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나는 술
술을 따른 뒤 퍼져 나오는 향을 맡으며 그 첫 잔을 맛본다. 두 번째 잔부터는 술과 어울릴 안주와 함께한다. 곁들인 안주에 따라 그 술맛은 더 풍요로워진다. 자신만의 맛과 향을 가진 술은 매력적이기에 그 맛과 향을 음미하는 과정은 말할 것 없이 좋다. 그래서 알아가는 과정이 있는 술이 좋다. 또 술잔을 채울 때마다, 함께하는 사람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그 순간이 좋다.
酒(술 주), 水(물 수) 자에 酉(닭 유)가 만나 술이 되었다. 酉(닭 유)는 술병 모양을 본뜬 글자라고 한다. 술병에 물을 채우니 술이 되었다.
무향 무취 물에 무엇을 더했기에 이 맛 좋은 술이 되었을까.
이십 대 중반 한창 와인에 빠져있었다. 마침 같은 시기 와인에 입문했던 친구와 매년 와인박람회나 각종 와인 시음회가 열리면, 빼놓지 않고 찾아다녔다. 와인의 첫 향, 첫 모금을 시작으로 시간이 지나 에어레이션(와인과 공기가 접촉하도록 돕는 과정)을 거친 와인의 맛은 한층 부드러워진다. 이 과정은 타닌을 분해해 떫은맛을 줄여주며, 와인의 향은 복잡하고 풍부해진다.
첫 모금부터 시간을 들인 마지막 한 모금까지 와인은 다채로운 자기 모습을 보여준다. 와인에 대한 지식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또 자랑할 정도로 다양한 와인을 접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 안에 숨겨진 맛과 향을 알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어 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그 당시 친구와 서로가 느낀 와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내가 술을 마시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더운 여름, 입안에 꽃향기와 과실 향의 여운을 남기며, 그 청량함으로 갈증을 채워주던 여름날의 화이트와인뿐만 아니라, 실내의 열기로 후끈해진 얼굴과 몸속을 차갑게 식혀주던 겨울날 마시던 화이트와인도 좋아한다. 겨울, 사람들의 열기가 더해져 뿌예진 창문 너머로 눈이 내렸다. 그날 마셨던 차가운 와인 한잔이 올겨울 더욱 생각난다.
술은 사람의 희로애락과 함께하며, 어떤 감정이 담기느냐에 따라 술맛도 달라진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한 술자리가 더욱 맛있는 것도 그 즐거움이 술잔에 함께 담겼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한 날은 말로 다 하지 않더라도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무심한 위로를 건네고, 서로의 잔을 채운다. 유난히 지친 퇴근길, 조용한 위로가 필요할 때면, 맥주 한 캔으로 홀로 조용히 내 오늘을 다독인다.
희로애락이 담긴 술잔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오늘 잔에 담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