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5일
나쁜 소문은 끝이 뾰족한 칼이다. 사람들이 다치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여러 차례 소문에 의해서 상처 받았고 어떤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은 말의 힘을 반만 평가한 말이다. 말은 멀리 갈 뿐만 아니라 깊이 박힌다. 무심코 농담처럼 지어낸 소문이 있다고 치자. 웃자고 하는 소리에 악의가 있으리라 판단하는 것은 억지다. 누구나 농담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우스갯소리는 여러 사람의 입을 거쳐서 살이 붙는다. 자극적인 해석과 사족이 더해져 원래의 말은 온데간데없이 파괴력을 가진 괴생물체만 남는다. 이윽고 소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등 뒤로 날아가 깊게 박힌다. 사람들은 말하기 좋아하고 소문 듣기 좋아한다. 특히 나에 관한 것이 아닐 때 더 그렇다. 말의 내용을 적당히 각색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소문은 그래서 더 무섭다. 악의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소문을 좋아하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소문을 믿지 않는다. 어떤 말이 사실이라면 소문의 형태로 쉬쉬 돌지 않는다. 사실은 사실로 전달된다. 물론 어떤 소문은 나중에 사실로 판명되기도 한다. 소문을 무시했다가 당황하기도 한다. 어떤 소문은 선견지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철저히 검증되지 않은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게으른 태도다. 무고한 사람을 매도할 수 있으며 상황을 호도하게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악의적 소문은 애초에 악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부패한 권력과 공모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기사를 쓰는 일부 기자 집단을 우리는 기레기라고 한다. 쓰레기 같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서다. 좋은 기사를 선별해 내는 안목만큼 악의적 소문을 골라내는 내공도 중요하다. 그래야 세상이 바로 보인다. 말은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 신중할수록 좋다.
그래도 나는 동네방네 네가 예쁘다는 소문을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