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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Jul 19. 2021

친절한 만남 그리고 의심

   델리의 두 번째 아침은 타지에서 느끼는 새로움보다는 군대의 기상처럼 억지로 일어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는 바라나시로 출발하는 오후 기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풀어놓지도 않은 짐을 다시 정리한다. 몇 차례를 의미 없는 일을 반복하다가 금방 지친다. 그러다 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 찾아갔다. 한국을 떠나와서 동포가 그리웠던 것은 아니다. 떠나온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또 혼자만의 여유를 충분히 즐길 시간도 필요했던 것도 아니다. 여유 없는 무거운 마음을 잠깐이나마 내려놓을 공간이 필요했다. 타지에서 오는 불안함이 나를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장 익숙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이끌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국인 여행객들의 소곤거림에 마음이 안심이 된다. 자리에 앉아 차가운 커피를 들이켜자 불안한 가슴이 쓸어내려진다. 특별함 없는 이런 공간에서 안도를 찾은 나는 스스로에게 온 상태변화를 느끼기도 전에 노트북을 꺼내어 바라나시에 대해 정보를 찾기 시작한다. 분명 여행을 오기 전부터 철저하게 공부했다. 인도 여행 책자를 끼고 살았었다. 문화 차이에서 오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인도의 신화, 역사, 문화 등을 공부하느라 읽은 책만 5권이나 된다. 늘 이런 식으로 여행을 해오던 내가 한국에서의 준비가 철저하지 못했다고 느꼈나 보다. 지금까지 봐왔던 일반적인 자료 외의 정보들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기차 시간이 다되어간다. 역으로 가야 하는데 아직 찾은 정보는 충분하지 않다. 이럴 때만 시간이 빨리 간다. 남은 커피와 녹은 얼음이 섞인 물을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뉴델리역 플랫폼

   기차역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드디어 거친 소리를 내며 열차가 들어온다. 인도 특유의 파란색 열차가 플랫 폼에 들어와 멈추었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탑승 문 입구로 몰려든다. 마치 피난 열차에 자신의 몸을 구겨 넣듯이 좁은 문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줄을 서는 모습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다. 나는 점점 사람에 치여 뒤로 밀려났다. 도저히 저 틈을 비집고 열차를 탈 용기도 그럴 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불현듯 이러다가 열차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이곳 델리에 다시 발이 묶인다. 챙이 긴 야구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던진다. 비장한 각오다! 마치 시위 진압대의 방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듯이 뚫고 들어간다. 마침내 뒤를 잡아당기던 큰 배낭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열차 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다.  


   탑승한 칸은 현지인들이 많이 타는 침대 칸(SL)이다. 이동경비를 조금 아껴보겠다고 선택한 결정이었다. 열차의 출발과 동시에 황당함도 시작된다. 자신의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3명이 앉는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자리를 동냥하는 것이다. 그 겉모습은 마치 당연한 주장으로 보인다. 조금 옆으로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몇 차례가 지나고 나니 3명이 앉아야 할 자리에는 6명이 앉아있다. 어쩔 수 없이 틀어진 몸은 창 밖을 억지로 감상하게 한다. 흡사 창문에 붙은 개구리와 같다. 


   너무 당황하고 있는 나에게 한 인도 청년이 인사를 조심스럽게 건넨다. 스물두 살에 델리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청년이다. 디왈리 축제기간이라 집에 방문을 한다며 자신을 소개한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말을 이어 나가야 하는데 부족한 영어 실력과 하루 만에 생긴 불신에 대화를 연결시키기 쉽지 않다. 이런 내 심정을 모르는 의심스러운 이 청년은 계속 너스레 말을 걸어온다.

 

인도의 SL침대칸

   어지럽다. 현기증이 난다. 더운 것에 비하여 땀이 너무 많이 흐른다. 인도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따갑다. 코를 괴롭히는 퀴퀴한 냄새는 정신마저 혼미하게 한다. 나의 이상 증상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의심스러운 청년이었다. 나의 안부를 묻고 가장 위의 칸인 자신의 자리로 안내했다. 잠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날 때는 물 두병을 들고 와서 마시라고 권한다.


"난 현지인이라 견딜 수 있지만, 너는 인도의 더위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아. 땀을 많이 흘리는데... 이럴 때는 물을 많이 마시는 게 좋아."


   두 병의 물을 건네는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면서 하나면 충분하다며 물 한 통만 받는다. 그리고 물병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마치 토라진 아이를 얼러주듯이 타지에서 온 이방인을 신경 써주는 그에 대한 의심을 풀지 않는다. 4시간이 넘게 연착이 된 열차가 드디어 바라나시 정선역에 도착을 했다. 짐을 챙겨서 조심스럽게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내린다. 


   의심스러운 청년은 4시간의 연착 동안 혹시 내가 목적지에서 내리지 못할까 봐 계속 정류장을 체크해주었다. 그리고 내가 내리는 순간까지도 배웅차 함께 따라 내렸다. 이제 헤어지는 마당에 의심은 좀 풀고 감사 인사를 해본다. 2분 정도 아주 짧은 정차시간 동안 나와 인사를 나누던 그가 급하게 누군가를 부른다. 역에 있는 사람이다. 역무원인지, 역사 직원인지는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호출에 우리에게 다가온 그에게 의심스러운 청년은 20루피를 쥐어주면서 말한다.


"내 친한 친구입니다. 한국에서 와서 인도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요. 그러니 릭샤 타는 곳까지만 안내해주세요."


   그렇게 나를 부탁하고 작별 인사의 말을 다시 한번 한다. 열차가 천천히 출발하고 있지만 나의 모습이 계단 위로 사라 자기 전까지 의심스러웠던 이 인도 청년은 손을 흔든다. 그리고서는 달리는 열차를 여유 있게 잡아탄다. 계속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살펴보면서 말이다. 그렇게 그는 7시간을 더 달려야 도착하는 본인의 집으로 향했다. 

의심스러운 인도 청년과 나

   큰 배낭을 메고 숙소를 향해 걸어가는 나의 마음은 열차 안에서 만난 청년에게 왠지 미안하다. 나는 그가 주었던 어떤 음식도 받아먹지 않았고, 물마저도 의심스러워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타지를 여행할 때 이런 친절에 대한 의심은 분명 당연한 일이다. 기본적인 여행 안전수칙에도 모르는 이가 주는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경고는 일반적인 것이고 누군가 말을 걸어올 때 경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선의를 보여주는 사람을 의심하고 다가오지 못하게 밀어냈던 점이 너무나 한심스럽다. 그러기에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배낭의 짓누름이 아닌 부끄러움이 너무 무거웠다. 부끄러울 수 있는 것은 내가 받은 선의로 인하여 차가웠던 나의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어서는 아닐까? 

   

   분명 누구에게나 당연한 친절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도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계산적인 호의를 베푸는 인색한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였고, 누군가 다가왔을 때도 나는 가자미 눈을 떴었다. 여행이라는 환경이 나를 평소보다 더 심하게 만들었다. 이미 온몸으로 전이가 된 불신 세포 덕에 쉽게 이 병을 고칠 수는 없겠지만, 낯선 곳에서 만난 친구라는 이름의 약을 조심스럽게 투여해본다. 잠깐 스쳐가는 인연이지만 깊이 기억되는 만남으로 비틀어진 자신을 회복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좁은 회의의 길을 빠져나오자 인도의 갠지스 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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