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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eong Ellen Kwon Sep 06. 2023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도 돼

 나는 신념이 강한 사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 신념이라고 부를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신념이라 충분히 착각할만한 어떤 고집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한 것이기도 했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기준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건 내겐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에 나는 이게 나만의 고집일 수 있다고 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세상을 아주 이상적인 공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우리의 인생을 그럴 수 있는 시간으로 여겼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개성과 정체성, 여정과 길, 세상에서의 역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너무나 본질적이고 소중한 가치여서 외부의 어떤 공격, 억압에 의해 방해받아서는 안되며, 뭉뚱그려지거나 그저 적절한 자리로 끼워 맞춰져서도 안 됐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자신만의 탐험을 통해 끊임없이 각자의 본질과 가능성을 찾고 짓고 성장하며, 그 유일한 여정과 정체성을 세상에 남기고 별이 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서로의 그런 유일한 가치를 존중하고 독려하며 (진심으로) 감탄하되, 침해하지 않으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이자 목적, 또한 우주와 어울리는 가장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많은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니 최소한의 강제적인 규율들과 효율적인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그걸 넘어선 무언가가 그 안의 사람들을 다 비슷한 곳으로 흘러가게 만들거나 흔한 색으로 물들여버리고 섞어버리는, 비열하거나 거친 자가 쉽게 이길 수 있게 하는, 그렇게 세상의 기준이라는 것을 은근슬쩍 만들어 지배하기 쉽게 홀려버리는, 범위에서 벗어난 개성과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필수로 타협해야만 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세상은, 본질에 집중하다가는 잘못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외따가 되기에 딱 좋게 흘러가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내겐 너무나도 잘못된 것이었다.


 위에 적은 내용은 추상적으로 비유한 내용이 아닌 실제적인 묘사다. 나는 주저할 필요도 없이 위의 신념을, 아니 나의 고집을 아주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삶에 적용했다. 말 그대로 여정을 통해 나의 정체성을, 나의 길을 만들고 나의 역할을 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길 위에서 7년의 어리고 젊은 시간을 보냈다. 가장 사람들이 안 갈 것 같은 곳으로, 비교적 수월하게 나의 개성을 지킬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의 고집은 아주 자연스럽게도 점차 강화되었다.

 내가 이 고집을 지키려 노력한 데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내겐 그게 그저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고집을 따르지 않고 타협하는 것보다, 나의 기준을 의심하고 다른 기준들을 곰곰이 함께 살펴보는 것보다 나의 고집을 쥐고 늘어지는 것이, 그렇게 버티면서 내가 생각한 방향대로 흐르지 않는 나의 인생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는 것이, 망가져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훨씬 쉬웠다. 머무는 것보다 이동하는 것이 쉬웠고, 한국에 있는 것보다 아프리카에 있는 것이 쉬웠다. 취업보다 창업이 쉬웠고, 하던 일보다 새로운 일이, 따르는 것보다 거스르는 것이 쉬웠다. 나는 내가 신념이 있어서, 용기가 있어서, 노력하며 버텨서, 본질에 집중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겐 그게 훨씬 쉬워서, 내게 자연스러워서였다.


 생각해 보면 내게 유리한대로 세상을 해석했던 것이다. 내게 쉬운 방식이 세상을 살아가는 옳은 방식, 가장 본질적이며 그렇기에 가장 멋진 방식이라고.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준이 정답지이며 다들 같은 정답지를 가지고 태어났을 텐데, 왜 많은 이들이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모두가 나처럼 이상을 향해 물불 가리지 않고 곧바로 뛰어들어야 하며, 서투르게 도전하고 아무렇지 않게 실패해야 하며, 경험이 중요하지 목표가 중요한 게 아니며, 그렇기에 끝맺지 못하더라도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미리 공부를 하고 계획을 짜고 위험 요소를 분석하는 것은 겁쟁이들이나 하는 방식이며, 우린 그저 저 멀리 막연한 곳을 향해 당당히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하며, 설레지 않는 일이나 남들이 이미 한 것을 나도 하는 건 의미가 없으며, 절대로 세상의 기준에 맞추거나 한 순간이라도 세상의 방식과 타협해서는 안된다고. 마치 지구를 구하는 대단한 영웅의 운명이라도 타고난 것처럼, 동화책에 쓰여 있을 것 같은 말들을 곧이곧대로 붙잡고선 영문도 모른 채 좌절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흐르고 싶다

 청소년기부터 가지고 있던 강박장애는 멋모르고 창업을 했던 20대 중반, 대책 없이 아프리카로 다시 향했던 그 무렵부터 조금씩 심해지다가 20대 후반, 30대가 되어가면서부터 절정에 달했다. 나는 내가 가졌다는 우울증도, 정식으로 검사받고 진단받은 ADHD도 사실 진짜 내게 해당되는 이야기일지에 대해 아직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정말 힘든 분들도 있는데 내가 엄살 피우는 것이 아닐까, 그 이름을 붙잡고 위안하려는 것이 아닐까) 강박장애의 힘듦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토로할 수가 있다. 나는 거기에 붙잡혀 아주 오랜 시간을 보냈고, 아직도 오르락내리락하며 그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강박장애는 나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오래전에. 나는 고래의 뱃속에 잡아먹혀 들어가 있는지도 모른 채 아주 비합리적, 집착적인 생각과 행동에 잠식되어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배가 아니라 고래의 뱃속에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그 빛나는 바다들을 항해했다.

 내 여정의 반은 사실 나의 삼켜진 역사다. 나의 배를 타고 항해하지 못한 좌절의 일기다. 나를 삼켜버린 고래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원래부터 가졌고, 믿고 지켜온 나의 신념, 아니 나의 순수하고 어린, 성장하지 못한 고집이 키운 것이었다. 난 자주 억울함을 느꼈다.


 난 지금도 펜을 잡거나 젓가락을 쥐는 방식이 보편적이지 않다. 종종 사람들은 내가 타자를 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손가락 네 개로만 그렇게 타자를 빨리 치냐고 말하기도 한다(생각해 보니 손가락 열개를 다 써서 타자를 치면 훨씬 편할 것 같다). 나는 대개 누군가가 언급하기 전까지는 나의 방식이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약속한 가장 나은 방식이 아니라는 것도, 내 것보다 더 편하거나 더 효율적인 방식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펜과 젓가락을 내 멋대로 쥐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갑자기 그 사실이 문득 인식되었을 때야 비로소 나는 나의 신념, 나의 고집도 한 발짝 떨어져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아 어쩌면 타고나길 이렇게 제 멋대로인 애였구나. 그래서 자연스레 세상이 권장하는 방식이라면 그게 뭐라도 제대로 들어보지도, 배워보지도 않고 살아왔구나. 그저 내가 내 멋대로, 자연스럽게 택한 것들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막무가내로 행해왔구나. 그러다 보니 어쩌면 그 시절, 배우고 따라 해봐야 할 때, 맞추고 속하고 어울리려 해봐야 할 때 겪어보지 않은 불안과 두려움, 의심과 좌절들을 늦게서야 한 번에 경험하고 있구나. 아 어쩌면 억울해할 필요가 없겠구나.




 법으로 쓰인 것들이 아니라면, 그리고 너무나도 도덕적으로 당연한 일부 기준들이 아니라면 사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기준들이 별로 없다. 내게 또는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어떤 기준이 이 사람에게 또는 저들에게는 너무나도 낯선, 또는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 기준일 수 있다. 세상의 많은 부분에 있어서 진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아무리 같은 시대, 같은 환경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수많은 부분에서 모두 수 만개의 다른 기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조합들이 만들어내는 듣도 보고 생각지도 못해 본 시선은 당연히 인구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과연 누가 완전히 옳고 누가 그르다고, 누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쉽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일상에서, 조그만 대화와 찰나의 행동 속에서도 많은 이들을 조금씩이나마 오해하고, 각자의 기준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며 살아간다.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우린 생각보다 그걸 많이 실감하지 못하고, 그것 때문에 많이 넘어진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나의 고집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러니까 고래한테 삼켜진 후에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사실상 뭔가 확실히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가진 모든 기준들을 의심하고 모든 행동들을 검열하기 시작했고,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돌아오면서부터 그 증상은 자연스레 더 심해졌다.

 내가 믿었던 신념, 내가 가졌던 가장 큰 기준이 그저 옳기만 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좌절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마도 거기에 있다면, 내가 가진 수많은 작은 기준들은 말할 것도 없이 의심해 볼 만한 것들일 테다. 그렇게 느끼자 이젠 그것들이 나를 사정없이 흔들기 시작했는데 그 위태로움에 비하면 고래의 뱃속은 차라리 편안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난 누구를 만날 때도, 미디어를 통해 누군가를, 무언가를 볼 때도, 간접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듣거나 읽을 때도, 그 수많은 이들의 수 만 가지 기준들에 나의 해당되는 기준을 빗대어 보고는 내가 조금이라도 틀린 것 같은 부분이 있는지 살폈다(늘 내게 조금이라도 틀린 것 같은 구석이 있었다). 살면서 매 순간 접하게 되는 그 모든 세상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그 안에서 옳은 기준, 완벽한 기준에 대한 힌트와 통찰을 얻으려) 붙잡으려다 심할 때는 하루에 몇 백개의 메모를 쓰기도 했다. 그것들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파먹고, 안 그래도 삼켜진 나를 더 깊이 침몰시켰다.

 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나의 단점에 대해 묻고 다 받아 적고 싶은 열망에도 시달렸다.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다시 바로 서기 전까지, 난 내가 스스로를 다시 믿을 수 있기 전까지 절대 세상으로 다시 나아갈 용기를 낼 수 없을 것임을 알았다. 완전히 쓰러진 무언가를 고치고 다듬어 올바르게 세워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난 이렇게 불완전한데도 활발하게 일을 벌이며 살아온 경솔한 나를 경멸하기 시작했고, 그 어렸던 나를 미워했다. 내가 뭣도 모르고 해 왔을 수많은 잘못들에, 내가 상처를 주었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에 짓밟히고 불안감에 떨었다. (누군지도 모를) 그들이 언젠간 각자의 돌을 들고 다가와 내게 던지고 처참해진 몰골을 세상에 전시할 것만 같았다.

 지금은 안다, 아니 알려 노력한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실수를 많이 해왔지만 여전히 용서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어쩌면,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걸 보면 좋은 사람 쪽에 훨씬 가까울 수도 있다고. 넌 매 순간 노력하고 있고, 좋아지고 있고,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도 된다고.




 최근까지도 나는 갈망했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고 나 또한 상처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실수하지 않고 나 또한 그로부터 안전하고, 누구도 오해하지 않고 나 또한 오해받지 않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수많은 기준에 대한 안내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 순간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것도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경솔하게 이야기하거나 행동했다고 판단하게 되는 미세한 순간들마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에도 이젠 지쳤다고. 내 안의 무언가를 바로 세우는 작업에 진척이 있는 것은 맞지만 아예 가라앉았던 자존감과 자신감을 건져 내는 것은 그와 별개로 좀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내게는 치트키 같은 것이 점점 간절해졌다.


 그러다 보면 종종 화가 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의 기준은 너무나 다양했고, 그것들이 섞이고 합쳐져 형태를 잡은 세상의 기준은 때때로, 아니 자주 매우 모순적이었기에. 난 이 사이에서 끝없이 균형을 잡아야 하는 상태에 아주 지겨운 감정을 느꼈다. 이런 나도, 세상도 아주 지긋지긋한 불완전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다행감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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