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라이너 쿤체, '젊은 시인을 위한 묘비명'
생: 1924년 8월 15일 체르노비츠
몰: 1942년 12월 16일 노동수용소 미하일로브카
죽음에게 맡겨졌던 소임,
그녀를 삶에서 데리고 나오는 것,
하지만
그녀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시(詩)에서는
-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
[단상]
시인을 위한 묘비명이 시(詩)가 되었다.
시인의 생몰년과 출생지, 사망지가 사실 그대로 무미건조하게 시의 첫 연을 이뤘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짧은 두 행이 우리에게 드러내는 그녀의 서사는 너무나 비극적이다.
우선 그녀가 태어난 체르노비츠는 지금의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이며, 동구 유대인들이 살아온 유서 깊은 곳이다. 그녀가 사망한 곳은 노동수용소이고 사망 연도는 1942년이다. 1942년과 유대인, 노동수용소를 종합하면, 그녀의 죽음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굶주림과 혹독한 노동을 견디다 이십 대에 생을 마감한 시인.
라이너 쿤체는 말한다. 죽음은 그녀를 삶에서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는지 몰라도 그녀의 시(詩)는 세상에 남았다고. 그리고 그녀의 묘비명 또한 시(詩)로 남았다.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