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시코드 말고, 피아노로 사도록.
이 곡이 수록된 어떤 음반엔 ‘피아노 협주곡’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드물지만 어떤 음반에서는, ‘하프시코드’로 연주되었고, 또 다른 음반에서는 이 곡을,
피아노나 오르간, 하프시코드처럼 건반이 있는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건반 협주곡’이라 소개합니다.
과연 하이든은 어떤 악기를 위해 작곡한 걸까요?
18세기 중반은 하프시코드(=쳄발로=클라브생)와 피아노가 공존하는 시대였습니다.
현을 뜯는 방식의 이전 하프시코드와 다르게, 크리스토포리가 개발한 피아노는 현을 해머로 때려서 소리를 냈는데요, 건반을 치는 힘에 따라서 큰 소리나 작은 소리가 즉각적으로 나오는 혁신적인 악기였어요.
그래서 악기의 이름도, ‘운 침발로 디 시프레소 디 피아노 에 포르테’,
우리말로 옮기면, 작은 소리(piano)와 큰 소리(forte)를 모두 내는 삼나무 건반 악기, 라는 뜻입니다.
바흐는 1747년, 아들이 일하던 프레데릭 대제의 궁정에서 질베르만이 제작한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고 해요.
모차르트는 1770년대 중반에 뮌헨 연주 여행에서 피아노를 쳐 본 뒤,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사야겠다는 편지를 썼구요.
에스테르하지 궁정에 고용된 하이든은 그보다 몇 년 뒤, 피아노를 접하고 큰 매력을 느껴,
궁정으로 피아노 제작자 안톤 발터를 초청했다고 해요.
아마 그 즈음부터 하이든의 건반악기 작품은, 하프시코드 보다는 피아노를 위해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뿐만 아니라 한 친구에게 이렇게 충고했는데요,
“사람들은 이제 하프시코드를 치지 않으니, 대신 피아노를 사시오.”라구요.
하이든의 건반 협주곡 11번 D장조는 1780년대 초, 그가 50대 즈음에 쓴 작품입니다.
파리와 빈에서 악보가 출판됐고 유럽 전역에서 사랑을 받은 곡이에요.
하이든도 이 성공이 만족했는지, 이 곡에 ‘나의 초대형 협주곡’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 곡은 아마도 피아노를 염두에 두고 쓰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프시코드의 시대가 가고 피아노의 시대가 올 것을 예감했던 걸까요?
하이든의 건반 협주곡을 어떤 악기로 연주하느냐, 하는 문제는,
작곡가가 어떤 악기를 염두에 두고 썼나, 혹은 당시에 어떤 악기로 연주됐나,를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어떤 악기로 연주하면 더 효과적인가도 고려해야 합니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이 곡이 장식음이나 구성으로 봤을 때, 피아노 연주가 더 효과적이라고 말해요.
**Haydn, 건반 협주곡 11번 D장조 Hob. XVIII:11
1. Vivace 2. Un poco adagio 3. Rondo all’Ungarese. Allegro assai (헝가리풍의 론도)
플레트네프 피아노, 이반 피셔 지휘, 17분 43초에 시작하는 3악장이 정말 신납니다!
우리가 보는 주변의 모던 피아노는, 19세기 후반, 오늘날의 모습을 확립했습니다.
이전까지는, 각 부품의 재질이나 제작법이 지역마다, 제작가마다 달라, 아직 표준이 확립되지 못했지요.
그래서 현대의 피아노와 구분해, ‘포르테피아노’라는 이름으로 부릅니다.
음반으로 들어보면 영롱하고도, 소박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