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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Jul 16. 2021

초인적인 힘이 필요해.

   나는 처음의 느낌 그러니까 첫인상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물이나 사람 환경 등을 처음 접할 때 느껴지는 이미지가 전체를 반영할 수는 없지만 유추 가능한 많은 정보를 준다고 믿는다. 그러기 때문에 처음 사람을 만날 때면 상대의 분위기와 말투 그리고 주로 사용하는 어휘들을 수집해왔다. 그렇게 가늠했던 생각들은 우연하게도 일치했던 적이 많았다. 그럴수록 첫인상에 대한 신뢰가 커져갔고 거기에 따른 선입견도 나를 따랐다.


   이런 첫인상을 생각하는 내가 혼자 떠난 호기 넘치는 여행에서의 첫 숙소는 공항 밴치가 되었다. 저렴한 비행기 표만 고르다 보니 경유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었다. 덕분에 중국 청도공항에서 새벽을 보내야만 했다. 도착한 인도의 수도 뉴델리는 충격 그 자체였다.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입은 일자로 다물어지고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깨는 자주 들썩거렸다. 당연한 더위, 상상도 못 했던 매연과 귀를 찌르는 경적소리가 나를 더욱 괴롭혔다. 점점 걸음은 빨라지며 이 소란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함이 묻어나게 걷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폭탄을 피하듯이 서둘러 도착한 호스텔에서 또 한 번 큰 충격을 받았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었던, 상상하는 것 이상의 더러움을 만난 것이다. 싼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상상하기도 힘든 지저분한 방에 어쩔 수 없이 짐을 푼다.


   '이런 곳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 혹시 빈대(Bed Bug)라도 나와서 괴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저 침대에 몸을 누이면 병에 걸리지 않을까?' 무더운 날씨와 환경 때문에 땀과 걱정이 함께 흘러내린다.


 

방 조차 없는 도미토리룸

   시차와 장시간의 비행으로 쌓인 피곤이 풀리지도 않은 채 도착한 당일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급하게 환전부터 하고 유심카드를 구매했다. 그리고 바라나시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하기 위해 역으로 걸었다. 역사 안으로 들어섰을 때 역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서 외국인 창구가 공사로 인하여 이전했음을 전했다. 임시 외국인 창구로 가는 길까지 정말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리고는 현지에서 오는 어색함과 당황함에 찌들어 있는 이방인인 나를 친절하게 릭샤에 태워서 그곳으로 보내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아차 싶었다. 도착한 곳은 여행 대행사 앞이었다. 뉴델리 기차역에서 성행하는 사기 행각에 당한 것이다.


   출발 전, 이런 사기 사례에 대해서 분명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혹시나 하는 마음과 낯선 환경의 어색함이 내 정신 회로를 잠시 동안 멈추게 한 것이다. 어차피 도착했으니 가격이나 들어보자는 마음에 여행사 안으로 들어갔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한다. 매연 때문에 찌푸려졌던 나의 미간이 더 심하기 일그러진 상태로 거리로 다시 나왔다. 눈앞이 뿌옇고 현기증까지 느껴졌다. 너무 뻔한 어리석음에 자책하는 입의 덜썩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거리로 터덜거리며 나오고 있는 나에게 멀끔하게 생긴 인도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건다. 한번 당한 어리석음의 피로가 쌓여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너 사기당했구나."라며 그들의 사기 행각에 대해서 말해주며 이런 경우가 빈번하다고 조심하라고 충고를 해준다. 대신 욕까지 해준다. 마음이 풀리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누그러졌다.


   이 사람은 믿을 만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억울함을 주절주절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 일상에 대한 이야기로 말을 이어나갔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나는 뉴델리 역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믿을 만한 평범한 인도 청년은 다시 뉴델리 역으로 가길 원하는 나에게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영어를 잘 못하는 릭샤꾼에게 요금 협상까지 해준다. 그리고 그가 나를 태워서 보낸 곳은 또 다른 여행사였다.


빠하르간지의 릭샤꾼 (이야기와는 무관합니다.)

   너무나 황당한 일이 연속으로 벌어졌다. 결국 나의 멍청함의 결과가 다시 동일하게 드러났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부적응, 나의 우둔함과 처음 만난 인도 사람들의 뻔뻔함이 뒤엉킨다. 점점 얼굴이 붉어진다. 더 이상 시끄러운 경적소음이 귀에 들리지 않고 지저분한 거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의 호객꾼들의 외침도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누른 상태처럼 고요하다. 이질적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현실과 분리됨을 느낀다.


   인도는 나에게 큰 부정의 첫인상을 남겼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내 여행에 자신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차라리 인도 여행을 접고 다른 국가로 이동하는 것도 생각해 봤다. 어느 순간부터 시작된 회피의 삶과 늘 부정하지만 현실로부터의 도피하려고 선택한 이번 여행에서 나는 다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버텨온 나의 이십 대의 때와는 다르게 서른이 넘은 나에게 남은 것은 포기밖에 없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내가 악바리처럼 견디며 살아온 20대 때로의 타임슬립이 아니다. 그저 현재를 이길 수 있는 또는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일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나에게는 그저 이상적인 초능력인 것이다.

   나는 몸을 눕힐  없는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고민을 반복하다가 잠에 들었다. 걱정도 피곤을 이길  없었는지 문제의 장소에서 잠이 든다.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상 잠보다는 걱정을, 휴식보다는 염려를 선택했을 텐데 잠을 잔다. 내가 받았던 피로는 상당했었나 보다. 그렇게  시간 정도 정신없이 잠들었다가 눈을 뜬다. 불현듯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다시 생각의 줄을 잡았다. 평소라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을 자지 않고 풀리지 않을 고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듯 본능의 무게는 상당한가 보다. 문뜩 '이게 초인적인 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삶이 바닥을 치거나 구석에 완전히 몰린다면 그때도 본능에 따른 초인적인 힘이 발동할 것이다.


   "사기를 당해서 돈을 잃은 것도 아니고, 상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포기하는 것은 너무 이르지 않은가? 평소에 너무 예민했고 힘들었던 감정들이 이곳으로 다 가져와서 별거 아닐 수 있는 일에 각을 세우고 있구나 평소라면 도저히 잘 수 없는 이곳에서 잠드는 초인적인 힘이라면 이번 여행도 기대해볼 만한 것 아닌가?"

   피곤했으니 당연하게 잠든 것뿐인데 간절한 의미 부여를 한다. 그렇게 아무도 듣지 않는 방에서 혼자 중얼거리다 다시 잠에 든다. 다른 어떤 일이 있을 때 이처럼 본능에서 오는 초인적인 힘의 발동을 상상하면서 그렇게 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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