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이 3. 비로소 얻게 된 반쪽짜리 자유

4일째 날

by 하만다

제주도에 온 지 4일째. 카페에 앉아 쉼 없이 쏟아지는 sns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 있자니 여기가 제주도인지 서울인지 도통 모르겠다.


일상이 바쁘고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인스타그램같은 sns을 잘하지 않았었다. 주말이나 휴가 중일 때, 멋진 곳을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가끔 그 모습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올리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아무래도 인스타그램은 나에 대해 자랑을 하는 곳인 만큼 일상에 자랑할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하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기록을 위한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내가 보이고 싶은 모습을 편집해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는 점에서 일종의 자랑, 뽐내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그런데 제주 한 달 살이를 하게 되면서 그 일상을 sns에 남기기 시작하자 이를 본 친구와 지인들의 메시지가 물밀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무 좋아 보여~ 어디야?"

"나도 너 있을 때 가봐야겠다."

"제주도 한 달 살기라니, 너무 부러워~"


칭찬도 세 번 이상하면 욕이라고 했던가. 악의 없는 말들에 나는 지치기 시작했다. 큰 의미 없는 감탄사와 질문에 답해주고 방문하고 싶다는 요청에는 정중하게 거절할 방법을 궁리해내느라 이 아름다운 풍경을 눈앞에 두고 휴대폰 화면만 뚫어지게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답장을 쓰고 있던 대화를 중단하고 결심한 듯 인스타그램 앱을 종료했다.'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에 잠깐 동안 방금 그 대화만이라도 마무리할까 싶었지만, 그 마지막이 다른 하나만이 되고 또 둘이 되어 결국엔 오늘 내로 대화를 마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끝내지 못한 대화를 두고 나오니 이제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빨갛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단체 카톡방 그리고 개인 카톡방 모두. 역시 화두는 나의 제주도행이다.


언뜻 듣기에는 이상한 말일 수 있지만, 나는 제주도에 와서야 내가 왜 제주도에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제주도에 와서야 비로소 얻게 된 '그것'인데, 바로 자유이다. 정말 필요한 것만 갖춰져 있는 숙소에서 나는 자유를 느낀다. 밥을 챙겨 먹는다거나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거나 마른 수건이 다 떨어지면 빨래를 한다거나 내 일상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만 할 수 있는 자유를 느끼고 있다. 집에서는 나를 둘러싼 많은 물건들이 꼭 필요하진 않더라도 무언가 할 것을 계속해서 주문했다. 쌓아둔 책들은 읽고 싶은 게 아니라 읽어야만 하는 게 되어 버렸고, 냉장고에 켜켜이 쌓여 있는 반찬과 음식들은 빨리 먹어 치워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물건들이 꽉 차 넘쳐버려 삐쭉 삐져나온 서랍장은 언제 한 번 정리해야 하는데 그 언제가 결정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게 했다. 물건들로부터 지배되었던 내 자유 의지는 텅 빈 숙소로 맞이한 제주에 와서야 해방되었다.


제주에서의 자유는 숙소에서만 얻은 게 아니다. 관계로부터의 자유도 함께였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가족들, 지인들과 살짝 느슨해진 끈은 내게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들과의 약속, 결혼 앞둔 지인들의 청첩장 모임, 본가에 계시는 부모님을 방문하는 일들까지 제주도에 와 있는 한 달간 나에게는 적용 유예가 되었다. 그런데 이 물리적 거리의 제약 때문에 얻게 된 자유와 해방을 만끽하기도 전에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서로를 이어주는 고맙고도 편리한 sns가 다시 한번 나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진다. "이 관계는 유지해야지?"


어디까지 도망가야 이 관계들로부터 나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쯤 되니 관계로부터의 피로감은 사실은 내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덜 배려해서, 눈치가 없어서, 나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내가 힘든 것이라고 여겨 왔는데, 사실은 반대였던 것이다. 나의 편의나 안위보다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에 더 힘을 쏟고 있었던 내가 그 관계들을 힘들게 만들고 스스로 피로하게 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카카오톡 메시지 답장을 최대한 미루고 있다. 카카오톡을 지울 용기나 당분간은 연락하지 말아 달라는 매정함은 아직 내게 없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내 자유를 찾고 싶다. 아직은 반쪽짜리 자유지만 말이다.


적절한 관계 유지, 관계로부터의 편안함은 그들이 아니라 나에게 달렸다.


오늘의 카페, 카페 라라라
카페 라라라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주황 지붕과 돌담이 예쁜, 제주도에서는 흔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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