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주디 Nov 28. 2019

부추를 다듬다 울어버린 이유

부모님이 주신 농작물에서 발견한 새로운 감정

01. 나의 결혼 전


내가 스물 세살 쯤, 아빠는 대장암 판정을 받으셨다. 곧장 항암 치료를 받기 시작하셨고 1년 간 회사를 휴직하셨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은 건강에 대한 관심이 엄청 높아졌고, 아빠를 위한 식단 관리는 당연히 까다롭게 챙길 수 밖에 없었다. 아빠는 그전까지 테니스 치는 것을 좋아하셔서 동네 테니스 동호회 분들과 주말마다 경기를 치르실 정도로 나름 격한(?) 운동을 좋아하셨다. 아프시고 난 이후로는 가벼운 산책 밖에 할 수 없으니 많이 무료해지셨을 거다. 회사도 휴직하셨으니 말 다했지. 


그 때쯤 부터, 아빠는 집 근처에 작은 텃밭을 얻어서 몇 가지 작물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차츰 차츰 밭을 키우고, 작물 종류를 늘려간지 벌써 일곱 여덟해가 지난 것 같다. 작은 텃밭이 아빠의 삶과 우리 가족에게 가져다준 변화는 참으로 크다. 아빠는 밭일이 참 좋다고 하신다. 회사에서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다가도 밭에만 나가면 무념무상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무념무상으로 누워있는게 좋은데 참 신기하다.) 농작물을 키울 수 없는 겨울이 되면, 다음해 봄에 무엇을 심을지 궁리하는 재미로 살아가신다. 특히나 할머니가 생전에 계실 땐, 매일 매일 똑같은 레퍼토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어머니 이번에 콩 심을까요~ 말까요?

콩 심어야지~


참고로 울할매는 콩을 참 좋아하셨다. 할머니가 좋아하는 걸 알면서 일부러 계속 물어보신 것이다. 그리고 주말이면 농작물을 한가득 수확해 오셔서 우리집 거실은 온갖 채소들로 가득해졌다. 그때부터 엄마의 노동이 시작된다.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분류해내고, 깨끗하게 다듬고, 각종 채소를 활용한 요리를 하는 것이다. 종종 나에게도 도움 요청을 하였지만 나는 하기 싫다며 잠깐 하고 도망가버리기 일수였다.



02. 나의 결혼 후


아빠가 농사 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결혼하고 집을 떠났으니 나에게도 농작물을 나눠주는 게 큰 기쁨이 되었다. 나 역시 아빠의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가지고 왔다. 마트에서 파는 채소에 비해 손질해야할 게 많고, 여리기 때문에 금방 상해버리는 게 단점이지만 훨씬 더 건강하고 신선하다. 


문제는 내가 야근을 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올해 들어 부쩍 야근이 많아져서 저녁을 제대로 챙겨먹을 여유가 없어졌다. 그러면서 점점 냉장고에는 부모님이 주신 식재료와 반찬들이 상해가기 시작했다. 야근을 하고 오면 밥도 밖에서 먹고, 집에서 냉장고 정리를 할 체력이 안 남기에 그냥 방치해 버렸다. 그러다 뒤늦게 상해버린 부추를 발견하고 얼마나 속상하던지.. 조금이라도 살릴 게 없을지 부추를 한참 손질하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야근이고 뭐고, 이 부추가 내 손에 오기까지 우리 엄마 아빠의 노고를 알기에 너무 속상했던 것이다. 아빠가 1년 가까이 계획을 세우고, 모종을 심고, 열심히 길러서 수확하고, 엄마는 내가 먹기 좋게 깔끔하게 다 손질해서 최상의 부추만을 주셨는데.. 나는 그걸 냉장고에서 그냥 썩게 만들었다. 



두 줌이 되는 부추에서 살아남은 몇 안되는 부추들


그 속상한 감정은 점점 짜증으로 변했다. 그냥 내가 사온 식재료였으면 뭉텅이로 다 버렸을 텐데, 이건 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먹을 수 있는 걸 조금이라도 골라내려고 하나하나 멀쩡한 것을 분류하는 일이 여간 쉽지 않다. 홧 김에 화가 나서 다 버릴까 생각이 들다가 또 그런 내 자신이 짜증나고 부모님께 미안해서 2차 울음이 터져버렸다. 


살아 남은 부추를 활용해서 다양한 요리들을 시도해보았다. 가장 자주 해먹는 요리는 훈제오리고기를 사다가 고기가 다 익어갈 쯤에 부추를 같이 넣고 살짝 볶아서 먹는 요리이다. 제일 쉽기도 하고, 많은 부추를 한 번에 소비할 수 있어서 자주 해 먹었다. 또 부추전도 해먹고, 겉절이를 해서 고기류와 같이 곁들여 먹기도 하였다. 이 얼마나 건강하고 알찬 식사인가! 


아빠가 주신 부추로 만든 부추전 / 부추무침(+베이컨볶음)


사실 돈으로 따지면 내가 버린 부추는 고작 천원어치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의 사랑과 정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그렇게 서글프고 속상했나 보다. 나는 왜 결혼 전엔 몰랐을까. 이미 넘치고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었음에도 (풀때기 가득한 식탁을 보고) 계란후라이를 해달라고 징징거렸을까. 지금은 그런 식사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알기 때문에 정말 맛있게 잘 먹는다. 


아빠가 키운 고구마와 감자 / 그 고구마로 만든 맛탕


나는 아빠의 밭일을 전혀 도와주지 않지만 유일하게 돕는 것은 가을 수확철 고구마를 캐는 일이다. 작년부터는 남편과 함께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고, 올해 두번째로 같이 다녀왔다. 여전히 밭일은 할 때마다 너무 낯설고 힘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먹을 몫이라도 직접 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꼭 가려고 한다. 고구마를 우리집에 가져올 때도, 엄마아빠는 가장 깨끗하고 크기가 큰 고구마만 골라서 우리에게 챙겨준다. 아 그리고 시댁에 드릴 것은 더 좋은 것으로. 나머지 상처가 나고 크기가 작고 모난 것들은 부모님 집으로 향한다. 가장 노력하고 고생하셨을 두 분이 제일 퀄리티가 낮은 것들을 드시는 것이다. 


딸에게 더 좋은 것을 챙겨 주고 싶어서, 우리 딸 예쁘게 봐달라고 시댁에 더 좋은 것을 드리려는 그 마음을 알기에 엄마에게 뭐라 나무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이상 부모님이 주신 농작물들을 상하게 만들지 않고 부지런히 먹는 것이다. 주방일에는 여전히 서툴지만 맞벌이 부부임에도 꽤나 많은 식사를 집에서 챙겨 먹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인 것이다. 엄마 아빠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이전 06화 내 손으로 차리는 나의 생일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