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들은 요가를 사랑한다. 길을 걷다 보면 요가복을 입고 요가매트를 등에 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요가 강습에 대한 광고도 과장을 조금 보태면 한 블록에 하나씩은 보이는 듯하다. 심지어 여름이 되면 Bryant Park에서는 무료 요가 클래스가 열려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형형색색의 요가매트를 잔디밭에 깔고 요가 동작을 선보이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 요가 관련 물품도 엄청나다. 소호에는 요가복만 전문으로 파는 브랜드 샵들이 즐비하며, 요가 음악, 요가를 할 때 켜 놓는 아로마 디퓨저까지 없는 것이 없다. 도대체 왜, 뉴요커들은 머나먼 인도에서 비롯된 요가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요가를 해 왔다. 처음 요가를 접하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하루 종일 앉아만 있는 것이 습관이 되어 어깨와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마침 학교에 요가 클래스가 개설되었다는 공고를 보고 신청을 했다. 내 생각보다 요가는 나에게 잘 맞는 운동이었다. 스트레칭뿐만 아니라 근력운동도 되어 숨이 차거나 땀이 날 때도 있었고, 공부만 하던 부실한 내 몸에 효과적인 체력 관리 수단이 되어 주었다. 그 이후부터는 일이 많거나 강습 학원이 없을 때엔 잠시 중단했다가, 여유가 생기면 다시 요가를 시작하는 등으로 간헐적인 요가 라이프를 이어왔다.
뉴욕에 오자 한참을 제껴두었던 요가 생각이 간절해졌다. 다행히 대학교에 클래스가 개설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요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첫 강습 날부터 나는 다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강사가 남자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요가를 배울 때는 단 한 번도 남자 강사를 본 적이 없었다. 요가 강사들은 수강생들의 잘못된 자세를 직접 교정해주기 때문에, 만일 여자가 아닌 남자 강사님이 내 자세를 교정하려 몸을 터치(?)하실 때엔 마음이 약간 불편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이 곳에선 수강생이 많아서인지 강사가 직접 자세를 교정해 주는 일이 없었고, 내가 우려했던 신체 접촉 같은 일은 일절 일어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요가를 수강생들 중에서도 남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내 가늘고 긴 요가 라이프 중에 남자 수강생을 본 것은 단지 두 번 정도밖에 없다. 그때엔 적잖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편하게 나시를 입고 왔는데, 물구나무서기 동작을 할 때에는 복부가 훤히 드러날 뿐만 아니라 스타킹처럼 타이트한 요가 바지를 입고 동작을 과감하게 하기엔 약간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강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남자 수강생들을 만날 수 있다. 처음엔 옷 매무새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이제는 남자 수강생이나 남자 강사를 별로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원래 이 도시가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많고 타인의 복장이나 노출 등에 개의치 않아하는 터라, 나도 별 거부감 없이 몸매를 드러낼(?) 수 있었다.(심지어 요가 바지와 탑을 입고 거리를 쌩쌩히 활보하는 사람도 많은데, studio 안에서야 무슨 상관이랴!) 게다가 오히려 여자 강사보다 남자 강사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요가를 선호하는 것은 이곳의 경쟁적인 정서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뉴욕 시민들은 걸음걸이가 정말 빠르다. 마치 다들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걷는 듯 뛰는 듯하게 총총 걸어간다. 나와 같은 숏다리 여자들은 Google Map에 나오는 예상 시간을 절대 믿으면 안 된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도저히 그 속도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계산된 시간보다 10~15분 정도 더 걸린다고 생각해야 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차들도 마찬가지이다. 뉴욕에서 yellow cap이나 uber를 한 번이라도 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신호와 차선은 그냥 참고용일 뿐이다. 꽉 막힌 도로를 요리조리 차선을 변경해가며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택시운전수를 보면서, '아, 나는 이 도시에선 절대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하게 된다.
요가를 하면 잠시나마 바빴던 모든 일상들을 의식 저 멀리로 보낼 수 있게 된다. 쿵푸팬더에서 시푸 사범이 항상 강조했던 "inner peace"가 찾아오는 것이다. 요가는 단순히 특정 자세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호흡과 명상을 곁들여 자신의 신체, 마음의 상태에 집중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요가는 운동보다는 명상의 한 종류로 분류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뉴욕 시티는 매일 숨 가쁘게 돌아간다. 속도가 너무 빠른 기차에 올라타 있어서, 잠시라도 졸아버리면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가 버릴 것만 같다. 항상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요가와 명상이 중요해진다. 내면에 집중하면서, 그 동안 무심히도 스쳐 지나갔던 아름다운 날씨, 창 밖으로 비치는 햇살의 따뜻함, 녹색 나뭇잎의 선명함을 느끼는 것이다.
요가 강사는 자신을 따라 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호흡과 자세가 있으면 그것을 해도 좋다고, 자신만의 리듬을 찾으라고 말한다. 이 곳에서는 요가에조차 자유가 가미된다. 같은 동작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마다 약간씩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런 것을 볼 때마다 nyc의 매력에 한 번 더 빠지게 된다. 나도 이 바쁜 도시에서, 나만의 inner peace를 열심히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