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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앎은 감각으로 시작되고 감각으로 끝난다

by 아란도





모든 인식은 감각에 의해 우리 안에 들어온다.
감각이 우리의 주인이요,
인간의 가슴과 그 정신의 성소聖所에 직통으로 확신이 스며드는 길이다.
_루크레티우스__



앎은 감각으로 시작되고 감각으로 끝난다. 어쨌든 우리는 소리, 냄새, 빛, 맛, 크기, 무게, 무름, 딱딱함, 거칠음, 빛깔, 매끈함, 폭,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돌멩이가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다. 이것들이 우리 지식 체계의 기반과 기본 요소들이다.

어떤 이들에 따르면 지식은 인지된 것에 다름 아니다.
나를 감각에 거역하게 만들 수 있는 자는 내 목덜미를 잡은 자이다.
그는 나를 그 이상으로 물러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감각은 인간 지식의 시작이요 끝이다.
감각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한 축소해 보라.
그래도 여전히 우리 지식 전체가 그 감각을 통해, 감각의 중개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세 2> 12장에서 발췌



그대는 인정하리라,
감각이 우리에게 진리의 관념을 주었고,
감각의 증언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러니 감각 아닌 무엇을 우리가 더 믿겠는가?
_ 루크레티우스_








나를 감각에 거역하게 만들 수 있는 자는 내 목덜미를 잡은 자이다.
그는 나를 그 이상으로 물러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태라고 한다면, 압도되었거나 가스라이팅 당했거나 필시 둘 중 하나다. 감각에 거역하게 만든다면, 그 자신이 어딘가에 몰입하였거나, 또는 판단력 마비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판단력 마비는 이미 그 자신의 감각을 거역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과 같다.

전자라면, 어딘가에 몰입하고 있다면, 그는 그의 주변을 망각해 버린다. 그는 그때 그의 주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감지하지 못한다. 어떤 세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환기에 의해 움찔하며 그 자신의 정신을 번득 다시 현실로 되돌리지만, 그에게 어떤 상태가 더 현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어떤 경치에 압도당할 때 인간은 숭고미를 느끼는데, 그때 그 자신의 감정은 분출하듯이 격동한다. 그것은 그 자신의 의지일까?


후자라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하거나 웃기 싫지만 억지로 웃는다면 또는 살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 상황이 그 자신의 목숨줄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구속된 상황에서 억압받고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하여 감각을 속일 수는 없다. 화내야 할 상황에 웃었다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그만큼 그 자신 안에 보상 심리가 쌓이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그런 양가감정을 달래고 해소의 필요성 때문에 그에 연동하는 다양한 산업이나 취미의 세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이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 중에서 무엇이 더 많을까? 아마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만큼 하고 싶은 일도 줄어들 것이다. 보상 심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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