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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Nov 28. 2019

엄마의 밥상 vs 내가 차리는 밥상

비로소 내 손으로 밥을 차려봐야 알게 되는 엄마의 소중함

01. 엄마의 밥상


엄마는 항상 그랬다. 일하고 집에 오자마자 옷도 벗지 않은 채 부엌으로 달려갔다. 나는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엄마~ 밥~"이라며 울부짖었다. 그러면 엄마는 늘 똑같이 대답했다. 


엄마가 밥으로 보이냐? 


부랴부랴 밥을 앉히고, 채소를 다듬고, 국을 끓이고. 어느 정도의 마무리가 되면 엄마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볼일까지 참아가며 배고픈 자녀와 아빠를 위해 밥부터 차렸던 것이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상해보였다. 내가 엄마한테 뭐라고 울부짖었는지도 잊은 채.. 


엄마는 항상 그랬다. 맛있는 반찬은 하나도 안 드시고, 가족들의 손이 덜 가는 반찬 위주로 드셨다. 배불러서 안 먹는다고 하고선 남은 반찬은 꼭 다 드시려고 애쓰셨다. 그러면 난 또 그런 엄마의 모습이 미련해 보여서 꾸짖었다. "엄마 남으면 버려~ 억지로 먹어서 좋을게 뭐가 있다고"


처음으로 만들어본 카레와 엄마가 준 각종 김치들로 차린 소중한 저녁식사


02. 내가 차리는 밥상


결혼 전까지 나는 밥 한 번 지어본 적 없는 철부지 딸이었다. 결혼 후, 밥솥을 쓸 줄 몰라서 사용설명서를 한참 동안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름 신랑에게 맛있는 밥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매일같이 저녁밥을 짓고 있다. (아마 이런 마음가짐까지도 엄마의 영향이겠지?)


내가 식사를 준비할 때, 그리고 신랑과 같이 밥을 먹을 때 나에게서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다. 엄마와 똑같이 집에 오자마자 분주하게 쌀부터 앉히고, 맛있는 반찬은 양보하고, 빨리 먹어없애야 하는 반찬이나 많이 남을 것 같은 반찬 위주로 먹고 있었다. 엄마는 몇 십년을 그렇게 해오셨는데, 왜 나는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걸까.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으면 그때서야 부모님의 감사함을 알게 된다는 게 이런건가 싶다. 밥상을 차리다가, TV를 보다가, 집을 치우다가 시도 때도 없이 발견하는 부모님의 흔적 때문에 몇번이나 왈칵 눈물을 쏟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편하게 살아올 수 있기까지 부모님의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민과 배려가 있었는지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치곤 매일 차려먹는 반찬이 다양한데, 그 중 8할은 엄마가 준 반찬이다


100% 엄마가 준 반찬으로만 차린 밥상. 내가 한 일은 에어프라이어로 조기를 '맛있게' 구운 것 뿐


엄마가 싸주신 고추조림을 먹으면서, 이제 그 하나의 반찬을 위해 들어간 각종 재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고추를 다듬고, 양파를 썰고, 당근을 얇게 썰기 위해 엄마의 손목은 얼마나 시큰거리셨을까. 신랑에게 겉절이를 해주겠다며 각종 야채를 다듬다가, 당근을 얇게 써는게 힘들어서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물론 짜증은 속으로만 삼켰다!)


모든 집안일은 노동이나 다름 없다. 댓가 없는 노동. 가족을 위한 마음이 있기에 그렇게 정성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일 뿐. 나는 아직도 엄마에게 반찬이 떨어졌다고 연락하며 새 음식을 요청하는 철부지 딸이지만 이제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반찬에 들어 있는 작은 당근 한 줄기까지도 남기지 못하고 싹싹 긁어먹는다. 그게 나의 작은 사랑 표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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