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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Dec 05. 2019

돈 아끼려고 집에서 놉니다

알뜰살뜰한 초보주부의 재정관리

알뜰한 걸까 좀스러운 걸까 
현명한 걸까 구질구질한 걸까



결혼 후 달라진 소비생활과 데이트 패턴으로 인해 나 자신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우린 아직 아이가 없는, 신혼부부의 삶을 1년 반 째 유지하고 있다. 주변에 이미 엄마 아빠가 된 인생 선배들은 "지금을 충분히 즐겨야 한다, 실컷 여행 다니고 부지런히 놀러 다녀"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는 주말마다 열심히 놀러 다니고, 여행도 꽤 자주 가려고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부딪히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돈'이다. 커피 한 잔에 5천원, 둘이서는 만원. 그저 그런 평범한 식사 1인분에 만원, 둘이서는 2만원. 큰돈은 아니지만 집안의 재정을 맡고 나니 자잘하게 나가는 돈들이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나게 소비하던 연애시절. 무려 10만원짜리 스테이크 코스요리였다ㅎㄷㄷ


연애 때 데이트에 쓰이는 돈은 전혀 걱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남편과 만나기 위해서 데이트는 필수였으며, 장소를 여러 이동해가며 밤늦게까지 같이 있느라 2차, 3차, 때로는 4차까지 이어질 정도로 우리는 많은 곳에서 소비를 하고 다녔다.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맥주도 마시고, 또 자리를 옮겨서 마시고..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 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무언가 소비를 하며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가곤 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한 건 그렇게 하루 종일 밖에서 놀아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의 힘이 참으로 대단했다.


신기하게도 결혼하자마자 달라진 점 두 가지.


첫 번째. 데이트에 쓰이는 돈이 아까워졌다. 

두 번째. 데이트를 오래 하는 것 자체가 체력적으로 힘들다.


더 함께 있고 싶어서 불필요하게 소비했던 것들이 아까워졌다. 생각해보니 연애 때는 너무 습관적으로 카페에 갔었다. 배가 불러서 커피가 전혀 땡기지 않았음에도, 그냥 더 함께 하고 싶어서 카페에 갔었고 결국 절반도 마시지 않고 나온 적이 대부분이었다. 3차, 4차는 기본으로 이어지던 데이트 코스도 이제는 1차, 2차 정도에서 마무리된다. 2차까지만 해도 이미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그리고 집에 가서도 둘이 붙어 있을 수 있으니 무리해서 밖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커피 맛은 집에서 즐기는 홈카페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며 가끔은 쇼핑하러 갈 때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가는 일도 있었다. 


좌) 라떼 6천원+아메리카노 5천원,  우) 집에서 더치커피 원액(1500원) 한 봉지를 나눠서 마심


그렇다고 해서 아예 데이트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한 끼 식사를 때우기 위해 외식을 하거나 시간을 채우기 위해 아무 카페를 가는 경우가 사라졌을 뿐. 내가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고, 분위기나 인테리어가 특색 있는 카페에만 가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스팟 위주로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치면 또 금방 집에 가는 거고!


하나 더 달라진 점. 바로 자연을 찾게 된 것이다. 사실 이 나이 때에 자연을 찾아다니는 친구들이 별로 없는데 벌써 아재&줌마 감성이 가득해졌는지 우리는 사람이 바글거리는 도시보다는 한적한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자연을 찾아다니신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물론 가끔은 도시의 화려함을 즐기고 새로 생긴 카페/맛집도 가지만 그곳에서의 만족감보다는 자연에서 느끼는 황홀함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게 되었다. 


올해 부지런히 돌아다닌 결과, 아름다운 자연 사진을 많이 남겼다



누군가에게는 커피값을 아까워하는 우리가 구질구질해 보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겐 반대로 이러한 소비가 풍족하고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타인의 기준이 아닌 우리가 설정한 기준라고 생각한다. 우린 때론 알뜰함을 넘어 쪼잔해지는 모습까지도 서로가 합의한 것이기에 아무 문제 없으며 우리 가정을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불필요한 소비를 줄인 대신 여행을 자주 다닌다. 물론 여행지에서도 알뜰함은 발휘되지만 일 년에 4-5번 여행을 다닐 정도로 우리는 부지런히 새로움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마트에 가서 세일 코너 위주로 둘러본다. 이미 다 만들어진 반조리 식품이 50% 세일하길래 잠깐 고민하다가 내려놓고 애호박과 감자 2개를 집어 든다. 1,690원이 나왔다. 냉동실에 남겨둔 우삼겹과 몇 가지 채소들을 곁들여 된장찌개를 끓였다. 나는 조금 수고스러웠지만 우리는 더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또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내년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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