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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Jul 13. 2021

프롤로그

아직도허우적거리고있다.

   전 세계가 팬데믹 상황으로 인하여 매해 떠나왔던 그래서 너무나 좋아하던 여행을 한 참의 시간 동안 갈 수 없게 되었다. 내 유일했던 전환의 시간들과 해소의 공간들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을 위로하고자 과거에 다녀왔던 여행 사진과 기록을 들춰본다. 지금부터의 기록은 내가 30 초반에 다녀왔던 여행이라는 단어로 잘 포장된 현실의 도피 속에서 느꼈던 여러 생각의 새김질이다.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그러다 5학년 때쯤 갑자기 초등학교라고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를 갔다. 마치 당연한 듯 대학을 진학했다. 정해진 답안지에 짜인 공식처럼 나의 한 해를 채워나갔다. 그러다 군대를 가게 되었고, 진로의 변경으로 수능을 다시 봐서 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 운 좋게 사회 진출이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학기 중에 일을 시작했다. 당연한 듯 너무나 바쁜 20대를 보냈다. 나는 업무에 잘 적응했다. 꿈꿔왔던 직업의 첫걸음이었고, 다들 나를 인정해줬다. 

   정해진 답만 쫓아 달리던 나의 20대 말에는 한계가 많았다. 사실 사회란 곳이 그렇게 만만치는 않았다.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했다. 답들은 분명 존재했으리라. 그러나 머리가 커져서 일까?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제 몸처럼 껴왔던 안경의 도수가 맞지 않았었을까? 답이 보이지 않았고,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사회를 야생에 비유하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목줄도 울타리도 없는 곳이지만 동시에 자유를 선고받은 곳이고 그로 인해 선택의 불안감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이에 그 자유함에서 도망가기 위해 더 깊이 더 열심히 나를 혹사시켰다. 나에 대한 열심히 아니라 일에 대한 열심이었다. 그것이 나의 전부이고, 그것만이 나의 진리인 것처럼 말이다. 내 주변도 비슷했다. 나와 별로 친하지 않았던 선후배 동기들도, 내가 관찰하던 또래들 역시 다른 선택지나 방법은 없는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 나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다른 선택을 하면  삶이란 쉽게 깨져버릴지 모른다고. 

   지금부터의 기록은 나의 열의 세 곱절의 해를 지난 어느 해에 기록이다. 나는 잠깐 현실에서의 도피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가장 큰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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