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째 날
오늘 밤도 어김없이 문단속을 한다. 분명 좀 전에도 했던 문단속이지만 잠들기 전에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했던 문단속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이다. 전날 낮에 마신 커피 탓에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들었었는데, 그 덕에 오늘 밤은 수월하게 잠에 들 것 같았다.
“우왁!!!!!!!!!!!!!”
잠에 들려던 찰나, 옆 방에서 웬 남자들의 고성이 들려온다. 엠티 온 것 마냥 시끌 시끌이다. 술 게임을 하는지 뭔가 흥겨운 리듬의 노래도 들려오고 거실에 놓인 탁자가 거슬려 옮기는 것인지 무게가 있는 무언가를 질질 끌며 미는 소리 등 다양한 소음이 내 방까지 전해져 온다. 내 구역 서울 왕십리였다면 당장 노크를 하고 쳐들어가 '지금이 몇 시인지 알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냐,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은 지키고 모임을 하는 거냐, 한 번만 더 이러면 경찰을 부르겠다'는 진심 가득한 협박과 함께 '조금만 조용히 해달라'라고 부드럽게 타이르고 올 텐데, 아직은 낯선 제주와 안 그래도 적응 덜 된 이 숙소에서 밤늦게 찾아갈 배포는 내게 없었다.
‘이번만 참는 거다. 내일도 이러면 얄짤없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아무도 들을 수 없는 고함으로 활기 넘치는 옆집 손님들에게 나만 아는 무서운 으름장을 놓은 채 얼굴을 베개에 깊게 파묻었다.
옆집 사람들 때문인 건지 악몽을 꾸었다. 새벽 5시쯤 한 번 깨었었는데, 그때까지 그들은 떠들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친다. 부럽다, 그 체력.
다시 잠들어 깨니 오전 8시가 넘었다. 집에서 챙겨 온 볶은 보리로 보리차를 끓여 마시고 토스트한 식빵에 잼을 발라 야무지게 아침을 먹고 처음으로 숙소에서 빨래를 돌렸다. 집에서 항상 하는 빨래도 이곳에서 하니 새롭다. 이미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조깅을 하겠노라 마음먹은 터라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오늘의 조깅 코스는 세화초를 지나 해녀박물관을 거쳐 세화 해변을 따라가다가 오일장을 끼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오래간만의 뜀박질이어서 그런지 집을 나서 첫걸음을 떼는 순간부터 설렌 마음이 들었다. 그런 설렘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바람이었다. 삼다도답게 차고 매서운 바람이 옷 속 깊게 파고들었다. 나는 추운 날 뛰면 종종 살이 붉게 달아오르고 극심한 가려움이 느껴지는 증상이 있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피부가 땀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땀구멍이 커져야 하는데, 이 피부가 추위에 열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수축하다 보니 땀구멍이 열리지 않아 땀이 배출되지 않고 피부는 열이 올라 붉게 달아오르고 가려움을 느낀다는 설명이었다. 정확한 진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얼추 맞는 설명 같았다. 첫날부터 무리하다 병나면 안 될 것 같아 소심하게 뛰어서 그런지 참 땀이 나질 않았는데, 그 탓에 내 땀구멍이 열리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렇게 쓸데없는 고민을 안고 뛴 지 10분 정도 되었을까? 돌부리인지 아님 소심한 발놀림에 내 발에 내가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세화 해변 도로 바로 옆이었다. 넘어지는 그 순간이 내게는 마치 슬로 모션 같았는데, 꼬인 스텝으로 두 발자국 정도 디뎠다가 속으로 '넘어진다.'를 외치곤 손바닥부터 발끝까지 슬라이딩하듯이 넘어졌다. 넘어지는 것에 있어서 아픈 것보다 창피한 것이 먼저라는 만고의 진리를 누가 말했던가.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는 차도 바로 옆에 쓰러져 있는 사연 있는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아 후다닥 일어났다. 손바닥은 손가락 부분을 제외하고 돌바닥을 짚은 부분이 피와 흙 투성이가 되었다. 그 와중에 새로 산 요가 바지와 하얀 숏 패딩이 찢어지지 않아 다행이라 여겼다. 액땜 제대로 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조깅 코스를 끝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상처 부위를 씻어내기 전, 피와 흙투성이가 된 손바닥이 뭐 자랑할 거라고 인증샷을 남겼다. 이걸 누구에게 보내지 고민하다 가족 카톡방에 보냈다.
제주 한 달 살이를 하겠다고 하니 못마땅해하던 아빠였다. 아니, 아빠는 못마땅하다고 표현한 적 없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휴직을 3개월가량 하니, 본가에 내려와 쉬면서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내면 좋지 않겠냐는 게 아빠의 바람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얻어 낸 휴식인데 그냥 본가에서만 보낼 순 없었다. '이쯤이면 충분하겠지.'라고 여기며 약 3주 간의 긴긴 시간을 본가에서 보내고 제주도로 훌쩍 떠나왔다. 내가 제주도로 떠난 뒤로 화가 난 건지, 아니면 삐진 것 인지, 아빠는 연락이 없었고 나는 그런 아빠가 내심 신경 쓰였다. 그러니 나는 부상당한 딸의 상처를 안타까워하며 '이쯤이면 됐지?' 하며 떠나버린 딸에 대한 고까운 마음은 버리시길 바라는 마음에 사진을 보낸 것이다.
카톡 사진 옆 숫자는 하나씩 없어져 가는데 아빠는 아무 말이 없다. 카톡을 읽은 엄마만 ‘조심해야지 어쩌다 다쳤냐’며 걱정 어린 답을 해왔다.
‘아빠가 단단히 삐졌나 보군’
생각이 들었으나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은 찾지 못하고 있던 차에 카톡방에 사진이 한 장 도착했다. 새로 산 장갑 사진이었다. 그리곤 전화벨이 울렸다. 아빠였다.
“왜 칠칠치 못하게 다치고 그러냐~ 장갑 보낼 테니까 잘 끼고 다녀라”
자식이 부모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부모 마음이 너무 넓다고 했던가?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아빠.
그날 밤, 잠들려고 침대에 누우니 또 그 녀석들의 목소리가 내방 벽을 타고 울린다.
오늘도 꽤나 흥이난 모양이다. 서로 소리를 지르고 구호 비슷한 것도 외치는 게 들린다.
어제 분명 가만두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을 한 터라 오늘은 도저히 그냥 모르는 척 넘길 수 없을 것 같다.
한숨을 한 번 크게 쉰 뒤 침대에 누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숙소에 들어와서 월세 잔금을 치른 이후 한 번도 연락한 적 없었던 집주인에게 카톡 메시지를 남겼다.
밤늦게 죄송하지만 옆집 망나니들의 난리법석을 이틀 내내 참고 참은 끝에 메시지를 보내게 된 내 입장을 이해해 주시기를, 부디 제주 살이의 부푼 꿈을 갖고 찾아온 이 누님을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대신 전해 주시기를. 더불어 에티켓이라곤 밥 말아먹어버린 이들을 나 대신 눈물 콧물 쏙 빠지도록 혼쭐 내주기를, 간절한 마음 꾹꾹 눌러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집주인은 대신 사과하면서 의심되는 방에 연락을 했다고 답이 왔다. 놀랍게도 그 답을 받자마자 옆 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낯선 곳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