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

12살 청소년지도사 꿈을 꾸며, 신념이 생겼다.

by 블리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2008년) 5월 어느 날이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속옷이랑 침대에 피가 묻어 있었다.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고, 등교 시간은 다가와서 일단 학교로 갔다.


도착해서 친구들한테 "자고 일어났는데 피가 나왔어. 너네도 그래?" 물어봤다. 한 친구가 "그거 월경, 생리야." 말하는데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그러면서 "진짜 여자 되는 날"이라고 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친구와 보건실에 갔더니 생리대 하나를 받았다. 처음 본 생리대, 다행히 친구가 친절히 알려주었다. 생전 처음 느껴본 불편함에 이상했다. 아침에 아주 작은 소동으로 어수선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학교에서의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그날 오후 수련관에 도착해서 사무실에 인사드리고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저 생리해요"라고 말씀드리니 "정말? 축하해! 은지야. 이제 진짜 여자가 되었네!" 축하 인사를 았다.

방과후 수업을 마치고 집을 가려는데 선생님께서 파우치를 손에 쥐여주며 "안에 생리대 넣었어. 없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축하해! 은지야."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께서 생리대와 새로운 속옷을 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딸 축하해" 메시지도 있었다.


나의 첫 월경, 선생님을 통해 축하를 받았고, 12살 은지는 낯설었지만, 마음이 몽글몽글한 날이었다.



또 한 날은 반 친구와 크게 싸웠었다. 점심시간에 배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패륜적 농담(부모님 욕)을 했다. 3번 정도 참다가 담임선생님한테 이야기했는데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112에 신고했다. 신고하고 있는 도중에, 분노에 찬 친구는 책상 위에 있는 커터 칼을 들어, 내 팔을 그었다. 놀란 와중에 끝까지 신고했다. "여기 oo초등학교 o학년 o반이에요. 친구가 칼 들고 저 그었어요. 지금 바로 와주세요."


팔에서는 피가 계속 흐르고, 담임선생님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점심시간은 어수선한 채 경찰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몇 분 뒤 경찰 2명이 학교 교문 앞으로 왔다. 나랑 친구, 담임선생님은 경찰차가 있는 교문으로 나갔다. 나는 피가 난 채 가만히 서 있었고 친구는 커터 칼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인근 파출소로 가서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를 했다. 찰은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보호자 번호를 모른다고 했다. 문득 방과후아카데미 선생님이 떠올랐다. 경찰은 수련관에 전화해서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선생님 3명은 오자마자 놀란 나를 안아주셨다.


네 잘못이 아니야. 연락해 줘서 고마워. 잘했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초췌한 내 모습을 보더니 밥부터 먹으러 갔다. 선생님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기다려주셨다. 밥을 먹으면서 억울하고, 속상해서 눈물을 계속 흘렸다. 복합적인 감정의 눈물이었다. 예기치 않은 경찰서 방문과 엄마를 대신해서 나를 보호해 주고 지켜줄 어른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 나를 보호해 줄 어른이 없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언제든 내 편이 되어줄 어른이 있고, 온전히 나를 사랑해 줄 어른 딱 1명만 있어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경험했던 날이었다.


돌아보면 우여곡절이 많았고, 덕분에 배움과 성장이 있었던 5학년이었다.


믿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있었다는 것
나를 보호해 줄 어른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나도 선생님처럼 청소년이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의 신념을 가진 청소년지도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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