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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Feb 05. 2020

어떻게 시댁을 사랑할 수 있을까

명절을 지혜롭게 보내는 법

설 명절이 일주일 지났다. 결혼 후 네 차례 치른 명절인데 여전히 나는 예민했고, 힘들었으며, 불평등함을 많이 느꼈다. 그나마 첫해에 비해 다툼은 적어졌고, 몸도 덜 피곤했지만 사실 상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것은 없다. 내가 명절에 익숙해졌을 뿐이다. 결혼 후에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니라는 선배들의 말을 무심코 지나쳤는데 제일 체감이 되는 말이며 가장 힘든 포인트이다.  


우스갯소리로 명절에 출근하는 걸 오히려 환영한다는 사람도, 명절이 가까워질 즈음 팔이 다쳤다며 가짜 깁스를 차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결혼과 거리가 먼 스물다섯 쯤이었는데, 세상에 그런 못된 사람이 어디 있냐며 혀를 끌끌 찼다. 나도 며느리가 되어 보니 그 우스갯소리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깁스와 같은 거짓말은 못된 행동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시댁에 먼저 가는 것이 왜 당연한 걸까 (출처:며느라기)


결혼 첫 해에는 이런 불평등함이 어디 있냐며 씩씩거렸다. 그때 나는 정의와 평등으로 똘똘 뭉친 당찬 여성이었고, 시댁 식구들은 모두 여성을 차별하는 악당처럼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라면 당연시해야 하는 것들 '명절에는 무조건 시댁에 먼저 찾아뵙는 것', '설거지를 담당해야 하는 것', '남자들은 거실에서 반주를 즐기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일하며 수시로 안주를 갖다 드려야 하는 것', '시댁 식구들의 남편만 감싸는 쓴소리를 견뎌내야 하는 것'. 너무나도 당연하게 몇십 년간 지속되어 온 우리나라의 문화(?)였지만, 그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 걸 참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쏟아붓곤 했다.


"조선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오래된 관습이고, 우리 엄마와 작은 어머니들도 힘들게 하고 있으니까 너도  이해해줘"라는 남편의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없었다. '잘못됐다'라는 것을 알면 바꾸어 나가야지,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이라고 나도 뒤따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악습 아닌가? 라는 내용으로 우리는 다투었고 해결되지 않은 채로 대화는 끝이 났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왜 해결되지 않는 걸까, 나는 언제쯤 평등함을 누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만 갇혀 있었는데, 2년 차에 접어들자 생각이 조금 바뀌기 시작했다. 시댁 식구가 악당이 아니라 사실은 그 이전부터 내가 나쁜 딸이었고, 나쁜 아가씨였고, 나쁜 친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도 누군가에겐 얄미운 시댁 식구였던 것이다.


남녀 겸상은 안 돼! (출처:며느라기)


나는 일찍 새언니가 생겼다. 큰 아버지의 아들, 즉 사촌오빠들은 나와 10~15살 이상 차이가 나서 내가 10대 때 이미 결혼을 했다. 새언니들과도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내 눈엔 그저 어른 같았다. 어른이니까 새언니들이 낯선 시골집에 와서 부엌일을 도맡아 하는 게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식사는 항상 남자들 것을 먼저 차려드리고 어머니들과 새언니는 제일 마지막에 작은 상에서 따로 먹는 것도 그 때는 못 알아차렸다. (내가 이번에 겪고 보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10대 때는 어리니까 방에서 누워있고 티비만 보는 게 그럴 수 있는 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체력도 좋고 웬만큼 말귀도 알아듣는 20대에도 언니들을 도와 요리를 돕고 설거지를 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나에게 있어 명절은 어려서부터 쭉 그저 놀고먹는 연휴였을 뿐, 가끔씩 엄마가 도와달라는 심부름 외에 내가 무언가 나서서 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게 너무 당연했던 것이다.


내가 며느리가 되고 나니 언니들의 지나간 노고가 이제야 눈에 보인다. 그 와중에 나와 친해지고 싶다고 열심히 말 걸어주던 둘째 새언니는 얼마나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았을까. 무뚝뚝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이 없던 셋째 새언니를 보며 '나보다 더 말이 없으시네'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지금 내 모습이 꼭 그렇다. 말주변이 없고 붙임성 없는 며느리들에게 시댁 식구들과 말 섞기는 그 어떤 상대보다 어렵다.


다른 성(姓)을 가진 사람들만 부엌에 있는 현실 (출처:며느라기)


모든 것을 우리 집에 대입해서 보면 결론이 쉬워졌다. 나는 지금 우리 집에서 모든 제사를 없애고 "여자들에게만 일 시키지 말고 아버지들도 같이 하세요!"라고 사이다 발언을 할 수 있는가? 어렵다.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제는 우리 집에서 힘들어하는 여자(엄마와 새언니들)를 돕는 것이고, 조금씩 바꾸어 나가자고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다. 정작 우리 집에서는 나 몰라라 하고 시댁에서만 이 못된 악습을 바꿔달라고 때 쓰는 게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 아닐까?




내가 행동하기 어렵듯이 남편도 똑같이 어려울 것이다. 어른들 입장에서는 본인 와이프 감싸기 위해서 제사와 차례를 없애자고 하는 꼴로만 보이기 때문에  또한 조심스러울 것이다. 남편이 조금이라도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당장 바꿀  없다는 것을 모든 여자들은 알고 있다. 다만 남편이  노고를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나도 힘들어! 너라면 당장 바꿀  있을  같아? 그냥 참고 하면  ?" 같은 말로 다툴  아니라 그저 와이프 말에 동조해주고 수고했다고 토닥이는 것만으로도 모든 설움이  녹듯이 사라지기도 한다. 다음 명절에는 조금  화목한 가정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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