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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디 Feb 18. 2020

내 손으로 차리는 나의 생일상

이번 내 생일은 평일이었다. 그래서 주말에 미리 생일을 치렀다. 토요일은 예쁘게 차려입고 파인다이닝을 즐겼고, 일요일은 부모님과 맛있는 게장집에 가서 실컷 먹고 왔다. 우리 부부는 결혼 2년 차로 아직 아이가 없기에 마음껏 생일 기분을 만끽하며 주말을 보냈다. 


그래도 생일 당일이 되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또 외식을 하기는 싫었다. 바깥 음식에 질리기도 했고, 세 차례나 거창하게 생일을 즐기는 게 나 스스로도 부담스러워서 싫었다. 그래서 우리는 집에서 간단하게 홈파티를 하기로 하였다. 아직 주부 내공이 달려서 그런지, 혹은 엄마가 아니라서 그런지 직접 나의 생일 미역국을 끓이는 것은 망설여졌다. 물론 남편의 생일이었다면 고민 없이 당일 날짜에 맞춰 미역국을 끓였을 것이다.


혼자서 무엇을 해먹을지 한참을 궁리하다가 간단한 새우 파스타로 결정했다. 요리하다 힘 빠지면 기분도 안 좋아지고 남편에게 투정 부리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메뉴 고민은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 혼자서 머리를 굴리다가 정했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다면 "그냥 나가서 먹자!"라고 했을 테니. 참고로 남편은 요리를 못해서 남편이 차려주는 생일상에 대한 기대는 없다. (다른 살림은 다 잘하니까 괜찮다!) 



내 생일 날짜에 맞추어 새우를 미리 주문해두고, 남편보다 일찍 퇴근해서 각종 야채와 새우를 손질해두고 식사 준비를 하였다. 뭔가 썰렁한 듯하여 새로운 메뉴를 더 만들어볼까 고민하다 이내 또 귀찮아져서 멈추었다. 나는 아직 요리가 능숙하지 않은 초보 셰프이기에 신메뉴를 시도하는 것은 재미도 있지만 여간 스트레스를 받기에 내 생일에 굳이 하고 싶진 않았다. 


재료 손질을 다 끝내고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했다. 널어둔 수건을 접고, 환기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남편에게 예상 도착시간을 묻고 그 시간에 맞추어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했다. 순간 나의 이러한 모든 행동들이 일상과 너무 다를 게 없어서 살짝 우울해질 뻔도 했다. '내 생일인데 집 청소하고, 저녁 준비하고 이게 뭐람?' 이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는 항상 본인 생일에 미역국을 끓이셨다. 오빠와 내가 조금 크고 난 후에는 외식도 시켜드리고, 미역국도 한번 끓여드린 적이 있긴 하지만 자식들이 10대 때는 엄마 혼자서 미역국도 설거지도 모두 했을 걸 생각하니 엄마가 참으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엄마들이 이러할 것이다. 그런 우리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아직 많이 어린 철부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남편의 생일에는 엄마가 남편이 좋아하는 메뉴로만 잔뜩 차려서 한상차림을 선물했다. 나는 미역국 하나 끓이는 것도 힘겨워했는데 엄마는 미역국은 기본이고 각종 전, 양념갈비, 잡채, 오징어볶음, 연어샐러드 등 남편과 나를 위해 부지런히도 준비해주셨다. 아뿔싸.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았었는데 한 달 전 엄마의 생일을 얼렁뚱땅 지나간 게 뒤늦게 후회가 된다.



다행히 내가 만든 새우 파스타는 맛있었다. 남편이 퇴근길에 사 온 케익 하나에 기분이 사르르 풀리고, 케익 위에 레터링 된 내 이름과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자 눈물까지 났다. 아주 잠깐이나마 내 생일상을 내가 차린 것에 투정 부리려던 마음이 미안해졌다. 회사에서는 오늘 저녁에 뭐할 거냐는 동료들의 계속된 질문에 쭈뻣거리며 집에서 먹을 거다 라고 대답한 게 후회됐다. 나는 작은 것에도 이렇게 기뻐하는 사람이었는데 무엇이 부끄러웠던가. 그리고 지난 주말에도 이미 실컷 즐겼는데 너무 당일까지 생일 욕심을 챙기려던 생각에 급 반성하였다. 


내년 내 생일에는 꼭 미역국을 끓여봐야겠다. 

1년 후에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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