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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Oct 26. 2024

k가 말했다




             

“우리는 왜, (존재함에 대한 표현) 그 자체가 서로에게 린치를 가하게 되는 것일까?”     

      

      J가 말했다.

    

      K가 긴 침묵을 깨고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온 듯 첫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말이야. 존재의 영역이 침범당하기 때문이야. 사람들은 단출한 게 좋아서 단출하게 산다고 하지만, 그건 변명일 뿐이야. 존재는 코어를 보호할 양수가 필요하고 그 양수를 보호할 막도 필요해. 코어의 보호막은 코어의 갑옷이자 집이야.”     


      J가 맑은 눈을 껌뻑이며 턱을 괴었다.

      J는 먼 곳을 떠올렸다.

      J의 시선은 눈동자 저 깊은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내 J가 아무 표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깊은 곳으로 나 있는 길은 어디로 통하는 거야?”    

 

      K가 고개를 젖히고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며

      정수리 위에 있는 하늘 저 너머를 노려보았다.

      K는 중얼거리듯이 읊조렸다.     


“네가 보고 있는 그 길과 내가 보고 있는 길은 이제 곧 만날 거야. 너는 그 길 위에서 나를 볼 수 있니? 눈, 저 깊은 곳으로 나 있는 길은 내 정수리와 통하고 있어. 너는 나에게로 온 거야. 너는 너의 눈, 깊은 길을 통하여 나에게로 와서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 거야”    

 

      J가 읊조림을 멈추고 K에게 물었다.   

  

“너는 나를 만났니? 너의 세상은 나를 통해서 증명이 돼. 내가 너의 보호막이야. 나는 누구일까?”  

   

      K가 말했다.     


“나는 코어이고 너는 코어의 확장이야. 코어의 대리인과 같지. 너를 만나려고 깊은 심해를 여행했어. 이상하지 왜 너를 만나려면 심해로 침잠하여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너를 만나려면 세상의 저 너머로 가야만 하는 것인지... 늘 궁금했어. 세상에서 너를 찾으려는 시도는 번번하게 참패를 불러와. 너는 거기에 없으니까”  

   

      J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너의 집이야. 집이 있는 사람은 린치를 당해도 코어가 손상되지 않아. 집이 보호막이 되어 주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코어에 접근할 수 없어. 손상되는 건 나야. 그 손상을 네가 복구해 주어야 해.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너만이 나의 손상을 회복시켜 줄 수 있어. 잊지 마! 내가 너라는 것을”     


      K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존재함이 서로에게 린치가 된다면, 그건 자기 집이 너무 작거나 집을 가꾸지 않았기 때문이야. 코어가 바로 바람을 맞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존재들은 마치 직접적인 린치를 가하고 당하는 것처럼 불안과 고통을 느끼는 거야. 코어가 보호막 없이 노출되어 있으니 코어가 살짝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거야”   

  

      J가 말했다.     


“나는 단출하지 않아. 풍부하게 존재해. 나에게는 많은 것들이 필요해. 하지만 나는 쓰레기더미에 둘러싸이고 싶지는 않아. 나는 무거운 게 싫거든. 나는 네가 나를 가볍게 만들어 줬으면 해. 춤추며 내가 웃을 수 있도록 나를 무겁게 내버려 두지 마. 자 그럼 이제 나를 가볍게 해 줘”     


      K가 미소 지었다.     


“너는 요구조건이 많구나. 나는 생각해 봤어. 코어는 먼저 성능이 좋아야 해. 네가 원하는 데로 해주려면 말이야. 어때? 이제 나의 성능을 높여주는 쪽으로 움직여 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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