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학해서 동아리 모집이 한창이었다. 다양한 동아리 중에, 눈에 띈 건 하나였는데, 바로 '방송부'였다. 사실 중학교 때부터 방송부에 들어가고 싶어서 면접과 오디션도 봤는데, 아쉽게 탈락이었던 전적이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 이루지 못했던 방송부 활동을 고등학교 때는 꼭 해보고 싶어졌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방송부 지원을 했다. 방송부원 역할로는 아나운서, PD, 음향 등 다양했다. 나뿐 아니라 신입생들이 많이 지원했었고, 1명씩 방송부실에서 면접을 봤다. 내 차례가 오기도 전에 이미 '합격'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내 아나운서는 '여자'를 선호했고, 신입생 중 여자 지원자는 혼자였다.
근거 없는 소문이었지만 신경은 쓰였다. 정말 '여자'라는 이유로 합격을 당연하게 주고, 내가 받아들인다면 형평성에 어긋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 차례가 왔을 때 보여줘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가슴에서 끓어 올라왔다. 이름을 듣고 면접장에 들어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나왔다. '나답게' 목소리는 크게, 문장은 정확하게 읽었다. 그리고 방송부원 동아리 시간과 역할에 대해 안내받았고, "합격" 소식을 직접 들었다. 그렇게 1학년 방송부원은 아나운서 1명, PD 2명, 음향 1명 총 5명으로 구성되었다.
방송부는 동아리라고 보기에는 1년 또는 2년, 3년을 고생해야 하는 지속적인 활동이었다. 그래서 장학금도 받고, 급식도 선두에서 먹는 등 배려받는 부분이 많았고 그만큼 중요한 활동이었다. 동아리 OT를 하면서 방송부 선후배 인사를 하고, 담당하게 되는 역할에 맞게 선배들의 지도를 받았다. 처음에는 방송부 아나운서라고 하니까 막 설레고, 좋았다. 그런데, 방송부원은 학교를 일찍 등교해야 했고, 점심도 일찍 먹고 방송을 준비해야 하고, 학교 행사한다고 하면 방송부 전체가 담당하게 되어 준비하는 등 힘든 부분도 많았다. 그래도 '여자' 라는 이유로 동기, 선배들이 많이 배려해 주셨다. 가끔은 생리통이 심해서 학교를 못 가는 날이나 보건실에서 쉬어야 하는 날이면 동기나 선배들이 대신 아나운서를 해주기도 했고, 무거운 짐이나 번거로운 일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또 쉬고 싶은 날이면 방송실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비워주시기도 하고 돌이켜보니 그 당시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다 '배려' 였음을 깨달았다.
1학년 때 교내 아나운서를 하면서, 방송실 앞 소리함을 설치해 사연을 받거나 노래 추천받았다. 그래서 점심 방송 전, 음악을 정하고 원고를 작성한다. 그렇게 방송 시간이 되면 "BBS 아나운서 신은지입니다" 멘트로 점심시간 방송이 시작된다. 다양한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연애편지' 였다. 누군가를 향한 수줍은 고백이 간절히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읽어냈다. 한 달에 약 4~6회 정도로 연애편지가 늘었다. 사연을 빌미 삼아 고백을 해보는 설렘을 내가 전할 수 있어서 뜻깊은 경험이었다. 이 외에도 선생님께 감사함을 표하기도 하고, 고민 상담을 원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사연을 받아보면서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여자라서 아나운서로 당연하지. 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흘러 마침표 찍은 건. '나였기에' 아나운서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