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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Dec 03. 2019

칼퇴를 해야 하는 이유

초보요리사의 아등바등 식사일기


나의 저녁시간은 매일매일 기다림의 연속이다. 나는 남편보다 2시간 일찍 집에 도착한다. 그 시간 동안 저녁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시간이 많이 남을 땐 펭수 영상을 보며 잠깐 쉬기도 한다. 내가 야근을 하여 집에 조금 늦게 오는 날이면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저녁 준비를 한다. 남편이 도착하면 그때서야 처음으로 식탁에 앉음으로써 휴식이 시작되곤 한다. 



소박하지만 건강하고 알찬 우리의 저녁식사



우리는 맞벌이 부부이지만 평일에 외식을 하거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이 매우 드물다. 우선 둘 다 건강한 집밥을 좋아하고, 양껏 먹는 걸 선호하며, 양가 부모님이 주신 반찬도 소진해야 하고, 돈을 절약할 수도 있는 여러 장점이 있기에 부엌을 담당하는 사람이 조금만 부지런하면 맞벌이 부부도 충분히 평일 저녁을 집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좋은 습관은 결혼과 동시에 바로 자리를 잡았다. 매일 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 하루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식사를 하는 것은 우리 부부의 가장 큰 힐링타임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 '남편과 함께하는 저녁식사'의 의미는 점점 커져갔고, 칼퇴를 해야 하는 이유도 명확해졌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이 그려졌다.


결혼 전,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프다고 엄마에게 징징거렸다. 엄마는 아빠가 곧 오실테니 기다렸다 같이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기어코 혼자 밥을 차려 먹었다. 엄마가 준비 중이던 저녁 반찬이 다 완성되지 않았어도 "그냥 있는 거 대충 먹으면 돼"라고 하고 혼자 먹어치우곤 했다. 


반면에 엄마는 항상 아빠를 기다렸다. 아빠가 도착하기 직전에 반찬이 완성되도록 시간을 맞추어서 요리를 하셨다. 아빠가 간단히 씻고 식탁에 앉을 시간을 고려하여 밥과 국을 식탁에 내놓았다. 그 시간이 몇 시이든 간에, 엄마도 아빠와 함께 저녁을 드셨다. 나는 아빠 때문에 매일 늦게 저녁을 먹는 엄마가 이상해 보였다. 배가 고파 간식을 챙겨 먹으면서까지 저녁은 꾹 참고 아빠가 집에 와야 함께 드셨다.


면 요리는 쉽고 배부르고 맛있고 싸서 좋다! 1석4조!



그런데 결혼하고 난 후, 나에게서 엄마의 모습이 비친다. 나는 엄마를 꼭 닮았다. 남편이 아무리 늦어도 그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식사를 하고, 남편이 식탁에 앉을 시간을 고려하여 음식이 식지 않도록 그때서야 밥과 국을 뜨고.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고 하물며 남편도 내게 먼저 먹으라고 얘기하지만 나는 남편을 꼭 기다린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나에게 큰 행복이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와 나는 다른 점이 있다. 아빠가 간혹 반찬 투정을 하실 때면 엄마는 다른 거라도 더 챙겨줄까? 하고 아빠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나는 다르다. 남편이 가끔 "김 없어?"라는 말을 할 때면, "내가 차린 건 어쩌고 김을 찾어!"라며 핀잔을 주곤 했다. 내가 차린 음식을 냅두고 다른 걸 찾는 게 이렇게 기분이 상하는 일일 줄이야. 돌이켜보면 나는 엄마에게 맨날 계란후라이를 달라고 그랬던 것 같다. 엄마의 마음은 분명 속상했을 텐데 왜 한 번도 내게 서운함을 보이지 않으셨을까.


또 어느 날은 남편이 예상보다 집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나는 식탁에 덩그러니 앉아 남편을 외로이 기다렸다. 생각보다 퇴근이 늦어졌고, 교통체증이 평소보다 훨씬 심했던 날이다. 5시에 퇴근한 나는 8시 반까지 남편을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거기다가 버스 환승하는 시간 사이에 옷 가게를 들려 옷을 사 온 남편을 보고서는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버스가 오는 시간 동안 다녀온 거라고 하지만 집에서 마음 졸이며 기다리는 나를 배려해주지 못한 것만 같아서였다. (그가 맛있게 밥을 먹자 나의 마음은 바로 풀렸다) 이렇듯 나는 속상한 마음을 바로바로 표출하는데 비해 엄마는 아빠가 늦게 와도, 내가 늦게 와도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우스개 소리로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엄마가 밥 먹으래서 방에서 나왔는데 텅 빈 식탁에 낚였다는 이야기. 결혼 전엔 "맞아 맞아 우리 엄마도 꼭 그래~" 하면서 웃고 넘어갔는데 이제는 그 이야기가 다르게 느껴진다. 갓 완성된 맛있는 요리를 바로 나누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랄까. (물론 다른 이유도 있긴 할 것이다^^) 토스터기에서 갓 구운 빵을 꺼낼 때면 나의 심정이 꼭 그러하다. 


여보 빨리 와~ 지금 바로 먹어야 맛있어 빨리 와!

요리가 가장 맛있을 타이밍에 먹게 하고 싶어서 다급한 듯 이렇게 부른다. 남편은 나의 이런 마음을 알까? 매일 같이 먹는 저녁이지만, 매일매일 행복하고 싶어서 나는 오늘도 기다린다. 조금은 더 차분하게 속상해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겠다.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점점 엄마를 닮아가는 나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엄마에 대한 고마움이 배로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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