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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oJang Aug 28. 2019

비우는 삶, 비워내는 일상 (2)

육식주의자가 고기를 먹지 않게 되기까지

비우는 삶, 비워내는 일상

구제역 그리고 방역


흔들리는 영상 속에는 흰색 검역복을 입을 사람들에 의해서 검붉은 흙구덩이 속으로 밀려 들어가는 선분홍색 돼지 무리가 보였습니다. 처음 접하는 충격적인 장면은 정말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의심을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카메라는 흙구덩이 속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가는 돼지들의 모습을 끝까지 남겨보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 촬영하는 사람조차 이 참담한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한 채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가축에게 치명적인 '구제역'이 발병했을 때, 살처분은 더 이상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역 조치라고 합니다. 하지만 생명을 저리 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설령 고기를 얻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최소한의 윤리를 저버리면 안 됩니다. 열악하고 밀집된 환경에서 길러지는 돼지들은 면역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인간의 탐욕으로 만들어진 공장식 축산은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하면서 사람들에게서 생명의 존엄성마저 잊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축은 상품이 아니라 생명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불편한 마음 


참혹한 현실을 알게 되고 나서 한동안 마음속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질문 속 울림은 '나는 더 이상 이 참혹한 굴레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답으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결심만 했지 정작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활동을 해야 할까? 아니면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제품만 써야 할까? 막연하게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지만 당장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몇 년이 흘렀습니다.

고기는 맛있습니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욕구, 그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고기를 먹는 행위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조금 생겼습니다. 내가 먹고 있는 이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육식과 관련된 여러 서적들을 읽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내가 모르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런 사실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면서 고기를 먹는 행위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어느새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습니다. 고기를 먹어서 느끼는 만족감보다 고기를 먹었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 더 커졌고 2016년 어느 봄날, 저는 자연스럽게 육고기를 먹지 않는 페스코 베지테리언이 되었습니다.

페스코 채식주의자는 육고기를 먹지 않고 생선, 달걀, 유제품류 는 먹습니다.


채식주의자로 인정받기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채식주의자로 첫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주위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거칩니다. '저는 고기를 먹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 평소에는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시선을 받게 됩니다. 주변 사람들과 식사할 때 배려(?)당해야 하는 불편함은 기본이고 왜 고기를 안 먹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하면 이런 비아냥을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식물은 안 불쌍하냐?

그만큼 자칫 잘못하면 사회생활을 잘못하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거나 고집이 센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도 있습니다. 획일화된 우리 사회가 아직은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서툴다 보니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선택이 매도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 또한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고 쉽지 않을 것도 알고 시작했으니 누굴 탓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나의 채식주의자로 정체성이 정해지고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데는 상호 간 무언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불편한 과정을 지나고 나서야 어느새 나는 주변 사람들 모두가 아는 채식주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는 신념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달픈 일인지... 하지만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 이상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양심의 소리를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신념을 지키고 사는 것도, 현실과 타협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도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다른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육식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식은 인류사에서 가장 보편적 식습관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다만,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고기를 식탁 위에 올리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 부합하는지 함께 고민해보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찾아봤으면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제 의견을 조금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실천하고자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된 고기를 먹지 않겠다'라는 다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언제가 동물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환경이 마련되고 이로 인하여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육류 소비'가 보편화되면 그때 다시 고기를 먹어볼까 합니다.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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