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다층적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바로 시간이며, 인간은 시간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인간에게 하는 모든 조언은 시간여행자의 말과 같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 있고 또 다른 당신이 당신을 찾아와서 어떤 얘기를 하거나 조언을 한다면, 언쟁이나 논쟁이 붙기 십상이지 않을까?
현재의 당신도 시간여행자인 당신도 그때는 각각 하나의 독립체이니 그 순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인간은 조언을 좋아하지 않고, 아직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볼신하니까.
이것은 부모와 자식과 관계 같은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평행우주 상태 그 자체다. 그런데 왜 시간 여행을 멀리서 찾으려 할까.
기술이 더 발달하여 그리스 신들처럼 자식이 성장해도 부모신들이 계속 젊은 상태이고 힘이 있다면, 요즘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는 바로 그 상태가 아닐까. 서로 어떤 관계들이 수평화되어 관계가 희석되어 희미해지는. 엄마와 딸이 같은 연령대의 젊은 상태라면(신들을 다루는 영화적 세계관의 일관된 표현), 딸이 아버지보다 더 늙어 버렸다면(인터스텔라) , 그것은 의미를 넘어 무의미로서 희미해진다. 미련과 죄책감도 사라지고 그것은 전혀 다른 세계가 된다. 결국 그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게 된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결국 자식들이 자신들의 세계로 떠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어떤 간극이란 것이 바로 차원이고 우리는 지금도 차원 안에서 산다. 90세 노인과 50세 중년과 20세 청년의 세계는 이미 다른 차원이다. 우리는 다층의 세계를 이미 살고 있다. 다만 그 차원을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해서 그 차원을 짓이기면서 다가가고 요구하기에 상처받고 문제가 불거지는 것
서로 다른 층위에서 본다는 것을 노인도 모르고 그 중간자인 장년도 모르고 청년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미 다층의 차원에서 살면서 서로 아무것도 모른다. 이 차원이 자기 바깥에 있다고, 타자화하고, 대상화하고 있으니, 분별하게 되는 것이다.
분별하는 이유는 이 다층의 차원이 자기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층의 차원을 매 순간 살아간다. 과거의 그 자신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그 자신은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다. 그 자신만 있으면 그나마 같은 존재인데, 만약 평행세계로 본다면 그 존재는 자기이지만 자기가 아니게 된다. 이미 한 공간에 두 자기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자기가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이다. 한 공간에 두 존재가 있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무조건 한 공간에서 또 다른 자신과 만났다면 그 존재는 대상으로서 그 자신에게 비치기 때문이다. 이미 서로 독립된 존재라서 사고와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생각을 동시에 공유할 수 없다. 경험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적용하면, 인간 사회 역시 그 자신이 매 순간을 살면서 그때마다 접하는 세상과 나이를 먹으면서 어느 순간 한 차원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진입하게 되는 연령대의 차원들은 각각 경험치가 달라진다.
그 자신 안의 이해도의 차이가 각 세대 간 경험치의 차이로 복제된다. 결국 같은 것이다. 세대 간의 차이나 그 자신이 나이 먹어 가며 경험하는 연령대별 세계나. 단지 서로 다른 몸으로 같은 차원들을 살기에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독립된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대상이 되므로 자기 안에 존재하는 차원이 자기 바깥에서는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자기 안에 여러 차원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세대 간의 파장의 엔트로피가 올라갈 때 어떤 고통이 있다. 극점에 도달하게 되면 인간은 비로소 뭔가를 본다. 인간이 계속 어떤 상태를 유지하며 독립된 개체로서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이때 무엇인가를 문득 깨달아서 엔트로피를 낮추기 때문이다. 깨달아서 어떤 상태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포용 또는 연민, 결별 등이 그것이다. 어떠한 상태를 수용하지 않으면 어떤 상태는 깨진다. 어느 쪽이 모두 공존하는 방법일까? 그 자신만 깨달으면 가능해지는 것. 결국 희생이다. 어떤 선택도 결국 무엇인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존의 상태를 깨닫는 자가 희생하게 된다. 차원을 보는 자가 또 다른 차원으로 도약한다. 그것이야말로 커다란 슬픔이다. 인터스텔라의 경우처럼 또는 앨리스의 경우처럼 떠나야만 가능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