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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4]테이블마운틴에 올라가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서는 고난이었다.

by 돌바람

2020년 1월 29일 본격적인 아프리카 여행의 시작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의 본격적인 여행 첫날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꽤나 분주해보이는 소리에 잠을 깼더니 오전 7시가 조금 못 된 시간이었다. 다른 일행들이 이미 일어나 하루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룸메이트였던 우리 촬영감독님이 밤 사이 사라졌다. 알고 보니 내 코골이에 시달리다가.... 참다 참다가.... 새벽 3시쯤 거실로 대피했다는 것이었다. ㅋㅋㅋ 웬만한 이들은 견디기 힘든 소음인데 감독님은 예민하기까지 하니...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방짝꿍이 바뀌었다. 촬영감독님에서 직진님으로...)

더 미안한 것은 같은 숙소에 머무는 직진님, 도사님마저 이미 일어나 감독님과 함께 아침 식사 준비를 거의 마쳤다는 것이었다. 동료들이 차려준 고마운 아침을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는 테라스에 나가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숙소 주변 풍경을 즐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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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타운에서의 아침 여유. 발코니에 나와 마시는 커피는 그 맛과 상관없이 하나의 풍경이 되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날의 일정을 고려하면 나는 조금 늦게 하루를 시작해도 되는 날이었다. 10명인 우리 일행은 이날 테이블마운틴에 오르기로 했다. 어젯밤 회의에서 등산을 하기로 한 일행이 6명,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기로 한 일행이 4명으로 결정이 되었다. 각자 나름의 이유들을 갖고 자유롭게 선택한 결정이었다. 그래서 직진님, 도사님, 감독님을 포함해 총무님, 선비님, 열혈님까지 이렇게 6명은 이른 아침부터 챙겨 식사까지 든든히 먹고 나머지 일행들보다 먼저 길을 나서기로 한 것이었다. 등산팀은 그렇게 7시 30분쯤 우버택시를 타고 테이블마운틴 입구로 먼저 떠났다.

등산팀을 먼저 보낸 나는 뒷정리를 하고 반전님, 유쾌님, 작가님과 함께 8시 30분쯤 숙소를 나서 테이블마운틴으로 향했다. 역시 우버택시를 이용했다. 케이프타운에서는 우버택시가 무척 잘 되어 있다. 어디서든 우버택시 콜을 하면 오래지 않아 바로 응답이 온다. 역시 콜을 부른지 얼마 되지 않아 택시가 왔고 낯선 동양인에게 이것저것 질문이 많던 기사를 응대(?)하며 테이블마운틴 입구에 도착을 했다. 택시요금은 67ZAR. 아무래도 출근시간 대라 그런지 낮보다는 살짝 비쌌다.

테이블마운틴 입구에서 내려다본 케이프타운의 전경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왼쪽으로 보이는 케이프타운 시내 전경이 눈을 화악 사로잡았다. 거대한 이 테이블마운틴의 산자락이 그 끝을 다해 평평해져가는 그 곳에 수많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중심부에는 꽤나 높아보이는 빌딩들이 서 있는데 도심에서야 참 높다~~ 그러고 있었겠지만 산에서 보니 작아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저 멀리 만(灣)의 형태를 띠는 바다가 보이고 항구시설들의 모습도 보였다. 택시 타고 올라오며 만난 분주한 아침의 모습은 넓은 풍경 속에 묻히고 아름다운 해양 도시의 모습이 절묘하게 펼쳐져 있었다. 급한 게 뭐 있나! 넷이서 이런 배경들을 두고 그냥 갈 수는 없지 않나 싶어 각자의 휴대폰에, 카메라에 풍경을 담았고, 작가님은 셀카봉을 뽑아들고 본격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일행들 서로의 얼굴을 담은 사진 찍어주기도 한참을 한 후에야 케이블카 매표소를 찾아 갔다.

사실 매표소를 앞에 두고도 여기가 매표소가 맞나 싶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안내해주는 직원도 보이질 않아서 아직 문을 안 열었나 싶을 정도였다. 티켓박스 앞에 안내문을 읽어보니 왕복과 편도 티켓이 있었다. 앞서 등산을 택해 길을 나선 우리 일행들은 정상에서 편도 티켓을 구입하면 되겠다 싶었다. 우리 4인은 인당 360R(ZAR를 줄여 R이라고도 표기한다. 원화로 5만원이 조금 안된다)씩 하는 왕복티켓을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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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 케이블카 매표소와 왕복 티켓.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 여기가 매표소 맞나 싶을 정도였다.

티켓을 사고 탑승 시간을 기다리며 산 쪽을 바라보았는데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파랗게 맑아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위풍당당한 산의 몸통이 드러나고 테이블처럼 평평하다는 정상 부근은 정말로 새하얀 구름이 이불처럼 덮고 있는 모습이었다. 흰 구름이(그야말로 짙은 새하얀 구름이) 정상 부분을 덮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주변에 있는 모든 구름들을 다 모아다 두터운 솜이불을 만들고 그것으로 거대한 침대 위를 풍성하게 덮고 있는 모습처럼 보였다. 색의 대비가 주는 아름다움과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고 그 옛날 이 산을 보며 길잡이를 했던 항해사들 또한 감탄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테이블 위에 걸쳐져 있는 새하얀 구름이 멋스럽다

200킬로미터 밖에서 알아볼 수 있는 테이블마운틴은 예로부터 아프리카의 남단을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했다. 1488년 포르투갈 항해가인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곳을 발견했다. 오늘날 이 산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장 유명한 지형이 되었다. 지질학적으로 보자면 테이블마운틴은 약 4억~5억 년 전에 얕은 바다에 형성된 거대한 사암 덩어리이다. 거대한 지각운동으로 산은 지금 높이인 해발 1,086미터까지 융기되었다. '식탁'은 약 3.2킬로미터 정도로 양쪽 끝에 독특한 지형이 있다. 한쪽은 데빌스피크라는 원뿔 모양 언덕이 있고 반대쪽에는 라이언스헤드가 있다. 여름에는 정상 부근이 마치 식탁보를 덮은 것처럼 구름이 걸려 있다. 산 아래로 녹음이 싱그러운 비탈에는 야생화 무리가 흩어져 자란다. 테이블마운틴은 다양한 식물이 번성하는 곳으로 고스트프로그처럼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식물이 자생한다. 케이블카가 있어서 정상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서 케이프타운이 보이며 맑은 날이면 케이프 오브 굿 호프도 보인다.(자료출처 : https://blog.daum.net/mindu502/)


시간이 되어 케이블카에 탑승했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여기의 케이블카는 흔히 우리가 아는 자동차 모양의 직사각형의 모양이 아니었다. 전체가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데 케이블을 타고 올라가면서 원형모양의 바닥 전체가 서서히 회전을 하는 것이었다. 기존 케이블카는 사람이 많아 한쪽에 낑겨 타야할 때, 내리기 전까지 한 부분의 풍경만을 강제로 감상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회전식으로 만든 것은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이블카 안에서 바라보는 산 풍경, 도시 풍경 모두 아름다웠고 이런 모든 풍경을 모두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원형 케이블카의 모습.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천천히 회전을 하기 때문에 산 뷰와 바다 뷰, 시티 뷰 모두를 감상할 수 있다.

그렇게 한 곳에서 서서 산쪽과 바다쪽을 모두 감상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바깥 풍경이 서서히 흐려지면서 이내 위도 아래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바깥 세상이 뿌옇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아래서 보았던 그 짙은 흰 구름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안개인지 비바람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케이블카의 창(케이블카 위쪽으로 높이 20cm가 조금 안되는 창문이 있고 그것은 열려 있었다.) 사이로 들이치기 시작했다. 그리곤 얼마 후 케이블카는 정상에 도착했고 우리는 너무나도 편안하게(?) 정상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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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가 출발할 때의 풍경(왼쪽)과 정상부근에서의 풍경(오른쪽). 산이 높아 풍경이 이렇게 금세 달라진다.

하지만 올라온 과정에 비하면 정상의 여건은 좋지 않았다. 케이블카에서 맛을 보았던 그 안개인지 비바람인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자신은 절대 안개가 아니며 거센 비바람을 품고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임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몸을 가누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고, 안개같은 굵기의 물방울이지만 그 녀석들은 거센 바람에 밀려 사람의 빰을 강하게 치고 갔다. 바람의 속도만큼 눈 앞의 풍경이 맑아졌다 흐려졌다를 반복했다. 이 상태로는 도저히 정상부근을 산책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 넷은 케이블카 건물에 있는 커피 라운지(테이블마운틴 카페)로 대피(?)를 했다.

외부에서 본 케이블마운틴 라운지. 이곳이 카페임을 알리는 간판이 짙은 구름에 희미하게 보인다.

짧은 몇 분이었지만 강렬한 체험을 하고난 뒤라 따뜻한 무언가가 무지하게 당겼다. 반전님이 나섰다. 커피를 사오신 것이었다. 창밖의 매서운 날씨와 따뜻한 커피 맛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커피 한 잔 하면서 라운지에 비치된 안내문, 케이블카 탈 때 챙겨둔 테이블마운틴 안내문 등을 보고 있자니 이 산을 걸어 올라오고 있을 다른 일행들이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커피를 호호 불어대며 이 구름도 얼른 걷히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P20200129_162124163_99A4BC48-D88D-4959-A981-AB1A170C9225.jpg 카페에서의 커피. 맛은 그리 훌륭하진 않지만 바깥 날씨에 대비되어 따뜻함만은 최고였다.

커피와 함께 라운지에서 여유를 즐기다보니 시간은 어느덧 9시 반을 넘어 10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등산팀이 여전히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잠깐 라운지 바깥으로 나가 테이블마운틴 정상 부근을 돌아다녀보니 그 걱정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 태풍같은 비바람 속에 등산을 한다니... 과연 무사히 이곳까지 도착할 수 있을까?

테이블마운틴 정상 산책로의 모습. 테이블(?) 위는 여전히 구름 속이었다. 세찬 바람을 사진으로 표현하지 못함이 아쉽다.

10시 30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 드디어 등산팀이 정상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라운지가 있으니 이곳으로 오라고 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에야 그들이 나타났다. 엄청난 비바람을 뚫고 2시간 넘게 걸린 대장정을 마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온 몸이 홀딱 젖었고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라운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황급히 손수건 등을 꺼내 주었다. 가방 속에서 주전부리들을 꺼내 허기를 달래고 뜨거운 커피로 추위를 달랬다.

어느 정도 수습이 되자 등산팀의 도전기를 한 두 사람이 풀어내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평온했다고 했다. 택시에서 내려 입구를 찾아 걸었고 트래킹 코스 안내판을 자세히 살펴 등산에 나서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지점의 고도에서는 맑은 날씨였다. 그런데 산을 올라오면 올수록 점차 시야가 흐려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앞을 가늠하기가 힘들어져갔고 강한 비바람에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등산 중 만난 서양인 부부가 굳건히 올라가는 것을 보고 다시 되돌아 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꾸역꾸역 올라왔다고 했다. 올라오면서 찍은 사진들에는 그 고생길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리고 끝내 정상부분 테이블에 도착해서 케이블카 팀에게 도착을 알리고 라운지를 찾기 시작했고 찾아가는 길에 듬성듬성 나타나는 햇살에 달궈진 바위에 기대어 추위를 달래기도 했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라운지를 찾았는데 바깥에서 보이는 그 카페의 입구를 찾지 못해 또 한참을 빙빙 돌았다고 한다. 여름 복장을 한 채로 시작한 산행인데 예상치 못한 폭풍우(?)와 높은 고도 탓에 오들오들 떨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얼른 카페로 들어가고 싶었으나 마지막까지 입구를 발견하지 못해 헤매었다고 하니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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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코스의 입구. 시작은 맑았으나 바위 산 위쪽으로는 구름에 쌓여 그 높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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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맑은 날씨 속에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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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질수록 구름 속을 걷기 시작했다고 했다. 구름 속 산책이 아니라 태풍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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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처럼 평평한 정상에 도착한 기쁨과 함께 바위에 몸을 기대 추위를 녹여야 할 만큼 혹독한 등산이었다.

얼마쯤 휴식을 취한 뒤 아침보다 나아진 날씨를 틈타 테이블마운틴 정상 부분을 함께 산책하러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여전히 구름과 바람이 엄청났지만 해가 점점 높이 뜨면서 얼굴을 때리는 듯한 느낌은 덜했다. 구름 사이로 순간순간 나타나는 케이프타운의 전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케이프타운이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좋은 몇몇 장소에서 바람에 휩쓸리는 몸과 머리카락을 붙잡고 기념 사진도 깔깔대며 넉넉히 찍어두었다. 날씨만 좋았다면 따사로운 햇살에 빛나는 푸른 바다와 조그맣게 보이는 도시의 전경이 마치 훌륭한 달력 사진처럼 멋스러운 뷰를 보여줄 수 있을 듯 했다. 그 좋은 풍경을 구름 사이에서 5초, 10초 정도씩 간간히 볼 수 있다는 게 무척 아쉬울 따름이었다. 추위를 피할 겸 정상 산책로 중간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도 들러서 이것저것 쇼핑도 했다. 여타의 기념품 가게에서 볼 수 있는 꽤 질 좋은 기념품들이 많았다. 다만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다.

세찬 바람 속에 구름이 살짝살짝 걷힐 때를 틈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뷰를 볼 수 있었다. 한 폭의 그림같은 풍경이다.
테이블마운틴 정상 산책로에 있는 기념품 가게. 여전히 구름 속 비바람을 헤치고 가야했다.

전혀 아프리카 같지 않은 날씨를 체험한 뒤 완전체가 된 우리 일행은 모두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구름 속에 갇혀 내려가는 느낌만 느끼다가 산 중반부 밑으로 내려오면서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는 산 아래의 케이프타운 전경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을 왜 그리 쌩고생을 했느냐며 농담을 건넸더니 열혈님의 입에서 "테이블마운틴을 올라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일성이 터져 나와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산 아래로 다 내려와 보니 아침보다 더 선명하게 아름다워진 테이블마운틴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정상부근에만 새햐안 구름을 얹어 놓고 있어 마치 하얀 식탁보가 테이블 밑으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구름이 정상 아래 절벽으로 폭포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이 산을 테이블마운틴이라고 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히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구름의 경계 부분을 통과하며 내려가고 있는 케이블카에서 아래쪽 풍경을 담았다.
한결 더 맑아진 산 아래의 풍경.
테이블 위를 덮고 절벽 아래로 흘러내리는 하얀 구름

그 아름다운 풍경을 각자의 카메라에 담느라 시간을 조금 소비한 후에 점심을 먹기 위해 이동하기로 했다. 등산팀은 그 몰골로 갈 수가 없으니 숙소로 돌아가 씻고 옷을 갈아입고 오기로 하고 캐이블카 팀 넷은 먼저 식당이 있는 근처로 이동하기로 했다. 우버택시 콜을 신청했더니 오래지 않아 택시들이 도착했고 그렇게 두 팀으로 나눠 다시 이동했다.

택시는 우리의 목적지 The Green Market Squar를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그린마켓스퀘어는 1652년 케이프타운이 설립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 농장에서 나는 신선한 농산물과 함께 노예를 판매하기도 했던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라고 한다. 예전 시청도 이 근처에 있었고 19세기까지 케이프타운의 행정 및 사회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고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는 차별에 저항하는 정치적 시위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런데 1905년 시청이 옮겨가며 점차 중심지로서의 명성을 잃고 1950년대부터는 주차장으로 사용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지금과 같은 아프리카 공예품을 사고파는 벼룩시장으로 변모했다고 한다. 노예 해방 운동 시기에는 이곳에서 상징적인 시위도 열렸었다고 한다. 광장 주변으로는 옛 시청사, 성당 등의 건물들이 남아 있고 그 주변 일부에는 노숙자가 머무는 듯한 허름한 천막들이 들어서 있기도 해서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주변에는 많은 식당과 카페가 둘러 싸고 있으며 광장 중심으로는 공예품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어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장 한 켠에는 허름한 천막들이 늘어서 있다. 빈민들의 모습을 일부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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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주변에 있는 성당의 모습(왼쪽), 다양한 공예품을 팔고 있는 벼룩 시장의 모습(오른쪽)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이곳이 벼룩시장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프리카 특유의 알록달록한 원색미를 뽐내는 각종 타피스트리나 옷, 손수건부터 그림과 각종 장신구와 자석, 나무를 깎아 색을 칠한 그릇과 목공예품들이 허름한 천막부스마다 너무나 다양하게 가득차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띈 것은 기린, 코뿔소, 코끼리 등 아프리카 초원에 사는 동물들을 목공예로 만든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가게마다 다 구비해 둘 만큼 많았다. 하지만 부스마다 동물들의 크기도, 얼굴도, 색도 다 달랐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나무를 깎고 색을 칠해 만든 수공예라서 만든 이의 솜씨에 따라 품질도 다르고 생김새도 달랐다.

여러 부스마다 정말 다양한 공예품들이 알록달록한 모습을 하고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쾌님이 가장 앞서 시장털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체적으로 한번 쓱 둘러보면서 흥정을 걸어오는 상인들과 상품들을 살폈고 그 중 마음에 드는 가게 몇 군데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역시 시장은 흥정이 제맛이다. 그리 유창한 영어 실력들은 아니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의 스킬(?)을 발휘하면서 뻥튀기되어 있는 가격을 우리가 수용할 수 있을 수준으로 깎아 보았다. 그러던 중 선글라스를 멋드러지게 낀 젊은 청년의 가게에서 동물 모양의 목공예품을 사기로 했다. 상인과 손님이 서로 어깨를 징긋거리면서 곤란하다는 표시를 번갈아가며 한 끝에 적절히 타협에 성공했다. 유쾌님 특유의 유쾌함이 청년의 코드와 맞았던 듯 싶다. 여기서 나도 기린 두 마리를 구입했다. 유쾌님을 포함한 다른 일행들과 함께 여러 개를 사면서 가격은 더 낮아졌다. 포장을 잘 해달라고 했더니 기린을 신문지로 둘둘 말아 테이프로 붙여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비닐 봉투에 담아주었다. 그것이 포장의 끝이었다. 뽁뽁이 같은 것은 아예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상태로 트렁크에 고이 모셔 아프리카 곳곳을 돌아다니고 열흘 쯤 뒤에 한국으로 안전히 이송(?)했다.

유쾌한 청년의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우리 일행. 여기서 구입한 기린은 우리집으로 잘 모셔왔다.


뒤늦게 등산팀이 재정비 후 그린마켓스퀘어에 도착했다. 완전체가 된 일행은 간단히 공예품 시장을 둘러보고 각자 쇼핑을 한 후에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일부는 가게 내부 테이블에 앉고 일부는 광장 쪽으로 나 있는 외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메뉴판을 보며 이것저것 여러가지 요리를 주문했다. 특히 오전 등산팀은 고된 노동(?)을 하고 난 이후라 허기가 몰려왔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주문했다. 백인 주인장은 사람 수에 비해 많은 주문 수에 연신 미소를 지으며 유쾌하게 응대했다.

광장과 맞닿은 곳에 위치한 Cafe Sante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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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문한 메뉴들 중 일부.

주문 후 먼저 나온 맥주와 음료를 시원하게 마시기 시작하는데 식당 앞 광장 주변에 무언가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있더니 이내 음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즐기던 우리 바로 앞에서 버스킹 공연이 시작되었다. 몇 명의 청년들이 마림바와 색소폰으로 흥겨운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은 본 식사가 나와 음식을 먹기 시작할 때까지 이어져 식사의 즐거움을 흥겹게 해주었고, 잠시 조용해지나 싶더니 바로 다른 사람들(이번에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나타나 기타와 북을 연주하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흥은 역시 사람이 많은 광장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식사를 하며 리듬을 타고, 오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춰 함께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너무 좋았다.

그린마켓 광장 주변을 음악으로 채우는 거리의 악사들

본격적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첫 여행의 오전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무엇보다 테이블마운틴을 직접 올라가 보고 왔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등산팀은 모진 고생을 해서 그런지 그 뿌듯함이 꽤 오래 갔다. 여행 내내, 그리고 여행이 끝나고나서도 이 테이블마운틴 등산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을 보면 그 체험이 여행의 시작점에서 꽤나 중요한 의미가 되었던 것 같다. 이 모든 것은 날씨가 이렇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보인다. 아침에 구름 가득하던 날씨가 산 정상으로 갈수록 폭풍우로 느껴지게 했고 오후 되면서 점차 맑아져 깨끗한 뷰를 선물해주었다(다음 날은 아예 구름이 없어 멀리서도 테이블마운틴 전경이 깨끗하게 보였다).

점심 후 오후 일정은 이날의 날씨처럼 오전과는 다른 콘셉트의 여행으로 이어졌다.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 오르기 전 아침의 케이프타운 전경
테이블 마운틴 정상에서 내려온 후 바라본 한낮의 케이프타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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