되었다.


온라인에 원두를 파는 곳은 정말 많은데 아무래도 한 봉지에 200그램씩이니 이왕이면 맛있는 원두를 구매하고 싶은 것이 나의 욕심이었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맛있는 원두를 찾아 나서기 위해 어엿한 홈카페인으로 작년에 처음 서울카페쇼에 가게 되었다.


카페쇼는 주말에 갔는데 정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나라에 커피인이 정말 많고 로스터리는 또 이렇게 많다니!라는 감탄을 하며 메인 전시장(커피앨리) 들어갔다. 카멜커피나 펠트, 리브레, 헤베처럼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와 보난자 등의 외국 브랜드도 있었고 이집트 현지에서 온 커피 부스도 있었다.


사실 시음을 해보고 원두 구매를 하면 참 좋을 텐데 시음 줄이 지나치게 길어 그냥 지나가면서 필(?)이 오는 원두는 바로 구매를 해버렸다. 대신 샘플을 판매하는 곳은 소량의 단위로 구매를 하고 가능한 많은 명함을 챙겨서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 찜해두기를 해두었다.


개인적으로는 벙커커피, 앤트러사이트, 후드 로스터스의 원두가 기억에 남는다.




돌아보니 나의 커피 여정이 참 길었는데,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 많다. 각 업체마다 원두의 향과 내릴 때의 양상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어떤 원두는 로스팅 날짜가 똑같아도 크레마가 지나치게 더 많고 향이 풍부하다. 그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두의 재배지와 로스팅 기법, 그 온도와 배합의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생두를 볶아서 바로 내려마신다면 맛이 어떨까? 로스팅이란 어떤 것이길래 “남는 게 가장 많다”라고 하는 것일까?


아직은 미지의 영역이 너무나 많은 커피의 세계에서 허우적 중인 지금, 커피 한 잔을 통해 그동안의 내 커피 여정을 돌이켜보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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