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커피

2021년 9월 5일

by Charlie Sung

프랑스 파리에는 르 프로코프라는 카페가 있다. 아르튀르 랭보, 빅토르 위고, 헤밍웨이로 대표되는 문인들과 볼테르, 루소 같은 사상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였다. 혁명 시기에는 혁명가들의 아지트로 사용된 적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학림다방’이 있다. 그곳에서 60년대 젊은이들이 시대를 고민하고 예술을 이야기했다. 지금이야 카페가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거나 한담을 나누는 공간으로 변했지만 나보다 먼저 청년시절을 보낸 선배 세대에게 카페는 학문과 예술, 혁명을 논하는 격렬한 토론장이었다. 시절에 따라 목적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보면 카페가 마치 진화와 퇴화를 반복하는 유기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네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 나랑 같이 르 프로코프에 가자. 학림다방에 가자.


영국에서 공부할 때 런던 포르토벨로 마켓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방과 후 남는 시간에 생활비를 벌었다. 그때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괴롭히던 흑인 여자가 있었다. 매일 저녁 퇴근길에 들러 핫 초콜릿을 시키던 사람이었는데 너무 차다거다 너무 뜨겁다거나 하는 이유로 같은 음료를 여러 번 만들게 했다. 급기야 해가 아주 늦게까지 떠있던 어느 여름날 매니저를 불러 달라더니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인 스타벅스가 내 말귀도 제대로 못 알아듣는 동양인을 채용할 수가 있나요?’라고 따져 물었다. 음료를 만드는 데에 서툴던 시절이라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녀의 인종차별에 마음 깊이 분노했었다. 피부색만으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헤르만 헤세의 말처럼 ‘인간은 제각기 누구나 자연의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존재만으로도 존중받아야 한다.


네 엄마가 너를 가진 이후로 좋아하던 커피를 줄였다. 하루 한 잔의 커피는 태아에 문제가 될만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다. 근데 네 엄마는 행여나 연구되지 않은 부작용을 염려해 좋아하던 커피를 줄였다. 이 편지를 읽는 날 엄마에게 말하렴. ‘엄마, 커피 한 잔 사줄게. 나가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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