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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정벌레 Jun 17. 2024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보람 되길

끝까지 가자

사진=딱정벌레

날씨가 참 좋았지만 도서관에 향했다. 지난 연휴에 이것저것 구경을 많이 했기도 하고 지난 금요일 업무를 수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해결해야 할 일이 늘었다. 난 첫째 주, 셋째 주에 업무가 특히 몰릴 때가 많다. 내 업무는 순환 업무가 많고 마감 일정이 정해져 있다 보니 그 일정을 앞두고 정기적으로, 정해진 시점에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 일정이 임박하면 업무 강도나 스트레스, 부담이 더 크고. 가장 부담스러운 주간이 다가왔다.

정기 업무를 루틴 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루틴 하다고 해서 아무 일이 없는 건 아니다. 매번 이슈가 있다. 여러 정기 업무가 있는데 그중 한 업무는 협업 파트너가 있고 그 파트너는 늘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돌아가면서 일하는데 사람이 바뀌면 업무 상황도 매번 달라진다. 단순히 사람이 달라서 바뀌어서 생기는 변화만 아니고 결과물에 따라 업무 상황이 늘 바뀐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많다. 파트너는 항상 달라지고 결과물은 언제나 새로우니까.

항상 하는 일이지만 상황이 매번 달라지니 일을 마무리지을 때 말고는 마음 놓을 새가 없다. 언제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고, 지금 이 일을 하는 동안에도 다음 일을 계속 준비해야 하니까. 문제가 생기면 빨리 대안을 실행해야 하고. 문제를 수습하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인지자원도, 감정도 많이 쓴다. 요즘 많이 지친다. 상황이 더 나아지기보다 쳇바퀴 돌듯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거나 어떨 때는 부정적으로 느끼는 상황도 있어서 그렇다.

변수에 원활히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피하지 않고 그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주말에 작업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특히 낯선 주제이고,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이라 조사하고 검토할 시간이 필요했다. 평일에는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또 벌어질 수 있기에 주말에 짬을 내든, 새벽에라도 일어나든 미리 시간을 내서 일을 조금이라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평일에 시간이 너무 빠듯하니까. 다른 업무에 쓸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숙고할 시간이 절실했다.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 계획을 바꾸고 보완할 시간.

작년에는 이런 상황이 잦았다. 업무 하중만큼이나 불안이 커서 그렇게라도 미리 뭔가 해야 했다. 그러나 늘 그럴 수는 없고 충전이 필요하기에 올해는 꼭 그래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자제하려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미리 뭐라도 했어야 했다 싶은 상황은 있다. 미리 시간을 들여 준비하고 공을 들인 것과 아닌 건 고민의 깊이와 결과물의 품질이 확실히 다르다. 자동화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숙고의 깊이와 폭은 사람이 앞선다고 생각한다. 데이터베이스 처리하지 않은 경험과 통찰이 있으니까. AI 모델에 학습하지도, 그들이 접근할 수도 없는.

마음은 더 쉬고 싶고, 주말에는 일을 덜 생각하고 싶지만 그럴 수만 없고, 그렇게 선 긋는 게 바람직하지만 않다. 어쨌든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하는 일이고,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지 않는가. 내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일에 너무 매몰되는 건 좋지 않겠지만 무리하게 거리 둘 필요는 없다. 일을 더 잘해야 해야 하고, 더 잘할 방법을 궁리해 실행해야 하고. 고민한 만큼 결과가 나오고 길이 보이니까. 영감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는 것 같지만 실은 끈질기게 머리 싸매고 고민한 시간이 있었기에 아이디어가 생기는 거라고 본다. 우연인 것 같은 일도 돌아보면 필연이다.

그러나 속내는 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걸 원했다. 이러저러한 스트레스가 많아 주말에는 휴식을 핑계 삼아 그 고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당장 이번 주 해야 할 일을 놓고 보면 절대 그럴 수 없고, 그래선 안 됐다. 조금이라도 진척시키지 않으면 남은 한 주가 더 빠듯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더 나은 결과물로 일을 마무리 짓기 힘들어 보였다. 정말 중요한 건- 오늘 움직이지 않으면 내일, 모레 아니 당장 오늘 밤 내가 후회할 거란 확신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도피 심리를 더 강하게 억누르기로 했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땡볕에 오르막길을 걷느라 금세 지치고 평지에 있는 곳에 갈걸 그랬나 싶었다. 처음 가본 곳이라 풍경이나 실내 환경은 멋졌지만 그거 감상할 여유나 겨를이 없었다. 더위에 금방 지친 터라. 에어컨 바람이 잘 나오는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며 더위를 식혔다. 계획한 분량만큼 읽고 업무를 봤다. 금요일 퇴근 전에 미리 조사한 내용 가운데 그대로 쓸 수 있는 내용이 생각보다 적어 추가 조사하고 내용을 보완했다. 추가 점검, 보완 업무를 정리하고.

일을 하면서 할 일이 더 늘어 제로섬 그 이상 같기도 했지만. 초저녁까지 있다 나왔다. 요즘 해가 길어 초저녁도 환하지만 산을 내려가야 하니 밝을 때 떠나고 싶었다. 다산성곽길 말로만 들어보고, 기사로만 접하고 실제 가본 건 처음인데 참 위엄 있고 멋있었다. 낙산공원에서 보던 서울성곽과 다른 느낌. 한양도성이 어마어마했구나 싶고. 산에 있어서 그런지 벌레도 많고 길에 쓰레기가 덜 정돈된 상태로 버려졌지만. 돌아보니 남산 근처도 오랜만이라 오래간만에 그쪽 동네 고유의 정취를 느껴보는 것도 좋았다. 근래에 계속 동네 주변만 다닌 터라.

성곽 근처까지 올라가는 건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귀가할 때 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어 좋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웠고, 특히 노을에 물든 아파트, 주택 모습이 분위기 있었다. 그 뒤로 펼쳐진 성곽 풍경은 웅장하고 운치 있고. 이렇게 좋은 날씨에 도서관 와서 책보거나 일 보는 사람들은 그래도 진중하게 시설을 이용할 거란 믿음이 들었는데(요즘은 카페도 많이 가지만 조용한 도서관에, 그것도 무더운 날씨에 오기 힘든 위치에 있는 산 도서관을 찾아온 사람들이면 뜻도 있지 않을까)어느 정도 기대에 부합했고, 덕분에 쾌적하게 시설을 이용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고생해서 올라왔기에 이렇게 해 질 녘 멋진 풍경도 볼 수 있었구나. 역시 세상에 거저 얻는 건 없다는 거였다. 좋은 풍경도 수고하고 노력해야 볼 수 있다. 높이 올라야 멀리 볼 수 있고, 전체적으로 넓은 시야로 조망할 수 있다. 가까이서 보이지 않던 것도 이러한 환경에서는 잘 보이기도 하고. 나무가 아니라 숲까지 보는 경험. 이건 산을 오를 때만 누릴 수 있다. 높이 올라가려면 힘든 게 당연하고. 남들이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그들이 볼 수 없는 걸 보려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거다.

요즘 기분이 좋지 않고 감정이 최악일 때도 있고 지칠 때가 많고 그래서 하루하루 두렵다. 그러나 이는 나만 겪는 어려움이 아니고 다들 스트레스, 두려움과 맞서 싸우며 산다. 깊은 절망에서 최고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고. 과정이 힘들고 괴로워도 결과도 그리하란 법은 없으니. 물론 결과가 무조건 좋으리란 법도 없다. 다만 힘든 과정 속에서 더 잘해서 좋은 결과를 도출할 여지가 있으니 과정을 더 지혜롭게, 잘 인내해서 감내하고 싶다. 그러니 조금 덜 쉬고, 에너지를 더 쓴다 해서 아까워하지 않고, 일과 삶을 기계적으로 분리하지 말고 조화롭게 받아들이고 조율하면 좋겠다.

약간이라도 미리 더 한 게 다행인 상황도 있고. 과정 없이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까. 절대 게으름에 핑계를 주지 말고. 결과가 별로더라도 던질 수 있는 주사위는 다 던진 것과 그렇지 않은 건- 결국 노력은 자의로 통제하고 실행할 수 있는 건데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를 잘 통제하지 않아서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면 그건 더 후회스럽다. 피치 못할 상황은 어쩔 수 없지만 내 노력과 최선은 내가 충분히 다룰 수 있으니까. 그렇게 힘껏 애써도 결과는 보장할 수 없을 수 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다 해야 하는 거다.

오늘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계획만큼 많이 하지도 못했는데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냥 이 마음을 잊지 않고 싶었다. 또 비슷한 상황이 올 때 덜 고민하고 바로 행동할 수 있었으면 해서. 그러면 시간도 덜 낭비하고 더 몰입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요즘 가보고 싶은 도서관을 적립 중이라 앞으로 전진하는데 이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면 좋겠다 싶다. 카페와는 다른 매력이 있고, 도서관 특유의 집중도와 열의가 좋다. 요즘은 뭔가 이루는 걸 넘어 내가 가는 길을 끝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배우 겸 가수가 한 말인데 나는 그 사람 짬에 한참도 못 미치지만 그런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 그래야 어떤 어려움에도 쉽게 꼬리 내리고 도망치지 않고 정면승부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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