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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Jul 20. 2021

생각을 쉬어가는 방법을 배우다.

   이곳의 아침은 항상 일찍 찾아왔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몸에 배어있었고, 잠자리도 불편했기에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눈을 떴다. 그러나 놀란 토끼가 굴 속에서 틀어 박힌 것처럼 나는 여전히 방 안에 있었다. 2016년 가을 인도 바라나시에서 나를 본 적이 있는가? 만약 나를 봤다면 가장 더웠던 점심시간 이후일 것이다. 또, 그 눈은 초점이 잃었고, 스스로 이 거대한 나라를 억지로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쟁이의 몰골이었다면 당신이 본 이가 나였음이 분명하다. 우습게도 그 침울했던 꼴이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름 서서히 적응을 해나가고 있던 것이었다. 불안했던 며칠 전의 델리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서 현지인들의 사이에 섞여 보기도 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옷이나 음식을 먹어보는 것으로 그 효시를 당겼다.


   늦은 점심 이후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비교적 단순하고 느리다. 조급했던 생활의 삶을 떠나 느릿함을 선택했다. 보통은 숙소 로비에 멍하니 앉아서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길 기다렸다가 귓가에 작은 바람 소리가 들려오면 골목 사이사이를 구경하러 나갔다. 그러다 강변으로 빠져나와 갠지스 강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단순한 하루의 전부였다. 그리고 이 단순한 일상이 내가 가질 수 있는 그리고 지금은 다시 잃어버린 가장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

 

바라나시의 좁은 골목

   강으로 걸어 나오는 시간은 언제나 일몰 전이다. 그리고는 가트 한편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만나고 싶었던 갠지스 강과 드디어 조우한다. 이곳 주변은 상당히 시끄럽다. 경전을 읽는 듯한 소리와  짖는 소리, 꽹과리 따위를 쳐대는 소리    소음이 뒤엉켜있다. 조용히 자리에 앉 시끄러운 소음이 귀에서 사라지고 고요함만 남는다.  느낌이 너무 좋다. 마치 혼자만의 공간이 만들어지고 어느 것도 개입되지 않는 시간이다. 그럴 때면 조용히 흘러가는 물결에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 일몰이 나의 시간인가?' 그저 강은 조용히 흐를 뿐이다.


   많은 인도인들이 윤회를 끊기 위해서 죽기 전에 찾아와 죽음을 기다리는 곳, 죽은 후에는 이곳에 뿌려지길 원했기에 아직도 이곳 바라나시 화장터의 불은 꺼지지 않고 타오른다. 수많은 삶이 태워져서 이 강에 뿌리어진 것뿐인데, 그들은 많이 고되었었나 보다. 업을 담은 이 강은 그들의 번뇌만큼이나 오염되어 있다.

   한쪽에서는 시체를 태워서 강에 뿌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빨래와 목욕을 하며 축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그 물을 떠서 입을 축이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며 무엇하나 일치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모습이다. 마치 무심코 던지어져서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강줄기 하나에 여러 가지 추상적인 것들이 뒤엉켜 있을 뿐이다.

목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화정터의 모습

   이곳에 오면 내가 짊어지고 온 모든 무거운 것들을 태워서 강에 뿌리고 싶었다. 혹, 이곳에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인도 행을 결정했던 것이다. 기대는 컸고 그만큼 많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이곳 갠지스에서 나는 어떠한 대답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저 흐르는 강은 이미 많은 사람들의 문제와 업을 담았기에 포화 용액이 되었나 보다. 그래서  더 이상 내 것을 녹여낼 수는 없었다. 또한 나 자신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기억도 들리지 않는 소음처럼 희미해져 있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있다면 보면 고민하는 것조차 무의미해짐을 느낀다. 나의 뇌의 활동은 감각기관에서 전해주는 정보를 다른 사고의 공간으로 저장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갠지스 강이 눈앞에 있다. 나는 강 앞에 멈춘 체 그 자리에 앉아 있지만 강은 내 앞에 와서 멈추지는 않는다. 그저 그렇듯 조용히 흐를 뿐이다. 그리고 강은 나에게 바람을 통해 이야기한다. "너도 이렇듯 그저 그렇게 흘러가라고." 말이다.     


가트 주변의 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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