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언제나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대상이 늘 일치가 되지는 않는다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을 주고 싶어도 마주 볼 수 없어서 타이밍을 놓친다
그러다 다른 대상을 찾는다
엄마가 아이에게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것도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을 마음 놓고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걸리는 게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사랑 그 자체다
인간에게 사랑의 종류는 여러 종류로 이식되어 왔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넘어와 실제 현실에서 나타나고 감지된다
사랑의 근원은 대체로 원초적인 힘에서 비롯되고
에로스로 분화되고
종교적인 사랑에서 인류애로 까지 확장되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하여 처음부터 인간이 인지한 것은 아니다
인식하기까지는 단계별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간이 사랑에 대해서 의식한 것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사랑을 통제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여하였다
인간은 사랑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 억압을 주로 이용해 왔다
사실 사랑은 인간이 감당하기가 벅찼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는 두려운 측면을 보게 하였으며 그 측면을 그래서 강조하기도 했다
그 방법은 사랑으로 사랑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사랑은 그래서 어둠 속으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환경적 요인들이 맞춰지자 그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그러나 억압된 사랑은 왜곡도 함께 가져왔다
이건 사랑을 인식하는 그 자체가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를 왜곡됨이라 보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이 문제다’로 보는 경향도 심각하다
당연히 이에 맞춰진 처방도 심각하다
인간을 문제로 보는 방향에서 내려진 처방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사랑을 편의상 분리하여 놓았으나
모든 사랑에는 복합적으로 분화된 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보인다
표현될 때 단지 어떤 성격의 사랑의 %가 더 도드라지느냐 이다
무엇을 표현형으로 하고 무엇들을 인자형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는가?
사람이 사랑 속에 태어난 것은 누구나 알고 있고
사람이 빛의 존재라는 것은 체험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의 어둠도 포함하여야 사람은 가려질 수 있다
어둠은 편안한 존재라는 것
그것은 모든 곳에서 경험으로 되는 것이다
어둠의 범위와 용도는 광범위하다
우주의 암흑물질이 우리 눈에는 어둠으로 보이듯이
어둠은 또 빛이기도 하다
사람은 주고 싶은데 제대로 주지 못하면 그것이 오히려 마음의 병이 된다
주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파생한다
인간은 절대로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는 아니다
단지 불일치의 문제가 있다
그러니 마주 보고 동시에 사랑이 채워짐을 느낀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일까
그러나 사랑은 늘 그 마주 봄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언젠가는 서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조금씩 불일치의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서로가 점차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시점의 불일치가 누적된다
그래서 어느덧 자기 안에 사랑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간다
그래서 그 사랑은 다시 잠복기 상태가 된다
그럼에도 사람은 사랑을 계속 주고 싶어 한다
계속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사랑의 상태가 지속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사랑을 주고 싶은데
일치하지 않아서 대상이 없어서 인간이 아픈 것이다
서로 주는 것이 일치할 때 서로 채워진다
준다는 것은 억지가 아니라 저절로 흐르는 것이다
그러나 저절로 흘러도 자꾸 막히면 인간은 아프다
이것은 세상의 많은 부분, 곳곳에서 나타난다
불일치성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불일치성도 시공간에서
일어난 현상이므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의식은 사랑의 폭을 넓힌다
자신 안에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게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걸림 없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까지 확장한다
초월적인 만남이나 보편적 사랑까지 승화시킨다
의식의 확장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러한 행위가 가능해지는 이유는
인간을 억압하는 기재로서 이용된 것일 수도 있고
인간의 사랑이 남아돌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사랑은 과잉인 이유일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큰 범위에서 보자면 의식의 시행착오라고 보아야 한다
후자의 경우는 인간에게 에너지가 없어 고사되어 죽을 일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인간은 충분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늘 불충분하다고 여긴다
시공간의 불일치 때문이고 심리적 불일치 때문이다
이런 불일치된 사랑을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여 왔다
불일치는 불만족을 야기한다
일치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동력은 문명으로 예술로 작품으로 삶 속에 투영되었다
인간이 불일치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이유는 다른 모색의 가능성을 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허구한 날 불일치 속에서 산다
당장 가장 친한 사람과도 불일치는 늘 일어난다
그러나 그 불일치를 또 잘 느끼지 못하고 살기도 한다
문득 느낄 뿐이다
문득 느끼는 불일치가
인간에게 ‘고독이란 우물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때 인간은 채울 거리를 찾아 배회한다
그 고독이 주는 스산함을 즐길 때(견딜 때) 인간은 성장한다
채울 때는 무엇으로 채움의 시간을 보내는가에 따라 빈 공간의 향방은 달라진다
사랑은 늘 대상을 찾지만
사랑은 자기 안에서 느끼는 것이라서 그 실체가 움직이고 있다
인간은 사랑 그 자체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랑 그 자체를 움직이는 실체가 있다
이것이 서로 반응함에 따라 채워지거나 채워지지 않거나 한다
자기 안에서 움직이는 사랑은 조합에 가깝다
경우의 수이자 확률적이다
시공간에서 조합은 늘 마주쳐야 한다
그럴 때 원활해진다
사람이 외로운 이유는 서로 주고받는 것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떤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더 이상 넘어가기 어려운 어색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건 고비다
넘을 것인가
방향을 틀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서로 원하는 사랑
주고 싶고 받고 싶은 사랑이 서로 시공간이 일치되지 않을 때
사람은 불행한 것이다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인정하고 나면 무엇이 남는 것일까?
인간을 긍정해야 한다
먼저 인간이란 이러한 특질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 안 된다
인간은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그 상태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는 사랑이 먼저 찾아와서 대상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다
인간의 욕구는 표현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먼저 찾아와서 대상을 찾는 그 사랑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사랑이 가능한 이유는 사랑이 먼저 찾아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해서 당황하거나 혼란스럽다
인간은 사랑 그 자체이나
사랑 그 자체를 움직이는 사랑의 실체에 의해서 빈 공간이 있는 것이다
이는 내면의 충족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미 사랑을 의식화하였고 아직도 더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진은 Artistis. photos
Andrew shushvaly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