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난다는 건

어차피 포기해야 한다면, 미련까지 버려야 한다

by 자유지은

방송작가와 스타벅스 알바로 이중생활을 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스타벅스는 파트타임 근무자에게도 상당히 많은 교육을 시키는 곳인데, 커피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런 일을 배우는 게 재미있어서 계속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처음에는 스타벅스에서 일만 배우 고 제주도에 내려가면 따로 카페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제주도에 스타벅스 매장이 계속해서 론칭되 고 있었다. 내부 공고를 통해 지원서를 받아 제주 지역의 인력을 충원 하는 시스템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아 떨 어진 사람이 많다고 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누가 지원했는데 안 됐다더라’하는 식의 얘기가 돌았다.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심지어 공고가 자주 나지도 않았다. 어차피 스타벅스에 서 어느 정도의 경력을 쌓아야 했고, 내부 공고도 최소한의 지원 자격 을 채워야 신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간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몇 개월 뒤, 지원서를 접수하고 기다리다 인사담당자와 전화 인터 뷰를 했다. 긴 대화는 아니었지만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도에 있는 매장으로 발령이 난다는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제주 생활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온 몸의 세포가 춤을 추는 것처럼 떨리고 흥분되었다.


이렇게 제주행이 확정되기 전까지, 나는 지인들에게 스타벅스 일 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 중에서도 유일 하게 동생에게만 얘기하고 비밀유지를 당부했다. 다들 뜯어말릴 거 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제주 이민을 결심한 이상, 누가 붙잡 는다고 내 선택이 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괜히 마음을 복잡하게 하 고 싶지 않아서였다.


제주행을 두 달여 앞두고서야 친구들에게 고백했다.


“나 제주에 살러 가.”


앞뒤 없이 툭 던지듯 쉽게 말했지만,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이별 통 보라도 받은 사람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다들 내게 묻는 질문도 비슷비슷했다.


“갑자기 왜?”

“거기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방송은? 그만두고?”

“거기 가서 뭐 해먹고 살 거야?”

“그럼 집은?”


친구들의 끝없는 질문공세는 당연했다. 미리 말하지 않은 게 미안 해 나는 최대한 편안하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예전부터 제주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했기 때문인지 언제가 될 진 몰라도 제주도에 갈 것 같았다며 이해해주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런 친구도 풀리지 않는 의문을 가지고 있는 건 똑같았다.


친구들은 그동안 제주에 가려고 스타벅스 알바를 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방 송작가를 그만둔다는 얘기에 또 놀랐다. 그럴 만도 했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항상 방송작가였고, 운 좋게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방송작 가를 시작해 정말 즐기면서 일했기 때문이다. 같은 일을 하는 친구에게도 “너는 방송작가가 천직인 것 같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그런 내가 방송 일을 그만둔다니, 쇼킹한 뉴스일 만하다.


그동안 한 게 아깝지 않냐, 아쉽지 않냐는 말이 돌아왔다. 솔직히 아쉬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좋아하며 재미있는 일이고, 보수에 서도 큰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별다른 꿈 없이 일반 회사에 다니던 친구들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며 신나게 살던 나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한때는 주변의 그런 시선을 즐기는 일도 내 직업 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준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나는 이미 제주에 가기로 마음먹 었는데.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쪽에 걸 어보고 싶었다. 익숙한 도시를 떠나, 저 아름답고 낯선 곳에서 여행하 듯 살아보는 게 그 당시 내가 품은 꿈이고 소원이었다.


당장 손에 쥔 것, 자연스럽게 누리던 것을 전부 버리기란 분명 힘든 선택이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낯선 사람과 일하며 돈도 적게 벌고 외롭게 살아야 한다면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나는 원래부터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사서 고생을 하는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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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망 설임 때문에 하고 싶은 제주 이민을 미룬다면 2년, 3년이 흘러서도 ‘아, 제주도에 가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머릿속 에 찾아들 게 분명했다. 비록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면 누구를 원망할 일도 없고, 최소한 미련이 남지는 않으니까.


어차피 포기해야 한다면, 미련까지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서울을 떠나려니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표 면적으로는 ‘돈’과 ‘친구’가 그랬고, 눈에 띄지 않지만 당연하게 이용 하던 생활편의 시스템과 각종 문화생활도 포기해야 하는 것 중 하나 였다. 특히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려면 왕복 비행기 티켓과 시 간까지 두 배로 빼야 하니, 새해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연말 콘서트는 엄두도 내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시쳇말로 뼛속까지 서울 사람인 내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제주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떤 후배는 내가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3개월 만에 올라올 게 분명하다 며 장담하듯 말했고, 그 옆에 있던 친구는 “아니야, 그래도 내 생각엔 6개월 정도는 있다 올 거 같은데?”라고 말하며 내가 1년도 버티지 못 하고 다시 올라온다는 데에 한 표를 던졌다. 그런 말을 웃어넘기면서 도 한편으로는 불안이 엄습했다. ‘이렇게 소중하고 끈끈한 사람들을 두고 혼자 제주에 내려가서 살면 어떤 느낌일까? 정말 외롭지 않을 까?’ 하는 의구심이 마음속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서 오히려 더 크고 또렷하게 말하고 다녔다.


“괜찮아! 외국도 아니고 말도 다 통하는데. 거기 가서 친구 사귀면 되지 뭐가 문제야? 정 보고 싶으면 가끔 놀러 올게.”


이렇게 나는 내가 뱉은 말을 다시 주워들으면서 내 결심을 굳히고, 미련과 불안을 떨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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