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참여활동'을 통해 꿈을 확신했다.

청소년지도사 꿈을 다시 꾸게 한 시발점은 청소년운영위원회였다.

by 블리
2014년은 내게 더 없이 '꿈에 대한 확신을 찍어준 해'로 남아있다.


고등학교 1학년,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등교하고 수업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순간 잊고 있던 집 근처 청소년수련관이 머릿속에 스쳤다.

‘그래, 수련관 가야겠다.’ 생각이 들자마자 스승님께 연락드렸고, 학교 마치자마자 수련관으로 향했다. 그곳엔 우리 스승님이 사업팀 팀장으로 계셨다.


문을 열자마자 나는 말했다.

“쌤, 학교에서 봉사 시간 채워오라고 했어요. 여기서 제가 할 수 있는 봉사 뭐 있을까요?”

잠시 고민하신 선생님은 나를 문서 정리와 행정업무 보조에 배치하셨다. 그 후로 매일 쌓여 있는 서류를 날짜별로 분류하고, 영수증을 붙이고, 복사하고, 행사 사진을 찍고, 파지를 정리하는 일상으로 하루를 마무 했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내가 도움이 되고 있구나’ 하는 감각이 피어올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불쑥 물으셨다.

“지금 수련관 청소년운영위원회 모집 중인데, 너 해볼래? 아니, 너랑 어울려. 너처럼 수련관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청소년이 해야 잘할 수 있어.” 그 말은 권유였지만, 동시에 운명 같은 신호였다.

나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신청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했다. 사실 그때는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몰랐다. 그저 다시 수련관에 갈 이유가 생겼다는 사실이 좋았다. 놀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진짜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설렜다. 가슴 한켠이 간질거렸고,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열정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청소년운영위원회는 청소년이 시설의 주인으로 청소년의 눈높이에서
시설과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고, 더 나은 기관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시하는 등 직접 참여하는 활동이다.


때론 지역의 회의나 자치기구 교류에도 참여하며, 청소년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처음엔 솔직히 겁이 났다. ‘내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 두려움보다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더 컸다. 그래서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손을 번쩍 들어서 위원장을 해보겠다고 나섰다.

지금 돌이켜보면, 뭘 몰랐기에 가능했던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마디가 내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결국 나는 청소년운영위원회 ‘함시울’ 12기 위원장이 되었다.

처음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하루하루가 도전이었다. 위원들과 함께 조직을 꾸리고, 정기회의 일정을 세우고, 청소년들이 더 쉽게 참여할 방안을 고민했다. 그리고 긴 회의 끝에 우리만의 슬로건을 정했다.


“소통과 화합을 기똥차게 ”

그 말에는 우리가 어떤 팀이 되고 싶은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첫 정기 회의를 시작으로 모든 날이 새로웠다. 함께 웃고,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면서 ‘우리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성취감이 차곡차곡 쌓였다. 선생님들께 자문을 구하고, 지역 청소년들과 교류하며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진짜 세상의 언어를 배웠다.


수련관은 어느새 내게 두 번째 학교이자, 또 다른 집이 되었다. 공부보다 더 열심히 참여했고, 학교보다 더 자주 드나들었다. 그곳에 있으면 내 존재가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꿀이라도 발라놓은 듯 매일 수련관으로 향했다. 참여 활동의 시작은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한 타의’였지만, 그 끝은 ‘나의 선택’이었다. 선택을 통해 나는 처음으로 ‘참여’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단순히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로 세상에 스며드는 경험이었다.


2014년, 한 해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때 느꼈던 설렘과 책임감은 여전히 내 안에서 불빛처럼 남아

청소년을 만나는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했다. 결국, 돌고 돌아 되찾은 내 꿈은 계속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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