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수필

2021년 9월 4일

by Charlie Sung

냉장고의 발명이 인류 역사에 기여한 바는 크다. 쉽게 상하는 음식을 더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인류는 사회, 문화, 경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진보하기 시작하니까 냉장고의 발명은 인류 진화의 마중물이라고 해도 될 만큼 그 의미가 크다. 새삼 냉장고를 발명한 사람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니?


너는 냉장고에 뭐가 들어있을 때 제일 좋아? 나는 그것이 시절 별로 조금씩 달랐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있을 때 제일 좋았다. 어릴 적 내 별명은 ‘깜시’였다. 종일 밖에서 학교 친구들, 동네 아이들과 공을 차고 놀았기 때문에 항상 까무잡잡했다. 찬물로 샤워하고 나서 먹는 아이스크림의 맛은 굳이 여기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마치 뇌의 어딘가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짜릿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는 냉장고에 맥주가 가득 차면 든든했다. 공부를 하면서 혹은 휴학 중에 나는 몇 차례 해외에서 살았다. 집과 가족, 친구들이 그리울 때 맥주가 위로가 많이 됐었다. 지금 회사에 들어와서 케냐와 베트남에서 1년씩 근무했는데 그 시절에는 냉장고에 네 할머니 김치가 들어있을 때 제일 좋았다. 얼마나 아껴먹었는지 모른다. 난 네 할머니 김치가 물이나 공기만큼이나 소중했다.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너온 ‘엄마표 김치’에서는 내 엄마 냄새가 났다. 그리고 지금은 네 엄마가 해 준 반찬이 특히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넉넉할 때가 제일 좋다.


나와 네 엄마가 결혼 준비할 때 냉장고 때문에 싸웠던 거 알아?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날 정도로 정말 사소한 문제였다. 나와 네 엄마는 그때까지 제대로 다툰 적이 없어서 싸우는 데에 서툴렀던 거야. 반드시 잘잘못을 따져야 할 문제와 그렇지 않아도 될 문제를 제대로 가리지 못했었거든. 너도 살면서 비슷한 문제와 맞닥뜨릴 텐데 우리 같이 고민해 볼까? 나도 아직 아리송하지만 엄마와 셋이 고민하면 분명히 좋은 수가 떠오를 거야. 기대된다 네 삶의 이야기들이. 고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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