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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안此岸의 현세적 위로의 예술부터 배워야 한다

비극의 탄생/ 자기비판의 시도 7장(완결)

by 아란도

7장(책세상/p21~23)





니체는 그의 문장에 그의 말을 숨긴다. 읽으면 술술 흘러가다가 어느 순간 돌아서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게 다 뒤섞인다. 문장이 암호화되어 있는 형태라고 보인다. 그런데 그 암호는 모두 고대 그리스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니체가 '자기비판의 시도'에서 말했다시피 그의 은유는 대체로 어떤 행위나 작품들을 인용해서 그 자신의 문장 안에 그대로 녹아들게 한다. 이를테면 바그너의 작품을 비판할 때, 바그너의 작품의 제목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작품이 주는 이미지와 상징을 차용할 때도 있다. 니체가 비유나 은유를 사용할 때, 그것은 직접적이지 않다. 아마도 니체는 그 자신이 어떤 대상을 상정하여 글을 쓸 때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고심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니체는 비유나 은유를 써서 직접적인 말을 숨긴 것인지도 모른다. 독자 자신이 스스로 찾아야 하는 수수께끼로서 말이다.


동시대를 같이 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을 비판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니체는 다만 그것을 깨달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람이 어떤 것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준점이 자꾸 변하면 그것은 골치 아픈 일이 된다.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도시에서 기준점을 정할 때 보통 랜드마크를 통한다. 그 랜드마크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형태이어야 한다. 사람의 정신이나 가치관도 그러할 것이다. 물리학에서도 너무 작은 미시적인 것은 기준으로 잡을 수 없다고 한다. 적어도 기준이 되려면 어느 정도의 크기를 확보를 해야 하기 대문이다. 미시적 세계에서도 그것은 부피를 가진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거시적인 세게에서는 인간의 세계 역시 거시적 관점에 포함될 것이다. 인간 정도의 크기면 기준점이 될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신체가 그 자신 말고 그 자신의 세계관을 형성할 때 기준점은 무엇이어야 할까? 현재는 늘 변화하고 있고 유동적이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은 또 달라질 수 있다. 10년이라면 어떠한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 옛말도 있다. 결국 무엇인가? 현재의 세계와 미래의 세계는 계속 변화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예측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당장 내일도 잘 모른다. 인간은 매 순간 절벽에서 한걸음 내딛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습관과 그동안 쌓아온 축적, 그리고 살아온 시간의 반복에 의해 별 두려움 없이 절벽에서 한 발을 내딛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않을까?


니체가 고대그리스사회를 현재로 소환하는 이유는 어떤 '기준점'을 잡으려 함이 아니었을까. 현재는 계속 변화하니 신뢰할 수가 없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는 언제나, 늘 , 항상 거기에 그대로 있다. 변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믿을만한 것은 현재보다는 과거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과거는 어떤 과거인가? 그 과거는 역사적인 과거이지만 이미 망각을 거친 과거이다. 즉 신화이다. 신화는 역사가 망각을 거친 상태이다. 망각은 모든 것을 무화시키며 그 무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낸다. 기억된 과거가 아닌 망각을 거친 과거이다. 그것은 두 번 태어난 것이다. 과거가 현재에서 새롭게 재해석되는 순간은 바로 '태어남'이다.


니체가 현재적인 것을 대상으로 그 자신의 생각을 대입하였을 때 니체는 당혹감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니체는 질풍노도적 젊은이의 혈기라고 생각했다. 니체는 그 자신의 잘못이 현재적인 것에서 취하려고 하였기 때문임을 알았고, 바로 그것에 의해서 그 자신은 고통을 받았다. 현재적인 것은, 변화하는 것은 허망한 것이다. 니체는 바로 그 관점을 바로 잡으려고 마지막 힘을 쏟았던 것이지 않을까. 에우리피데스가 '기계신'을 도입하여 인간의 의지를 죽였다고 보았을 때, 바그너의 '파르지팔' 역시 신을 내세워 인간의 의지를 죽였다고 본 니체의 관점은 일관되게 관통하게 있다고 보인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신의 적접적인 개입과 전면화로 내세움은 그 자체로 인간의 약화이며, 다시 기독교적인 세계관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현재에서 망각된 과거로부터 되살아나는 것을 기준점으로 삼으면 역사의 숨결과 그 자신의 숨결이 같은 호흡으로 살게 된다. 이를테면 역사의 그 거대하고 장대한 흐름에 그 자신이 올라타는 것이다.


니체는 바그너를 그의 작품을 '영웅'처럼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변한다. 시대와 나이에 따라 생각도 차츰 변해간다. 그리고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이지 니체 자신의 문제는 아니다. 바그너는 니체의 평가와 상관없이 그 자신의 기념비적인 일생을 살았다. 아마도 '반시대적 고찰'에서 '기념비적 역사'에 관한 비평은 바그너와 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론 바그너 그 자신의 의지가 아예 포함되지는 않았다고 말하기는 다소 억지가 포함될지는 모르겠지만, 바그너의 '파르지팔'은 그의 작품 말기에서 바그너가 원했던 것일 거다. 노인이 된 바그너에게 기념비적인 어떤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그너는 가장 현세적인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현실적인 욕망에 충실한 유형이었는지도. 바그너는 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현재에서 미래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바그너 사후,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아돌프 히틀러가' 바이로이트'를 방문하면서 바그너 가족들과 친분을 엮었다. 바그너는 독일 민족주의자인 강한 우파였다. 바그너가 반유대주의였다는 것은 아마도 바그너가 강한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일 것이며 그러다 보니 유대인이 독일에 동화되어야 하는데 동화되지 않는 점을 맹렬하게 비판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또한 바그너는 예술을 상업적으로 보는 유대인들을 경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유대인들을 폄하하거나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부인 코지마와 그의 딸과 며느리는 반유대주의자였으며 나치 지지자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 의해 아돌프 히틀러는 바그너의 음악을 나치 선동에 사용하였던 것 같고, 나치 결속을 다지는데 활용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치와 연결되어 비판된 내용들을 보면, 니체도 바그너도 직접적으로는 나치와 아무 상관이 없다. 모두 훗날 가족들에 의해 자행된 허망한 소행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진짜로 아끼고 가치를 알았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 이야기는 언제나 누워서 침 뱉기이므로 구구절절 다루기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니체가 그 광경을 보았다면, 인간군상의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그 고통 속에서도 인간이 웃고 살아가는 어떤 틈들을 보며, 니체는 그리스신적인 세계의 도래, 그리고 디오니소스적 인간이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예감을 분명 강하게 머금었을 것이다. 인간은 되돌아오는 존재이므로. 이런 인간 저런 인간도 되돌아오는데, 신적인 인간이 되돌아오지 말란 법도 없으며,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한 사람만이 아닐 것이라는 데 방점이 있을 것이다. 빛의 아이'들'..., '들'은 '복수'를 나타냄과 동시에 '복선'이다.














<책 본문>

그러나 여보시오. 그대의 책이 낭만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낭만주의란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의 예술가-형이상학에서 이루어진 것 이상으로 “현재”, “현실”, “현대적 이념들”에 대한 더 깊은 증오심을 나타낼 수 있는가? 그대의 예술가-형이상학은 “지금”보다는 오히려 무無를, 악마를 더 믿지 않은가?
그대의 대위법에 기초한 음성 예술과 귀를 현혹하는 기술 밑에서는 분노와 파괴 욕망의 기본 저음이 울리고 있지 않은가?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분노를 터트리는 결의, 실천적 허무주의와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하나의 의지가 울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의지는 “만약 당신들이 정당하다면, 만약 당신들의 진리가 정당성을 획득한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진실인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염세주의자 예술 숭배자인 그대여, 그대는 스스로 귀를 열고 그대의 책 속의 선택된 어느 한 대목에 귀를 기울여보라. 젊은 귀와 가슴에 유혹의 함정처럼 들릴지도 모르는 용龍 정복자에 관한 유창한 대목을 보라. 어떠한가? 그것은 1850년의 염세주의가 가면을 쓴 1830년의 낭만주의자의 진정한 고백이 아닌가? 이 고백의 뒤에서는 이미 낭만주의자의 통상적인 마지막 악장이 울리기 시작한다. 좌절, 붕괴, 낡은 믿음과 낡은 신 앞으로의 회귀와 굴복이.
어떠한가? 그대의 염세주의자 책은 그 자체로 반反그리스주의와 낭만주의이며, 그 자체로 “도취시키기도 하며 몽롱하게 하는 것”이고, 아무튼 마취제이며 게다가 한 편의 음악 독일적인 음악이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듣는다.


===> ‘자기비판의 시도’ 7장에서 여기까지가 조금 헛갈렸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하고 있는 이야기인지가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은 1850년의 염세주의가 가면을 쓴 1830년의 낭만주의자의 진정한 고백이 아닌가? 이 고백의 뒤에서는 이미 낭만주의자의 통상적인 마지막 악장이 울리기 시작한다. 좌절, 붕괴, 낡은 믿음과 낡은 신 앞으로의 회귀와 굴복이”, 이 단락에서 힌트를 받았다.

이 단락을 다시 정리해 보면 이러하다고 생각된다.


바그너는 오페라(악극) 작곡 외에도 다방면으로 글을 썼는데, 특히 그의 수필이 유명하다. 바그너는 1950년대에 두 편의 수필을 썼다. 그 시기의 주요인 오페라 이론에 대한 "오페라와 드라마"("Oper und Drama", 1851), 예술에서 상업주의를 극렬하게 비판한 유대인 작곡가에 반하는 논쟁인 "음악 속의 유대주의"("Das Judenthum in der Musik", 1850)가 바로 그것이다.


내 생각에는 니체가 거론하고 있는 1950년대의 염세주의 가면을 쓴 책은 이 두 개의 수필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아래에 7장에 ‘예시된 내용’이 어느 수필에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여기까지만 추론한다.


1950년에 쓴 바그너의 수필에 대하여 니체는 ‘염세주의의 가면을 쓴’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1950년대에 바그너는 염세주의로서 그의 작품에 비극을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바그너의 1950년대의 주요 작품들로는, 후기 단계를 포함하고 있는 작품들로서,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1859)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장인 가수/Die Meistersinger von Nürnberg/1867)

니벨룽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다음 네 개의 악극으로 구성된다), ‘반지 사이클’, ‘바그너의 반지’, 또는 간단히 ‘반지’라고 부른다. 1848년부터 1874년까지 약 26년이 걸렸으며 바그너 혼자 대본을 쓰고 음악을 작곡했다.

1)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1854)
2) 발퀴레(Die Walküre/1856)
3) 지크프리트(Siegfried/1871)
4) 신들의 황혼(Götterdämmerung/ 원재는 ‘지크프리트의 죽음Siegfrieds Tod/1874)


이러한 작품들이 있다.


이 작품들에서 ‘지크프리트’와 ‘신들의 황혼’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니체와 바그너가 서로 만나서 교류하기 전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니체는 이때의 바그너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았고, 바그너에게 그 자신의 책 《비극의 탄생》을 헌정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누군가에게 책이나 작품을 헌정하는 일은 존경과 감사의 표시이고 우정의 표시이었던 것 같다. 어느 정도 낭만적 방식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므로 일종의 관례적 성격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니체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그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헌정하고 그랬다.


니체는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그때에 이 헌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랬다면 바그너에게의 헌정을 철회하였을 것이다. 헌정은 헌정이고, 책 자체의 위상은 위상인 것이었다. 서로 책을 주고받은 그때에는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였으니까. 니체는 그 자신의 책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니체는 그 자신의 《비극의 탄생》이 바그너와도 쇼펜하우어와도 차별화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 당시에 니체에게 있어서 “비극”에 관한 그리스 정통은 니체 자신에게 있다고 본 듯하다. 더 정확히는 《비극의 탄생》에 있다고 본 것이다.


어쩌면 바그너 자신보다도 니체가 더 바그너 악극을 제대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바그너의 악극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의 부정적인 평가를 걷어내고 바그너가 오페라와 그 후의 음악사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바그너의 방식은 혁명적이기도 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니체가 보기에 바그너는 후기에 노선변경을 한 것이다. 니체는 그런 바그너를 보면서 고통스러웠던 것이고, 니체 그 자신이 가는 길 위에서 ‘변하지 않는 기준점’을 현대에서 과거로 수정한 것이라고, 아니다! 원래의 길을 고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니체는 처음부터 그리스의 자식이었고 한 결 같이 그리스주의였다.


음악에 있어서 니체는 그 자신이 감각한 그것은 그리스 비극예술이었다. 그리고 삶이었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여 그 안에서 신이 희미하게 드러나는 것이지, 신을 중심에 두고 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극의 본질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주의는 ‘인간’에 더 중점이 있고, 삶에 더 중점이 있고, 현세에 더 중점이 있다. 신, 죽음, 내세와 인간, 삶, 현세는 무게중심이 언제나 삶에 있다. 바그너는 이 무게중심을 후기와 말년으로 가면서 니체가 보기에 흩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니체는 1950년대에 염세주의의 가면을 쓴 바그너가 1930년대에 낭만주의자였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고 본다. 그것은 바그너의 1930년대의 작품들이 ‘낭만주의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 것이며, 결국 바그너의 출발은 낭만주의였으며, 중간에 염세주의자로 포장을 하였지만, 후기로 갈수록 다시 낭만주의로 회귀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바그너가 처음부터 낭만주의자이며 신에 귀속하는 존재라는 것을 니체는 말하고자 하였던 것 같다.


바그너의 1930년대 작품들은 대체로 공연되지 않았다.


바그너의 초기 단계의 작품들
혼례(Die Hochzeit/1832/미완성)
요정(Die Feen/1833)
연애금지(Das Liebesverbot/1836)
리엔치, 마지막 호민관 (Rienzi, der Letzte der Tribunen/1837)





대위법







대담한 시선으로 무시무시한 것을 향해 영웅적으로 행진해 가는 자라나는 다음 세대를 생각해 보라. 그리고 이 용 정복자들의 당당한 걸음을 생각해 보고, 완전하고 충만한 가운데 ‘결연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모든 낙천주의의 나약한 교리들에 등을 돌리는 과감성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문화의 비극적 인간이 진지함과 두려움을 향해 스스로를 교육해 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새로운 예술, 즉 형이상학적 위안의 예술, 다시 말해 자신에게 어울리는 헬레나로서의 비극을 갈망하며 파우스트처럼 다음과 같이 외쳐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그래서는 안 되는가? 가장 커다란 동경의 힘으로
오직 하나뿐인 인물에 생명을 부여해서는? -> <파우스트가 한 말로 추정>
<니체가 인용한 내용인데, 어느 책(또는 수필), 혹은 어느 작품을 인용한 것인지는 잘 모름>


==> “용 정복자들의 당당한 걸음”이라는 대목은 ‘니벨룽의 반지’의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 글이 바그너의 어느 작품 또는 어느 수필에 들어 있는 내용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니체는 이 한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니체는 이러한 ‘동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것이 꼭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니다, 재삼 아니다! 그대들 젊은 낭만주의자들이여, 그것이 꼭 필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끝나는 것, 그대들이 그렇게 끝나는 것, 다시 말해 그대들이 그렇게 씌어 있는 것처럼 “위로받고”, 진지함과 두려운 것을 향한 온갖 자기 교육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위로받는 것”, 간단히 말해 낭만주의자들이 기독교적으로 끝나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 니체는 여기서 낭만주의자들이 “형이상학적으로 위로받는 것”은 ‘기독교적으로 끝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반어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긍정하는 것은 하나의 것이 그렇게 흐르는 수순은 당연하다는 의미에서의 긍정이지만, 그것은 오히려 큰 틀에서는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다! 그대들은 우선 차안此岸의 현세적 위로의 예술부터 배워야 한다. 그대들이 이와는 달리 전적으로 염세주의자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 나의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웃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아마도 그대들은 언젠가 모든 형이상학적 나부랭이를 악마에게, 특히 형이상학을 제일 먼저 던져주게 될 것이다! 혹은 차라투스트라로 불리는 저 디오니소스적 괴물의 언어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 “차안此岸의 현세적 위로의 예술”에서 차안은 현세의 세계를 의미한다. 저편의 세계인 피안에 상대되는 말로 깨닫지 못하고 현세에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상태를 말한다. 니체는 ‘형이상학적 위로의 예술’이 아니라, ‘현세적 위로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웃음’이다. 웃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차라투스트라가 말하고 있다고.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가슴을 들어 올려라. 높이, 더 높이!
그리고 다리도 잊지 말아라! 그대들의 다리도 들어 올려라, 그대들, 춤을 멋지게 추는 자들이여, 그대들이 물구나무를 선다면 더욱 좋으리라!
웃는 자의 이 왕관, 이 장미 화환의 관, 나는 이 왕관을 스스로 머리에 썼다. 그리고 나 스스로 나의 웃음을 신성한 것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나는 그렇게 할 만큼 충분히 강한 다른 자를 보지 못했다.

==> 스스로 왕관을 쓸 만큼 강한 자는 ‘나폴레옹’을 의미하는 듯. 스스로 왕관을 쓰는 것은 강한 자이자, 자기 주도적인 자, 인간이 웃는 것은 강한 것이고, 강한 것은 신성한 것이라는 라는 의미인 듯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신성한 것이 된다. 온갖 고통이 뒤따르는 인간의 삶 그 자체에서 ‘웃음’만이 유일한 위로라는 의미일 것이다.





춤추는 자, 차라투스트라, 날개로 신호하는 가벼운 자 차라투스트라, 모든 새들에게 신호를 보내면서 날아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자, 준비가 끝난 자, 축복받은 가벼운 자.
예언자 차라투스트라, 참된 웃음을 웃는 자, 성급하지 않은 자, 무조건적이지 않은 자, 도약과 탈선을 좋아하는 자, 나는 스스로 이 왕관을 머리에 썼다.

==> 디오니소스, 차라투스트라, 나폴레옹은 이렇게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웃는 자의 이 왕관, 이 장미 화환의 관, 내 형제들이여, 나는 이 왕관을 그대들에게 던졌다! 나는 웃음이 신성하다고 말했다. 그대들 보다 높은 인간들이여, 내게 배워라, 웃음을!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87쪽.


==> 웃음을 배우라는 의미는 곧 삶을 배우라는 의미일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그 자신이 스스로 쓴 왕관을 ‘그대들’에 던졌다. 그것을 받을 자 누구인가? 받고자 하는 이가 받을 것이다. 웃음을 배운 자는 신성한 웃음을 웃는 자이다. ‘웃음’이란 한글 문자는 문자 자체가 웃고 있는 것처럼 내게 다가온다. 그래 웃고 살자!







* 검색 자료 출처는 나무위키입니다. 읽는 데만도 정말 오래 걸리는 검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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