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이 5. 평범한 하루

6일째 날

by 하만다

일찍 잠에서 깼다. 시간을 번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회사 다닐 때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면 좀 더 잘 수 있었음을 아쉬워하며 괜스레 손해 본 듯한 마음이 들곤 했다.

처한 상황이 달라지니 똑같은 일을 겪어도 다르게 느낀다. 인생 참 얄궂다.


오늘도 토스트한 식빵과 딸기잼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남자 친구가 영국에서 사다 준 홍차도 함께 마셨다.

밖에 나가기 전, 엊그제 조깅하다 넘어진 것이 스트레칭을 안 한 탓인가 싶어 전신 스트레칭을 했다. 스트레칭 한 김에 유튜브를 보면서 복근 운동까지 했는데, 언제부턴가 몰라 보게 늘어진 뱃살에 나조차도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오늘은 더욱 조심해서 뛰었다.

넘어졌던 곳을 유심히 살펴보니 크고 작은 돌들이 많았다. ‘이것 때문에 넘어졌구나’ 싶어 그곳에서는 뛰지 않고 걸었다.


돌담길을 쭉 따라 뛰다가 해녀 박물관을 만나면 왼쪽으로 꺾어 뛰는데, 그렇게 뛰다 보면 어느 순간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 있다.

바다가 눈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오곤 한다. 하늘과 바다가 분간이 안될 정도로 파란 오늘 아침은 그 감동이 더했다. 제주도에 있던 날들 중 제일 좋은 날씨였다.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해변을 나는 한참 동안 바라보다 멈춰 서서 사진과 동영상을 맘껏 찍었다.


날씨도, 컨디션도, 뛰고 있는 내 호흡도 좋아서 해안 끝 흰 등대가 있는 곳까지 뛰기로 결심했다. 등대에 거의 다다랐는데 오른편 바다에서 해녀 세 분이 물질을 하고 계셨다.

햇빛이 가득했지만 아직 추운 겨울 바다인데 수면 위에서 유유히 떠다니다 잠수하고 다시 떠오르길 반복하는 해녀분들이 멋져 보였다. 해녀 박물관에 다녀온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냥 떠나가기 아쉬워 그 우아한 물질을 계속 보고 있다가 큰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다행히 내 말이 들리셨는지 한 분이 손을 들어 보이셨다.


“너무 멋있으세요!!”


그러자 다른 한 분이 손을 들었던 해녀분께 이야기한다.


“뭐라카노!”


나는 다시 외쳤다.


“멋있다고요!!”


그러자 ‘뭐라카노’를 외치던 분이 소리치셨다.


“할머니들이 뭐가 멋있노!”


‘흐흐’ 웃으면서 자리를 떴다. 마음을 전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왜인지 뿌듯하기까지 하다.

약 9년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머물르면서 카페에서 일했을 때, 무심코 건네는 손님들의 가벼운 칭찬이 굉장한 역할을 한다는 걸 알게 되었었다.

오늘 귀걸이가 예쁘다는 말부터 웃는 모습이 보기 좋다는 말까지 심심하게 건네는 그 말들이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되었었다.

멋있다고 전하는 내 진심 가득하지만 소박한 칭찬이 해녀 할머니들의 하루를 기분 좋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물질은 평소 때보다 더 쉽게 느껴지면 좋겠다.




원래는 점심을 먹기 전에 구 씨 커피 로스터스 카페에 가려고 했는데 조깅을 너무 열심히 한 탓인지 배가 고파왔다. 카페 대신 밥집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집 앞에 위치한 하도댁 흑돼지 두루치기 집으로 향했다.


하얀 외관만큼이나 내부도 깔끔했고 서비스도 좋았다. 혼밥족을 위해서 1인석이 창가에 널찍이 마련되어 있었고, 고기 굽는 것도 끝까지 책임져 주셨다. 두루치기 1인분을 시킨 나한테까지도 말이다.

두루치기는 알찼고 맛도 있었다. 며칠 후 놀러 올 엄마와 이모들과 2인분 이상 주문이 가능한 부대찌개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가게 창가석은 5개로, 모두 1인석이었다. 왼편 3개의 창가석 중 나는 가운데 석에 앉아 있었는데, 우연히도 내 양쪽에 모두 혼자 온 여자들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괜스레 동료애가 느껴졌다.


‘당신도 혼자 오셨군요. 당신이 있어 외롭지 않은 식사입니다.’

‘혼자 밥 먹는 게 결코 처량하지 않다는 걸 보여 줍시다. 누구보다 맛있게 드세요! 쌈도 싸드시고요!’


배도 부른데 날씨까지 좋다. 이런 게 바로 금상첨화지. 아니, 금강산도 식후경인가? 무엇이 됐든 한껏 들뜬 마음에 통통해진 배를 두들기며 가게를 나와 산책을 했다.

햇빛은 따뜻하고 바람도 차지 않고 시원해 산책하기 참 좋은 날씨였다. 오늘의 노래를 뽑아 한 곡 반복 듣기로 주구장창 들으며 걷다 보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다. 오늘의 노래는 볼빨간 사춘기의 ‘여행’이다.


구 씨 커피 로스터스 카페는 오늘 휴무였다. 아쉽지만 좀 더 걸어서 해변에 있는 카페 라라라에 갔다.

꽤 넓은 편이었고 사람도 많았다. 카페인이 몸에 받질 않아 끊은 커피지만 들뜬 마음에 충동적으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오늘도 쉬이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겠지만, 어쩌겠는가. 식후땡은 뭐니 뭐니 해도 아메리카노 아니겠는가.


개인 인스타그램은 잠시 접어 두었지만 기록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 한 달 살이 기록용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아직까진 팔로워라고는 남자 친구밖에 없지만 차곡차곡 사진들이 쌓여가는 내 공간이 좋다.


혼자 지내는 동안 사람이 그립고 혹여 울적한 마음이 들 때는 해변에 위치한 카페에 와야겠다 생각했다.

해변가에 있는 카페는 언제나 사람이 많고 북적북적하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바다와 갈매기를 구경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배경 삼아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까지 이곳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넘친다. 서울에서는 사람 많은 곳을 질색했었는데, 나 혼자만의 공간을 찾기 위해 찾은 제주도였는데, 이렇게 나는 또 슬금슬금 사람을 찾는다.

역시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하나로 마트에 들러 양상추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메뉴는 지난번 고추장찌개를 하고 남은 감자와 양파를 이용해서 스페인식 감자 오믈렛, 토르티야 데 파타타스를 하기로 했다. 거기에 오늘 산 양상추로 만든 샐러드까지 더하면 꽤 건강한 식사 같다.


처음 만들어 본 감자 오믈렛은 의외로 잘 만들어지나 싶었는데 아쉽게도 뒤집기에 실패했다. 뭐, 못생겨도 맛만 좋으면 됐다.

샐러드라도 잘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고 양상추를 씻는데 어째 일반 양상추보다 겉껍질이 두꺼운 것 같다. 설마 하는 마음에 양상추를 포장한 비닐에 붙은 가격표를 확인하는데, 버젓이 쓰여있다. ‘양배추, 1,500원’

어쩐지 내가 집은 양상추(인 줄 알았지만 양배추) 위 매대에 반토막짜리 양상추 가격이 훨씬 비싸길래, 왜 1 통보다 반통이 비쌀까 의문을 가졌었다.

그렇게 의문에 휩싸여 있던 내 옆을 카트를 밀며 지나가던 한 부부의 대화.


“양상추 너무 비싸다. 다음에 살까?”


“그러게, 다음에 사자. 4,000원이 넘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래에 있는 1통짜리 양상추(인 줄 알았지만 양배추)는 싸요!‘라고 속으로 외치며 그 부부가 눈길을 조금만 아래로 향해 주기를 바랐었다.


허탈한 마음에 샐러드는 포기하고 양배추를 반으로 잘라 팔팔 끓는 물에 넣어 삶았다.

'어쨌든 내일 아침은 해결됐네.'라고 생각하면서.


제주에서의 평범한 하루가 간다.


세 분의 해녀 할머니들


하도댁 흑돼지 두루치기 집 한상차림(왼쪽), 창가 1인석에서 바라본 풍경(오른쪽)


스페인식 감자 오믈렛, 또르띠야 데 파타타스(왼쪽). 원형을 알기 위해서는 검색을 해보시길 바란다. 다음 날 아침에 먹은 잘 익은 양배추(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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