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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Dec 19. 2019

아빠는 왜 맛없는 것만 사 올까

나는 유독 음식에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다. 내가 먹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음식이란 게 원래 마음을 주고받는 데 적합한 매개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특정 음식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로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그런 것들은 대부분 가족과 관련되어 있다. 


여느 아빠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우리 아빠는 꼭 술만 마시면 집에 간식거리를 사 오셨다. 집안의 먹거리는 모두 엄마의 책임이기에 아빠의 손으로 무언가를 사 올 때면 왠지 설렜다. 그런데 아빠가 뭘 알았겠는가. 엄마와 자식들이 뭘 좋아하는지는 모르고 아빠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접근성이 좋은) 것을 사 왔다.



아빠가 과자를 사 올 때면 주로 국희, 새우깡, 가나초콜릿 사 왔다. 물론 할머니가 좋아하는 간식 위주였긴 하지만 너무 올드하고, 매번 같은 것만 사 오니까 나는 슬슬 질려서 안 먹었다. 빵집에 가서 빵을 잔뜩 사 올 때도 마찬가지로 소보루빵, 단팥빵, 맘모스빵 그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요즘에 얼마나 맛있는 빵이 많아졌는데 아빠는 왜 맨날 옛날꺼만 사 올까 어린 마음에 투정을 부리곤 했다. 


어느 날은 아빠가 또 빵집에 간다길래 내가 먹고 싶은 빵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빠 꼭 크림치즈빵으로 사와!" 나의 말을 듣고서 아빠는 나름 새로운 빵을 사 왔지만 앙금빵과 고로케 수준이었다. 큰 변화는 없었다. 물론 뭐든 맛있는 빵이지만 한창 맛있는 걸 찾던 이십대인 나에게는 그 돈으로 더 맛있는 빵을 사 왔으면 하는 마음에 아쉽게만 느껴졌다. 



결혼 후, 어느 날 동네 마트에서 아이스크림을 구경하다가 한참을 머뭇거리는 아저씨를 보았다. 온갖 신상이 가득한 아이스크림 코너에서 어떤 걸 새로 먹어볼까 신나던 찰나에 나보다 먼저 오셔서 계속 고민만 하시는 아저씨에게 눈길이 갔다. 중간에 어딘가에 전화를 걸다가 끊기도 했다. 그렇게 고심 끝에 그 아저씨가 고르건 '투게더 아이스크림'이었다. 그 모습에서 우리 아빠가 보였다. 


투게더도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슬퍼졌다. 그 수많은 아이스크림 중에서 아저씨에게 익숙하고 제일 맛있는 것은 투게더였으리라.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신상들 사이에서 어르신들이 고르기도 힘들뿐더러 그분들의 어린 시절에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떠올라서 투게더를 골랐을 것만 같아 괜스레 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 아빠가 고른 간식들도 그러했을 것 같다. 내가 이걸 20대 때 알았더라면 아빠가 사 오는 새우깡에 뭐라고 하지 않았을 텐데..





요즘 날이 추워져서 붕어빵 가게가 자주 보인다. 나는 또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는 겨울이면 자주 붕어빵을 사 왔다. 가끔은 스무마리씩 사 와서 우리 가족을 당황시키기도 하였다. 어제는 아빠를 생각하며 붕어빵 2천원어치를 사 왔다. 여전히 맛있었지만 아빠가 사 갖고 집에 오느라 눅눅해진 그 붕어빵이 그리워졌다. 


최근에는 아빠가 술을 마시고 집에 오는 길에 와플을 사 온다고 한다. 엄마는 제발 좀 그만 사 오라고 하는데도 꾸준히 사 오고 있다. 심지어 아빠는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화내지 말라고 미리 얘기 좀 해달라고까지 하신다. 엄마는 화를 내면서도 맛있게 드시긴 한다. 아빠는 그 모습이 보고 싶으신 거겠지. 그리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 먹을 것을 사 온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아시는 거겠지. 





물론 지금이라도 부모님과 붕어빵을 같이 먹을 순 있다. 하지만 출가한 딸내미가 친정에 올 때 사 오는 게 붕어빵이라면 너무 초라할 것 같아서 아직 사간 적은 없다. 부모님과 소박한 것에 함께 즐거워하고 행복했던 결혼 전 시절이 가끔은 그립다. 그때의 감사함을 뒤늦게나마 깨달아서 다행이라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지금은 그 소박한 즐거움을 남편과 함께 나누고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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