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로 찾은 균형

2021년 9월 21일

by Charlie Sung

깊이 관찰할수록 세상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활짝 핀 꽃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꽃의 화려함이나 향기로움 정도만 알 수 있다. 꽃이 피기까지 몸부림치는 생의 의지에 대해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반면에 나비가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에 옮겨 꽃의 번식을 돕는 과정에서부터 꽃망울을 마침내 터뜨리는 전체의 과정을 유심히 관찰한다면 우리는 자연의 경이로운 질서와 조화를 알게 된다. 감탄하고 경외하게 된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일생을 탄생, 성장 그리고 죽음이라는 몇 가지 사건과 현상으로 압축해서 구조화한다면 그 저변에 흐르는 삶의 이야기를 읽을 수가 없다. 언뜻 초라해 보이는 개별의 삶도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하등의 교훈도 배울 수 없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매일의 사건들도 자세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저마다 사연이 제각각이다. 관찰하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더 자세히 알게 하는 일이다.


외부의 일을 관찰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를 알게 한다면 내면의 일을 관찰하는 것은 내 마음의 길을 면밀히 알게 한다. 세상의 이치는 알되 스스로 바라는 바,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이는 세상의 반만 아는 사람이다. 자연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책으로부터 세상의 운행 원리를 배우면서 또한 내면이 하는 말을 꾸준히 들어야 우리 삶에 균형이 생긴다. 나는 세상 일에 간섭하기를 지나치게 좋아한 나머지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에 소홀했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왕왕 우쭐할 정도로 잘 알게 되었지만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글 쓰는 일도 늦게 시작했다. 나는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갔고 학점과 스펙에 맞춰 회사에 갔다. 많이 늦었지만 네가 세상에 오기 전에 내 마음의 길을 알게 된 것은 다행이다. 이제야 양쪽 추의 무게가 비슷해진 느낌이다.

keyword
이전 20화반복된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