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츄르를 건네고 싶다

미안, 얼룩아

by 김힝구


퇴사 이후 약속이 없는 날이면 이런 생각을 한다. 통창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로도 그날의 광합성은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게 내 안의 나와 타협하며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때가 자주 있다. 이틀이고 삼일이고 외부 일정이 딱히 없던 어느 평화로운 평일 오전, 나는 위험함을 감지했다. 이러다 영영 집 붙박이가 되는 건 아닐까. 잠깐의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창 블라인드 사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고파진 걸 보니, 내 몸이 비타민 D를 원하고 있음이 확실했다.


따뜻한 햇살이 드니 집 앞 공원이 이렇게도 포근했나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공원에서도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을 골라 걷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해를 보고 살아야 하나 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테니스코트를 지나가는데 저 멀리 광합성 중인 얼룩무늬 고양이를 발견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나는 그 얼룩 고양이와 인사하고 싶어졌고 천천히 한발 한 발 고양이를 향해 걸어갔다.



얼룩 고양이는 겨울 햇살을 온몸으로 맞아 나른해졌는지 살포시 눈을 감고 있었다. 고양이의 잠을 방해할까 걸음걸이마다 조심했지만, 내 기척을 느낀 고양이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그냥 좀 아는 척하고 싶었던 거야. 미안.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얼룩이는 냐옹 하고 울어준다.


얼룩이의 대답 같은 울음에 왠지 나를 허락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한걸음 더 다가가려는데, 그 혹은 그녀의 눈빛이 내 행동을 경계하는 것처럼 나에게서 눈을 뗄줄 모른다. 나는 순간 긴장했다. 그런데 얼룩이의 다음 행동은 반전이었다. 갑자기 벌러덩 누우며 온몸을 땅바닥에 비비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녀석 개냥이구나. 나는 기꺼이 그 녀석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여전히 나를 보며 땅바닥에서 배를 보이고 누워있는 녀석의 배를 콕하고 찔러본다. '저 선 넘으셨네요. 네 다음에 또 보는 걸로.' 이런 대사가 들린 것 같기도. 단호하게 몸을 일으킨 얼룩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쿨묘 얼룩이


알고 있었다. 저 녀석의 행동이 내 배를 만지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하지만 저 하얗고 말랑한 배를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존재가 양해도 구하지 않고 자기의 배를 콕하고 찔렀다면, 당사묘(猫) 입장에선 이런 파렴치한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얼룩이를 찾아 그 공원을 몇 번 찾아갔지만, 이 녀석의 꼬리도 보질 못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얼룩이에게 사과의 츄르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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